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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소인, 피고발인, 피의자, 피고인의 이야기

by 전상민 변호사 Dec 20. 2024

살면서 경찰서 한 번 가보지 않은 사람은 많습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분들도 천지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가해자든 피해자든 형사적 문제나 범죄에 관련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저도 그러했습니다.


물론 제가 지금까지 형사사건의 직접 당사자(가해자, 피해자)가 되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직업적으로는 늘 이런 분들을 의뢰인으로 만나다 보니, 형사사건에 연루된다는 것이 전혀 딴 나라 이야기라고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치소에 가보면 정말로 여러 가지 죄명들로 구속을 당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변호사가 되어 구치소를 들락(?) 거리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저는 구치소라고 하면 연쇄 살인범이나 강간범, 강도범 정도는 되는 범죄자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그곳은 대단히 무서운 곳이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무서운 인간들이라는 식으로 생각했으며, 사법고시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시절 서울구치소에 견학갔을 때는, 죄수복을 입고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직업적 시선'보다는 '인간적 두려움'을 먼저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막상 현직에 나와 구치소에 가서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면서부터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거리감이 느껴졌던 구치소에 수감된 사람들이, '이 사람들 대부분은 사실 우리하고 별다를 것이 없구나'라는 눈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 씨는 직업이 영업직이라 술을 자주 마십니다.

그러니 늘 음주운전을 '할 수도 있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 긴장을 잘 유지해서 항상, 그리고 꼬박꼬박 대리운전으로 귀가해왔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별로 취한 것 같지도 않고, 그동안 대리를 불러 집에 돌아갔던 날들을 돌이켜보면 실제로 음주단속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A 씨는 '그럼 오늘은 그냥 가볼까?  어차피 대리비도 비싼데...' 하는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습니다.

A 씨는 가는 길에 평소보다 훨씬 조심을 합니다. 그러나 주취로 감각이 떨어져 있으니 뜻대로 안 됩니다.

차선을 바꾸는 다른 차와 살짝 접촉을 하거나 앞 서 신호대기하던 차량에 살짝 부딪힌 것입니다.


 '접촉사고라...'  평소 같으면 차에서 내려 쌍방이 서로 사진 찍어 가면서 보험사 부르고 '왜 갑자기 차선을 바꾸냐 마냐', '안전거리를 확보했냐 마냐' 따졌을 것인데, 그러고 보니 이제 생각이 납니다. 지금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러자 '음주사고가 났을 때는 일단 도망가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어차피 사고는 난 거라 바뀔 게 없고 내려봐야 음주사실만 드러날 뿐입니다.


그래서 평상시라면 안 했을 결정을 합니다. 그대로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A 씨 차량의 번호를 봤습니다(번호를 못봤어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cctv와 블랙박스까지 피해갈 수는 없기 태문입니다). 바로 112에 신고했고 집에 가보니 이미 경찰은 와 있습니다(그 다음 날에서야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피해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목과 허리부위에 2주 염좌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A 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치상, 징역 1년~징역 30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위험운전치상, 징역 1년~15년),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징역 1년~6년), 도로교통법위반(사고 후미조치, 5년 이하의 징역) 등으로 입건되어 수사를 받고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럴 때는 피해자와의 합의가 모든 선처의 기본이 되는데, 피해자는 '음주운전자에게 피해를 입었다면 최소 몇천만 원은 받을 수 있다'는 인터넷에서의 근거 없는 말을 듣고 3000만 원이 아니면 합의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도대체가  밑도 끝도 없는 금액이지만,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이 말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서 본 대로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라고 규정하면서 엄벌을 탄원하며 합의를 압박하는 진정서를 계속 냅니다. 그러나 A 씨는 3,000만 원이 없습니다. 결국 A 씨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어 아까 우리가 연쇄 살인범들 정도 되는 범죄자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 구치소에 갇히게 됩니다.


