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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엘 Mar 13. 2024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

제주의 어느 의사 선생님 이야기

마흔 살 되던 겨울, 유난히 추웠다. 평생 추위라곤 모르고 살았는데 왜 이러나 싶었다.


국가에서 생애전환기라고 검진을 받으란다. 같이 검진 받은 친구는 결과가 수월하게 나오는데, 나는 일주일 후 병원으로 오란다. 


자리에 앉으니, 의사 선생님은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모니터만 보면서 ‘위암이네요’란다. 모양이 안좋단다. 


당시만 해도 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그냥 죽는가 보다 했다. 20년을 어지간한 사람 40년처럼 살았으니, 믿지 않겠지만, 회환도 전혀 없다. 


독신으로 살기 잘했다. 딱 하나 걸리는 건, 아들을 앞세운 부모님 걱정. 


제주 토박이 지인들은 예외없이 서울 큰 병원으로 가란다. 본가가 서울이고, 아산병원 가면 특별 대우고, 서울대병원가면 할인도 받는데 왜 안가냐고 성화다. 


갈 수 없었다. 


서울로 가면 가족에게 알려야 하고, 아마 엄마는, 심장 스탠스 시술까지 받은 엄마는 어쩌면 나보다 먼저 먼 곳으로 갈 수 있으니.


그냥, 진단받은 제주 한라병원에서 수술 받기로 했다. 완치면 해피엔딩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때 알려도 될 일.


난생 처음 입원이라 입원비가 걱정이다. 그런데 오잉, 1인실이 아산병원 다인실보다 싸다.


오케이. 그렇게 나는 공항과 제주 앞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입원실뷰 맛집에서 나름 호사를 누렸다.


정성과 나댐에서 왔다갔다하는 친구 하나는, 클래식 좋아하는 나를 위해 노트북에 스피커까지 따로 들고 와 병실에 설치한다.


간호사들 아마, 이 놈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구나, 했을 거 같다. 지금 생각하니, 얼굴은 본 적 없지만, 같은 병동에 입원했던 중환자들께 미안하다. 


친구들이 오고, 지인들이 오고, 잠시 지도했던 논술 선생님들도 오시고, 친구 부모님도 오시고, 이래저래 문병들 오는데, 다 나를 보고 운다. 


독거노인으로 죽을 줄 알았는데 총각귀신, 정도 마음이었겠지. 


철딱서니 없는 지인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한 가득 사 온다. 이봐요, 나 위암 수술 했다구요. 


암 모양이 안 좋았지만 다행히 다른 곳으로 퍼지기 바로 직전이어서, 수술 대신 내시경 시술로 간단히 끝났다. 


퇴원했고, 몇 달간 추적 검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검사. 이걸 통과하면 99.9%는 안심이다.


통과하지 못하면? 또다시 반복이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으로 갔다. 점심시간 직후가 면담이라 조금 일찍 도착해 진료실 앞 소파에 앉았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걸 또 반복하게 되면 어떡하지.


불안했다. 두 손은 아마, 나도 모르게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렸나 보다.


그렇게 초조해하던 내 양손을 누군가 부드럽게 쥔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담당 의사 선생님이었다.


내 앞에 엉거주춤 쭈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내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면서 ‘걱정하지 마세요. 끝났어요’ 하신다.


끝났다는 말보다, 선생님 미소에 더 놀랐다.


진단 때부터 그날까지, 미소는커녕 표정 하나 변한 적 없던, AI가 인간이 되면 딱 그랬을 분이었다.


그렇게 진료실로 따라 들어가 정식으로 선고를 받았고, 다시 한 번 환하게 웃는 선생님과 남은 대화를 나눴다.


아직도 선생님 두 손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구라다. 안 느껴진다.


미소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시 느낌이다.


“이 선생님은 참 따뜻한 분이구나.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으시구나.”


몇 년 후 선생님은 개업을 하셨고, 나는 주위 병자들을 죄다 선생님 병원으로 인도했다.


처음엔 구제주에 개업해서 가기가 멀었는데, 얼마 전 우리집 옆으로 병원을 이전해 아주 기분이 좋다. 산책갈 때마다 병원 앞을 지나간다. 병원 간판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손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한다.


서울에서 사업할 때 지인들 부탁으로 이래저래 보험을 들어준 게 많다. 나 덕분에 보험왕 되신 분도 있다.


제주에 내려와 살며, 기본적인 것 외엔 다 해약했다. 


깨지 않았으면, 몇 달만 더 버텼으면, 돈방석에 앉을 뻔 했다. 인생이란 진짜. 


오늘 아내와 함께 수면 내시경을 한 후, 선생님과 한 장 찍었다. 동의를 얻고 사진을 올린다. 


처음 뵐 땐 멋쟁이 파리지앵 같으셨는데, 아까는 알딸딸해서 몰랐는데, 사진을 보니 중후함이 강하다. 신제주 노형초등학교 맞은편 ‘전원중 내과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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