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관계의 처가 데려온 딸(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사실혼 관계의 남편, 즉 의붓아버지가 강간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사안인데, 이 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재판을 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유죄 선고가 있었고 형량은 무려 징역 13년이었으며 그 자리에서 법정구속 되었다는 것입니다. 변호하셨던 선배 변호사님은 13년이라는 선고형에 충격을 받아 그 항소심 대책 여부를 묻기 위해 저에게 전화를 주셨던 것이었는데,
사실은 무죄를 확신하고 계시다가 유죄를 선고받은 것도 충격인데 검사구형(9년)을 훨씬 뛰어넘는 형량을 선고받게 되자 자신이 변론을 잘 수행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자괴감에 휩싸여, 형사전문변호사라는 저에게 이게 맞는 판결이냐고 전화를 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항소심에서 다시 해법을 찾아보자고 위로해 드렸지만, 동시에 이 죄의 선고형 수준에는 형사전문변호사로서 다시 한번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가족간 성범죄’라는 것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매우 멀리 있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거북함'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정적 태도가 나타나는 이유는, 이 주제 자체가 우리의 유전적 측면에서 유래하여 문화적 측면에서 강화된 '근친상간의 금기'라는 터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전적으로 볼 때 근친상간은 치명적인 유전적 결함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자연선택 과정에서 우리는 근친상간을 피하도록 진화했고, 그래서 우리는 가족 간에는 성적 흥미를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강한 터부로 강화되어, 행위는 고사하고 그런 내용의 상상을 하는 것도 불편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터부는 유사 이래 오랫동안 강하게 유지되어 왔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 터부가 약화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즉 이 터부는 정서적 유대가 돈독하고 어려서부터 같이 성장해 나오는 가까운 친족간이라는 환경에서 강화되는데, 현대 사회의 복잡한 가족구조, 즉 다양한 형태의 재혼이나 입양 가정의 존재 등에서 서로 혈연이 없는 의붓가족 간에 성적 긴장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근친 터부라는 것의 약화를 초래하게 되고, 한 군데에서의 흠은 전체의 완결성에 도전하는 원천이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국 근본적으로 가족간 성범죄는 여전히 터부시되지만, 그 발생을 완전히 막을 수 없는 사회적, 심리적 요인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친족간 성범죄'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그럼 여기서 이 행위를 처벌하는 법조항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우리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5조는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규정들을 두고 있습니다.
“① 친족관계인 사람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경우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② 친족관계인 사람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제추행한 경우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③ 친족관계인 사람이 사람에 대하여 「형법」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제1항 또는 제2항의 예에 따라 처벌한다.
④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친족의 범위는 4촌 이내의 혈족ㆍ인척과 동거하는 친족으로 한다.
⑤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친족은 사실상의 관계에 의한 친족을 포함한다”
보통 범죄의 구성요건을 보면 대부분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보통인데, 이 범죄의 구성요건들에 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친족’은 뭐고 ‘가족’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그리고 ‘사실상의 관계에 의한 친족’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지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친족'은 '친척'을 말하는 것인가요?
쉽게 생각하면 그렇지만 법률적 표현이므로 조금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친족'의 정의는 민법에 나옵니다. 민법은 친족의 범위를 ‘8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 그리고 배우자’라고 정의합니다(민법 제777조). 그런데 이 말 중에 ‘혈족’과 '인척'이라는 말이 또 걸리지요?
‘혈족’이라는 것은 나와 피가 섞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쉽게 따지자면 부모, 조부모 이렇게 위로 타고 올라갔을 때 공동선조가 있다면 그 사람과 나는 혈족인 겁니다.
그런데 이 범위를 끝도 없이 늘릴 수 없으니 '8촌'까지로 한다는 것이 현대의 '혈족'입니다.