A 씨는 3개월째 구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열린 제2심(항소심)에서, 보증금을 뺀 돈이나 집을 저당 잡혀 마련한 돈으로 피해자가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결국 합의서를 받아 2심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이제 석방만 남은 것 같지만 사회분위기상 음주 뺑소니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판사 실명이 공개되어 비판받는 등 사법부도 부담이 심합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A 씨 사건의 판사는 여론을 신경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집행유예가 아닌 징역 1년으로 감형해서 실형을 유지하고 맙니다.


실형 1년을 선고받고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나 직장이 있을까요? A 씨는 직장을 잃고 초, 중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그 가정은 이제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B 씨는 어떨까요?

B 씨는 사업체를 운영하지만 경기가 어려워서 요즘 돈이 잘 돌지 않습니다.

납품한 대금은 제때 결제되지 않고 납품받는 원자재 대금의 지급기일은 꼬박꼬박 제때에 돌아옵니다.

사업이라는 것은 신용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이므로 그때그때 필요한 돈이 돌지 않으면, 금융권이나 사금융권을 통해 돈을 조달해서라도 메꿔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법인대출을 신청하고 대표자 보증을 서기도 하지만, 지금 회사의 재정상태에서 이 정도의 행위로 금융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다면, 애당초 이렇게 곤란한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금융권의 대출을 받으려면 거래실적이  규모일수록 유리합니다. 그래서 조금 편법이지만 업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방법을 따르기로 합니다. 실거래가 없었던 세금계산서를 구해다가 매출과 매입을 부풀려서 회사의 거래규모가 크게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매입과 매출을 맞춰서 한 것이므로 '부가세 환급'과 같은 나랏돈을 단 한 푼이라도 부정하게 타낸 사실은 꿈에도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출을 시도해 대출금을 받았지만 그것만 가지고도 모자랍니다. 그래서 부족한 돈은 사채를 쓰기로 합니다.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로 내놓고 사채를 빌려서 변제기가 돌아온 채무를 갚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당좌거래를 할 수 있어 당좌수표로 대금지급을 해서 10일을 벌었습니다. 단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인데 10일이 어딥니까 그 사이에 분명히 돈이 풀릴 것입니다. 어차피 이런 것이 사업이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B 씨는 끝내 회사의 유동성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부도가 났고, 보증 섰던 것이 문제가 되어 집은 경매에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가장으로서 당장 애들이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 회사에 있는 돈을 인출해 집에다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에게 일부라도 줘서 경매를 취하시켰습니다. 정말로 힘든 하루하루입니다.


그런데 B 씨는 허위세금계산서를 기업대출을 받을 수준으로 만들어 냈으므로 일단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허위세금계산서수수, 징역 1년~30년)과 이를 바탕으로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았으므로 사기죄가 인정되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사기, 징역 3년~무기징역)이 성립합니다. 여기에 돌려 막기를 숨기고 사채업자에게 돈도 빌렸으니 역시 또 다른 사기죄가 되고(10년 이하의 징역), 당좌수표를 발행했지만 부도가 났으니 부정수표단속법위반(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발행금액 10배의 벌금)입니다. 거기다 자기 집 경매를 끄려고 직원들 월급 줄 돈을 썼으니 이것은 업무상 횡령(10년 이하의 징역)이고, 근로기준법위반(3년 이하의 징역)입니다.     


C 씨는 4인 가족의 가장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서 기업체에서의 퇴직 연령은 40~50대로 너무 빨라지고 있고, 애초 결혼이 늦었으니 자식들은 아직 자립해서 자신의 밥벌이를 하기에는 너무 어립니다. 기껏해야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아무리 잘 봐줘도 취업준비생이라서 결국 C 씨가 부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직장을 갖는 게 쉬울 리 없습니다. 아무리 이력서를 내도 채용하겠다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알바천국'이나 '알바몬' 같은 구직 플랫폼에 자신의 이력서를 넣고 기다려 보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이 업체 저 업체에 지원도 합니다.


