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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와 중국

by 글검
위기의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한때 ‘기술의 삼성’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그 명성을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 공급 중이나,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품질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납품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발열과 전력 소비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되며, 기술력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경쟁 중인 애플은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애플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은 대만의 TSMC에 맡긴다. 현재 TSMC의 생산 물량 중 40~50%는 애플과 엔비디아가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대형 고객을 놓치면서 경쟁에서 한 발 밀려난 형국이다.


엔비디아(NVIDIA)의 독주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 시장의 승자는 단연 엔비디아가 되었다. AI 구현에는 병렬 연산이 가능한 GPU(그래픽 처리 장치)가 필수적인데,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연산에 최적화된 GPU와 함께 CUDA(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까지 구축하며 시장을 선점했다. 새로운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이미 표준을 장악한 셈이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


미국은 2022년부터 엔비디아의 고성능 반도체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제한해 왔다. 공식적인 이유는 “중국이 이를 군사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엔비디아는 성능을 낮춘 A800, H800 칩을 중국에 공급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마저도 규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제재는 미국의 대외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1970년대 소련의 GDP는 미국의 60% 수준이었고, 1990년대 초반 일본의 GDP는 미국의 70%에 달했다. 미국은 이인자가 부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소련은 미국과의 과도한 군비 경쟁으로 경제가 스스로 붕괴했고,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후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30년’을 맞았다.


현재 중국의 GDP 미국의 70% 수준이다. 이번에는 중국 차례이다. 중국 견제라는 “대의” 아래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의견이 일치한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 성공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화웨이 등 반도체 기업들은 자체 칩을 개발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대만·한국 기업들과는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

또한,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은 고사양 GPU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인공지능·슈퍼컴퓨터 개발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중국은 우회 수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지속적으로 차단 중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규제가 오히려 중국 반도체 기술 자립을 촉진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이후, 2019년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등)의 수출을 규제했다. 일본은 기존의 포괄허가제를 개별허가제로 변경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당시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는 일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소재 국산화 및 대체 수입을 추진할 수뿐이 없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결과는?


당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긴급하게 대체재 연구개발 지원을 확대했다.

국내 기업(솔브레인 등)이 국산 불화수소 개발에 성공하며, 2022년 기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일본산 불화수소 의존도는 40%에서 7.7%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2023년 3월 일본이 수출 규제를 철회했다.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은 다시 일본산 불화수소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2024년 기준 일본 의존도는 다시 40% 수준으로 회귀했다.


퇴로 없는 압박, 결과는?


손자병법 허실편(虛實篇)에는 ‘위사필궐(圍師必闕)’이라는 말이 나온다. 적을 포위하더라도 반드시 한쪽을 열어두라는 말이다.

궁지에 몰린 적은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후퇴할 길을 열어두어 퇴각을 유도하는 것이 더 현명한 전략이라는 뜻이다.

한신이 서초패왕 항우를 패배시킨 전략이다.


위사필궐(圍師必闕) : 적을 포위하더라도 반드시 한쪽을 열어두어야 한다.
* 圍(위): 포위, 師(사): 적군, 必(필): 필히, 闕(궐): 틈, 퇴로를 열어두다


한신(韓信)의 십면매복(十面埋伏) 전략 : 열 방향에서 매복해 적을 포위한다
* 사방에서 군사를 배치해 항우의 초군이 도망갈 길 차단,
매복(埋伏) 병력이 혼란스러운 적을 기습 공격,
사기 저하된 초나라 군대에게 한나라 군대가 초나라 민요를 불러 초나라 군대의 사기를 꺾음 (사면초가)
도망치다 오강(烏江)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


2019년 일본의 무역 규제 당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일치단결하여 국산화를 추진했다.

일부 성과도 거두었지만, 규제 해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국산화 전략이 끝까지 추진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중국 견제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 역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 전략이 성공할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이 국가 차원의 총력을 기울여 반도체 기술 독립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반도체 규제는 과연 중국을 견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중국의 기술 독립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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