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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Sep 25. 2023

[D+6] 히말라야 앞에서 깔깔대는 두 여자

2020년 1월 1일 (2)

우리의 빠른 등산 포기 선언 덕분에 고든 아저씨는 무려 오전 8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의 저질체력에 탄식하며 다시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우선 주린 배부터 채워야 했다. 야채 카레와 만두를 시켰는데 만두가 참 맛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만두 소스가 맛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오랜만에 너무 격한 운동을 한 탓에 속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뭐든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침 식사 후. 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우리는 숙소에서 쫓겨났다.

숙소를 청소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홀홀단신에 휴대폰 하나만 쥐어져 쫓겨난 우리는 멍하니 서 있을수만은 없었다. 눈앞에는 거대하고 황홀한 히말라야가 배경처럼 서 있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서있는 건 다리 아프지 않은가. 우리는 이 마을에 뭐가 있는지 조금 더 구경해보기로 했다.





귀여운 망아지들과 작은 쇼핑센터, 그리고 무속 신앙의 흔적인 돌탑이 우리에게 잠시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마을은 너무 작아서 다 도는데에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젠... 뭐하지?


심심한 대자연에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태생이 문명인인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문명으로 돌아갔다. 바로 휴대폰 사진!


우리 자매는 최고의 포토스팟을 찾겠다며 숙소 앞마당을 고삐 풀린 망아지들마냥 뛰어 다녔다. 어제도 분명 발차기 사진을 찍은 거 같은데, 동생은 또 다시 태권도 4단의 위엄을 보여주겠다며 발을 허공에서 돌리고 있었다. 나는 뭐랄까, 진부한 브이를 해보이다가 손가락 위치를 바꿔서 엄지와 검지로 또 다른 모양의 브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게 필요했다. 동생은 '히말라야 산을 집는 것처럼' 포즈를 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거 아나? 히말라야 산은 너무 높아서 우리에게 손가락을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우린 숙소 앞에 있던 플라스틱 의자에 올라서서야 히말라야를 손가락으로 집을 수 있었다.


 팔 들어! 아니, 손을 더 머리에서 떼! 어, 아니, 대각선 방향으로!!!


우리 숟가락 가져오자! 숟가락으로 히말라야 산 퍼먹는 포즈 하자!!!



열띤 내 코칭의 결과물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숙소 2층 창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방을 청소하며 이불을 탈탈 털고 있던 지배인 아저씨가 미친듯이 웃기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뒤, 아저씨는 3층으로 올라가 3층 창문을 열며 우리를 향해 또 웃어보였다. 계속 봐도 웃긴가보다. 근데 우리가 생각해도 우리는 미친듯이 웃겼다. 의자에 올라가서, 숫가락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저 망아지 둘은 왜저럴까, 싶었을 거다.


우리의 타이밍은 완벽했다.

배터리가 5프로가 되고 휴대폰이 꺼지자, 우리는 청소가 완료된 숙소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여전히 시간이 오전 11시라는 점이었다.

1층에서 4천 원짜리 프링글을 사서 세상 늘어진 백수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 데도 시간은 여전히 1시 30분. 아직 체크인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거의 없었고, 덕분에 와이파이는 환상의 속도를 자랑했다. 일기장을 켜서 글을 더 쓰겠다는 내 의지와는 달리 손가락은 게임 어플리케이션을 향하고 있었다.


몰입이 최고의 미덕이라던데. 난 이날 게임에 완전히 몰입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밤 6시가 되어 있었다. 자괴감이 들어서 얼른 게임 어플리케이션을 지웠다. (웃긴 사실은, 난 2023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런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3년 간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난 히말라야 산에 있는 숙소의 난로 앞에서, 따듯한 온기와, 캐롤 음악과 함께 게임을 했으니 조금 더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것?



저녁을 먹으면서 보니 바깥은 날씨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고든 아저씨는 내일부터 눈이 올 거라고 했다. 우리 같은 초보 등산가들에겐, 내일 하산한다는 점이 천만다행이었다.


침대 위에서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동안 정전이 두세번 있었다. 네팔은 추운 나라인데 전기난로도 없고 난방도 없었다. 일반 난로는 건물에 딱 하나, 1층 중앙에서 장작으로 때는 게 전부였다. 한국에서 핫팩을 챙겨오길 너무 잘했다.


핫팩을 또 하나 침낭에 넣고 잠이 들었다. 잠자리는 따듯했지만 나는 새벽에 여러 번 뒤척였다. 다음 날 일어났을 땐, 타는 목마름에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브런치를 정리하려고 3년 만에 로그인했다가 제 예전 글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울까? 다른 데로 옮길까? 잠깐 생각했지만 때묻지 않은 제 3년 전 글이 재미있어서 그냥 계속 써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배낭여행 당시에 썼던 일기가 있어서 초안은 있는 셈이거든요. 3년 전, 저는 대학생이었지만 이제는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업 작가가 되었어요. 조금 더 노련해지고, 조금 더 때묻었고, 배낭여행하던 이전의 날들은 조금은 더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힘 닿는데까지 계속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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