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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May 03. 2021

Motherhood

셋, 책일기

팅팅님 영지님~ 글이 좀 늦었어요, 오래 기다리셨죠?

  

저는 요즘 동생 결혼을 앞두고 동생 집에 들여놓을 가전제품들을 보러 다니느라 좀 바빴어요. 제 동생은 남동생인데 제가 예비 올케와도 친해서 같이 보러 다녔답니다. 이 글에서는 여러분의 이해를 도우려고 썼지만, 저는 사실 올케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올케는 ‘오라비의 계집’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알고 계셨나요? 세상에, 계집이라니! 어느 집 귀한 여식을 두고 계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못된 표현 아닌가요? “올케~ 올케~” 부르는 건 얼굴에 대놓고 “계집아~ 계집아~” 부르는 것과 같은 거잖아요.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 중에는 여성의 인권을 강제로 낮추는 표현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 아직도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뜻을 잘 모를 땐 그냥 호칭이겠거니 하고 사용했지만 이제 그 뜻을 알아버린 이상 그렇게 고운 아이를 두고 올케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아졌어요. 그래서 그녀의 귀중한 이름을 부르고 ‘새동생’이라고 소개를 하곤 해요.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비건이 아니면서 채식의 필요성과 채식이 선사하는 건강한 힘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요. 최근 제가 읽은 <자아, 예술가, 엄마> (Selfhood, Artisthood, Motherhood) 라는 매거진에는 예술가인 여자들이 엄마가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 예술가로서의 입지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담겨있어요.

 

학교의 교수님은 우리에게 아이를 가지면 예술가로서의 경력이 단절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여성 예술가들은 커리어와 아이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고 단언하셨다. 우리는 늘 그런 말을 들어야 했다.  -“헤셀홀트”의 인터뷰


한국과 덴마크 여성의 인터뷰를 실은 이 매거진은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읽기 전부터 갑갑한 현실에 대한 토로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어요. 역시나 읽을수록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어요. 덴마크가 한국에 비해 출산한 여성에 대한 복지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긴 하지만 한국이든 덴마크든 여성이, 특히 엄마인 여성이 주체적인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라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또 엄마가 됨과 동시에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될 것이라는 사상이 비단 한국에서만의 관념이 아니라는 점에서 적잖이 놀랐어요. 


온 세계가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는 ‘엄마가 됨=경력 단절’이라는 공식은, 어쩌면 엄마가 된다는 것이 그동안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만큼 많은 희생과 관심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뜻일거예요. 우리 엄마만 봐도 결혼을 하고 저를 낳으면서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청춘을 희생하셨어요.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엄마의 삶에는 자아보다는 자식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엄마처럼, 엄마가 되어서 희생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요. 그래서 결혼도 출산도 자꾸만 외면 하게 돼요. 곧 결혼을 앞둔 영지님과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팅팅님을 보고 저절로 박수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때문 이예요. 두 분은 저보다 한 발자국 성숙한 분들인 것 같아서요.


나는 내가 나이고 싶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는 있겠지만, 엄마이기에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로서의 나는 작업을 할 때가 가장 자신 있고,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추미림”의 인터뷰

나는 오히려 여성 작가가 엄마가 되면 더 강해지고 커리어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엄마인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에 더욱 예민해지고, 삶에서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사고가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헬렌 뉘복 베이”의 인터뷰   


<자아, 예술가, 엄마> 매거진을 읽으면서 “우리 중 누군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지금처럼 이렇게 함께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매거진 속 여성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도 하루 단 30분, 아이가 자는 시간에 짬을 내서 작업을 해야 할거예요. 지금도 이 한편의 글을 쓰는 데 몇 시간이 걸리는데, 그때는 영영 글을 못 쓰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니 살짝 시들한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시대의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요. 우리 엄마들 시대만 해도 여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우리 시대에는 여자도 당연히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로 바뀌었어요. <자아, 예술가, 엄마> 속 그녀들은 엄마가 되면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흔들림이 왔지만 우리가 엄마가 될 땐 또 다른 흐름을 맞게 될지 몰라요.


엄마로서 삶이 시작되면서 예술계에서 어떠한 식으로든 엄마됨을 마주할 기회가 극히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상태와 예술의 틈에서 자주 외로웠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찾아 공감하고 연대하고 싶었다.  -“김다은” 문화예술기획자의 말    


<자아, 예술가 엄마> 매거진이 만들어진 이유처럼, 매거진 속 그녀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은 것처럼, 같은 처지의 여성들끼리 더 많이 더 자주 소통하고 서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면, 그런 유대관계가 사회적으로 굳게 자리 잡는다면, 우리는 엄마가 된 후에도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몰라요. 한 아이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만이 아니라 리밍, 팅팅, 영지 라는 지금의 자아를 잃지 않고 엄마됨(Motherhood)이 녹아 있는 자연스러운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며 힘든 육아의 시간을 헤쳐나가고 이 사회에 엄마인 예술가, 엄마인 여성으로 불안정함 물리치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엄마라는 존귀함을 살려 따뜻한 가족 소설 한 편씩을 쓰고 있다면 더더욱 좋구요! 같은 주제로 글을 써도 전혀 다른 색을 비추는 우리의 글이 그땐 또 어떤 색을 내게 될지 벌써 부터 궁금해요.


-리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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