'인척'이라는 것은 방금 전 보신 ‘혈족의 배우자’, 그리고 ‘내 배우자의 혈족’, 그리고 ‘배우자의 혈족의 배우자’ 이 세 가지를 말합니다. 조금 어렵죠? 쉽게 생각하시면 '혼인' 때문에 생긴 '친척'들을 '인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혈족의 배우자’라는 것은 나와 피가 섞인 사람의 배우자라는 뜻이니까 누나의 남편인 매형, 여동생의 남편인 매제, 언니의 남편인 형부, 형의 부인인 형수님 등을 말하는 것이고,
‘배우자의 혈족’은 아내나 남편의 형제자매들 즉 처남이나 처제, 처형, 아주버님이나 도련님을 생각하면 되며, ‘배우자의 혈족의 배우자’는 처남댁이나 형님, 동서 등이 해당되겠네요
그런데 친족강간죄 등에서의 친족은 민법이 규정한 친족 범위보다 좁습니다.
위 법조항 제4항에 정해져 있듯이 ‘4촌 이내의 혈족과 인척’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죄에서 말하는 '친족'이라는 것은 ‘4촌 이내의 혈족·인척’과 ‘동거하는 5~8촌인 혈족'을 말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사실상 친족은 무엇이고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요?
사실상의 친족이라는 것은 '사실상의 관계에 의한 친족'을 말합니다.
따라서 따지자면 혈족이기는 한데 법정절차를 이행하지 않아 법률상의 친족이 아닌 사람(인지하기 전의 혼인 외의 출생자와 그 생부), 법정혈족관계나 혼인의 실질관계는 모두 갖추었으나 법률이 정한 방식, 즉 신고 등 절차를 이행하지 않아 법률상의 친족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자(사실상의 양자(녀)의 양부(모) 또는 사실혼관계의 처와 그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사실혼 관계의 남편)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관계가 없는데, 단지 그 생활관계, 당사자의 역할·의사 등이 친족관계와 유사한 외관을 가진다는 이유만으로는 사실상의 관계에 의한 친족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평소 언니, 동생 하는 사이들은 그 배우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를 형부나 처제로 부르거나 불리며, 그 자식들에게도 삼촌, 이모, 고모를 자처하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말하는 ’ 사실상 친족관계‘가 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일반 성범죄가 문제 될 뿐입니다.
그런데 친족간 성범죄는 왜 이렇게 형량이 높은 것일까요?
친족강간죄의 형량은 아까 위에서 보셨지만 무려 7년의 징역이 '법정최저형'입니다. 이것은 합의가 이루어져 그 형의 감경을 받더라도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인데요. 이 정도로 형량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친족 관계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신뢰와 보호를 기대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친족구성원 간에는 이런 범죄에 노출된 친족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친족관계에서 이런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그 충격이 더 크다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가해자가 친족의 범위에 있다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위치에서 오히려 범죄를 저지른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친족 관계에서 발생되는 성범죄의 피해자는 보통 아동이나 청소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건에서도 피해자의 위치에 있게 되면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평소 자신이 의존해 왔던 친족이 가해자인 경우에는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친족 간의 성범죄는 반복적이고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따라서 이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피해는 평생에 걸친 심각한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하면 위와 같이 엄중한 처벌을 하는 것이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친족간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이 성년이 된 날로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되며, 13세 미만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아예 공소시효 자체가 적용되지 않습니다(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21조). 이러한 법적 보호는 피해자가 시간이 지나서야 범죄를 신고할 수 있도록 고려한 조치이므로 어떤 순간에는 결국 용기를 내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죄가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점은 반드시 유념하셔야 합니다.
특히 명절 때나 가족모임 같은 것이 있는 경우, 다 같이 한 공간에서 술을 마시다 취해 잠자는 경우가 많아 개인의 사적 공간은 줄어들고 친족 간의 상호작용이 늘어나는 환경이 조성되면
친족간 성범죄, 특히 준강제추행이나 준강간죄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삼촌과 조카의 관계(고모부, 이모부, 외삼촌, 친삼촌과 이성의 조카 또는 그 반대경우)에서 이런 실수가 잦은데, 설이나 추석과 같은 큰 명절만 지나면 이런 내용으로 형사고소와 재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수라고하기엔 가정과 신뢰, 화목 등 그동안 누려왔던 이 모든 가치를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사례들을 한 두 번 보는 것이 아니니 또 살피고 또 살펴야 합니다.
"The only people who get upset about you setting boundaries are the ones who were benefiting from you having none."
"당신이 경계를 설정할 때 화내는 유일한 사람들은 당신이 경계를 설정하지 않을 때 이득을 본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