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책일기
그때가 언제였나.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어디냐고 물었다. 너에게 언젠가 그 나라에 가게 되거든 장미나무로 만든 묵주를 구해다달라고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 말인가. 이 바티칸 시국. (...) 수녀가 내미는 묵주함을 받아든 너는 뚜껑을 열어보았다. 밀폐된 묵주함 안에서 장미향이 훅 끼쳤다. 이 냄새를 엄마는 알고 있었던가. “아침에 신부님이 축성하신 겁니다.” 언젠가 엄마가 말한 장미 묵주가 이것일까. “이 장미 묵주는 여기서만 구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요, 어디서든 구할 수 있어요. 다만 여기는 바티칸이니까..... 여기 장미 묵주라면 의미가 크지요.“ -p277~279
신경숙 작가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언제까지나 그 자리 그대로, 내 곁에 그대로 있어줄거라 믿어 알고 싶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엄마를 잃고서야 엄마를 돌아보는 내용의 이 책은 왈칵 눈물을 쏟게 만드는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지만 저는 유독 소설 말미에 눈길이 갔어요.
<엄마를 부탁해>를 처음 읽은 스무 살이 되던 그해, 당시 여권도 없었던 저에게 바티칸은 소설 속 엄마와 같은 곳이었어요. 지도를 펼쳐 그곳이 어디인가 짚어봐도 내가 살고 있는 이곳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나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 하지만 저는 그곳을 품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 나도 소설 속 엄마처럼 그곳의 장미묵주를 직접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정말 막연하게, 장미묵주의 장미향을 맡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엄마를 부탁해> 엄마처럼 집밖에 모르는 개구리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로부터 몇 해 후 세상은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고, 처음으로 그들의 나라로 갔어요. 내내 마음에 품고 있던 그곳에 가서, 드디어 꺼냈어요. 바티칸의 장미묵주를 잡았고, 묵주함을 열었고, 장미향이 훅. 그 장미향은 지금도 잊을 수 없고, 지금도 장미향기가 나요. 묵주함을 열었을 때 훅 맡아지는 장미향은 신기하게도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다독 두드려주는 기운을 줘요.
<엄마를 부탁해> 속 엄마의 딸은 피에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의 안녕을 기원해요. 저도 장미묵주를 꼬옥 움켜쥐고 피에타로 다가갔어요. 사실 조각상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소설 속 딸을 의심했어요. 일개 조각상을 보고 웬 눈물? 하지만 피에타 앞에 섰을 때, 글쎄 주책맞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거 있죠?
저는 종교는 없지만 신앙심의 숭고함을 알아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자신의 재능뿐이었던 미켈란젤로가 조각의 손길 하나 하나에 온 정신을 담았을 숭고함, 그 숭고함을 직접 느끼고 싶었을 소설 속 엄마의 숭고함, 비로소 엄마를 깨우치고 엄마가 사랑하던 그들에게 엄마만을 위한 기도를 올리는 딸의 숭고함. 그 모든 힘이 느껴져서 눈물이 맺혔어요.
저는 그렇게 처음으로 우물 밖 여행이 주는 기쁨, 교훈, 더불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맛봤어요. 다행이라고 할까요, 안타깝다고 할까요? 여행이 반복될수록 통장의 잔고가 줄어가지만 저는 여전히 제가 살고 있는 우물 속을 벗어날 궁리를 해요. 요즘은 이 망할 코로나로 다른 이들의 우물이 저 때문에 흙탕물이 될까 봐 제 우물을 지키고 있는 형편이지만요... 당분간은 좀 어려울 것 같으니 저도 친구들처럼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야겠어요. 좋은 방법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친구들!
-리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