그런데 꾸준한 구직활동에 하늘이 감복했나 봅니다. 그나마 인간적인 업체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귀하가 지원한 택배상하차 업무는 막 채용이 마감되었습니다. 애초 이런 택배 상하차 관련 일을 하시려고 했다면 관심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혹시 몰라서 말씀이나 드려보는데 서류배달이라도 해보시겠나요?'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없는 상황에서 '서류배달일'을 못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당장 한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서류봉투를 주면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배달을 시킵니다. C 씨는 열심히 합니다. 단순한 배달일이라서 보수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렇게 몇 주 정도 일을 하니 칭찬이 쏟아집니다 '너무 일을 잘한다', '클레임이 전혀 없다', '정말 신뢰가 간다' 이런 말을 듣자니 일평생 성실 하나로 살아왔던 자신의 삶 자체가 제대로 평가받고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그러더니 '믿을 수 없는 사람들 때문에 그동안 자신이 직접 하고 다녔지만, 드디어 믿을 만한 분을 만났으니 수금하는 일을 맡아 주셨으면 한다. 돈을 취급하는 일인데 내가 C 씨를 믿고 큰돈을 맡겨도 되겠는가'라는 것입니다. C 씨는 자신의 인격이 의심받는 것은 조금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믿고 맡겨야 할 일입니다.


조폐공사의 지게차에 실린 5만 원권 몇 톤이 굴러다녀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 나라는 사람인데, 수중에 돈이 들어왔다고 해서 눈이 돌아 남의 돈을 가지고 도망가는 인간들과 자신이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C 씨는 지시받은 장소로 가서 돈을 받아 다음 사람에게 한푼의 에누리없이 전달하거나 지시받은 계좌에 송금하는 일을 척척 해치웁니다.


그렇게 다음 수금을 하러 가는데 갑자기 경찰관들이 튀어나와서 '긴급체포를 하겠다'며 미란다 원칙을 읊어 줍니다. C 씨는 보이스피싱의 현금수거책으로 검거된 것입니다. 그제야 C 씨는 '계좌이체를 하면 되지 요즘 세상에 현금을 직접 주고받을 일이 뭐가 있을까' 하고 의심했던 것이 생각나고,


'여기서 돈을 받아다 저기다 넘겨주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일당도 아니라 건당 10만 원씩이나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검사는 5년을 구형하고(믿지 못하실지 모르겠지만 실제 이렇습니다) 판사는 C 씨가 옮겨 준 돈에 관련된 피해액이 무려 3억 원이 넘는다고 하면서, 다만 초범이라는 점을 고려해 징역 2년을 선고한다고 합니다(믿지 못하실지 모르겠지만 실제 이렇습니다).


결론적으로위에서 살펴보신 A 씨와 B 씨, C 씨는 모두 그동안 여러분들이 그토록 혐오해마지 않던 인간 같지도 않은  '범죄자들'이자 선량한 사람들에 대한 '가해자들' 즉 피고소인. 피고발인, 피의자, 피고인들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실 우리의 모습과 어딘지 많이 닮아 있음을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A 씨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A 씨는 우리가 '할 수도 있는 범위'의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러는 B 씨는 어때 보이십니까? B 씨 같은 사람이 구치소에는 부지기 수입니다. B 씨의 행위에서 우리가 생각해 오던 범죄자의 모습이 대번에 보이는 분 계시나요. C 씨는 어떤가요 사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설 뿐입니다.


일부러 아프려고 작정해서 아픈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부러 범죄자가 되겠다고 작정하는 사람도 드뭅니다. 위에서 본 A, B, C 세 사람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고소, 고발, 인지 등으로 입건된 저 행위들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구제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구제는 저 같은 전문가들의 몫이니 언급을 생략하도록 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바로 한 걸음 옆이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We are all capable of extraordinary wrongs, given the right circumstances."  우리 모두는 적절한 상황이 조성되면 엄청난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필립 짐바르도 (Philip Zimbardo)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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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 22. 이글의 모든 저작권은 전상민 변호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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