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며 배우는 것들
오늘은 글쓰기가 정말 하기 싫은 날이었다. 오후에 마신 커피 덕분인지 자다가 두 번이나 깨서 거실로 안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유제품을 먹으면 간지러워지기도 하는데 낮에 우유빙수를 먹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몸이 가려워서 뒤척뒤척거렸다.
무엇보다 그 와중에도 내 곁에서 자겠다며 날 찾아서 헤매던 둘째 덕분에 화가 치민 거 같기도 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내 곁에서 잘 꺼니? 소녀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지는 나의 몸. 일찍 일어난 내 몸은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을 살펴보고 뒤적뒤적하다가 새벽부터 출근할 남편의 가벼운 아침식사를 챙겼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침 산책을 나가려고 옷을 입었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려고 보니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산책은 어렵겠구나!
오늘은 새로운 운동을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서, 함께 운동 인증을 하는 분들께 추천받았던 ‘요가소년’ 채널을 틀고 아침 요가를 함께 해보았다.
가장 조회 수가 많은 아침 요가는 동작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으로 가서 등 뒤에서 두 손이 대각선으로 만나는 동작은 오랜만에 해보았는데 아예 안 되고 있었다. 특히나, 왼팔보다는 오른팔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당연하게 모든 것을 맡겨온 오른팔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도 참 애쓰며 살고 있었구나, 미안하네!’
장난꾸러기였던 나를 순리대로 살게 하려고, 나를 지키는 작은 보호자였던 에고가 생겨났다. 그즈음일까? 나를 최대한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게 하고 싶었던 엄마는 왼손잡이인 나를 오른손잡이로 만들었다.
내 기억으로 그 시작은 밥을 혼자 먹게 될 무렵이다. 4-5세 정도의 나이였는데 왼팔을 붕대로 감아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젓가락질과 숟가락질을 한참 배우던 동안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양손잡이의 삶을 살게 되었다. 식사와 글씨 쓰기 등의 일들은 오른손을 사용한다. 대신 전화받기, 크레파스 색칠하기, 바느질하기 등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왼손으로 하게 된다.
마흔이 넘어 나를 돌아보며 내 왼손을 바라보았다.
내 마음 한편에는 왼손으로 살아보고 싶은 본능과 이미 익숙해진 오른손의 편안함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다. 마치 나의 원초적 본능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과 세상에 동화된, 적당한 순리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늘 싸운 것처럼 말이다.
한참은 오른손잡이의 세상을 원망했고 한참은 왼손잡이인 나의 용기 없음을 원망했다.
그 일렁이는 시간들이 흐르고 나자 양손을 다 쓸 수 있음이 감사했다. 양손을 다 쓸 수 있음이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지, 아주 나중에야 깨닫게 된 것 같다. 피아노, 타자, 색칠 양손으로 하면 더 좋은 것이자 즐거운 것들이 세상엔 가득했다. 왼손 덕분에 오른손이 부지런해졌다.
불현듯 아침 요가를 하면서 미처 내 생각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오른팔을 보며 새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멈추어 있던 왼손만큼, 무리해서라도 세상에 적응하려고 애써 왔던 나의 오른손, 고맙고 고맙다. 수고하고 수고했어.’
뒤늦게 깨달은 오른손의 고마움.
힘겹게 연필을 잡는 법을 익혔던 오른손, 포기하지 않고 연필을 잡아준 오른손. 남들처럼 예쁘게 되지 않는 젓가락질에도 익혀야 할 것들을 내던지지 않고 잘 잡아준 오른손. 그 오른손의 은공 덕분에 살아온 시간들이 이제야 보인다.
원망이 사라진 자리에 고마움이 만개하자 수고스러웠던 오른손의 진면모와 피곤하지만 성실했던 삶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한 요가시간이었다.
부디, 앞으로의 나날에서는 오른손을 편히 쉴 수 있도록 오른손 모르게 민첩하게, 자유롭게 왼손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