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티끌 같은 공허한 존재)
사람이 죽었다. 몇 시간 전까지도 따뜻했을 사람이 싸늘하게 식어 돌처럼 딱딱해져 있다. 사람들이 운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헷갈릴 소리로 울고 있다. 꺼이꺼이 꺽꺽 꺼이꺼이 꺽꺽.... 가끔 나는 생각했다. 즐겁든 슬프든 감정이 극에 달하면 비슷한 소리를 낸다고.
너무 환하다. 가로 28, 세로 36 센티 크기의 프레임에 담긴 홀로 떠난 사람의 표정이 환하다. 왜 하필 저 사진이지. 남은 자들이 애써 찾아낸 걸까 아니면 떠난 사람이 그렇게 기억되길 바라서 미리 일러둔 걸까. 떠난 사람을 감싸고 있는 새하얀 국화 더미가 반사돼 눈이 부시다. 사진 속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떠나면 하얀색 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은 쓰지 말라고 해야지. 사방이 밝아서 옅은 그림자 같은 것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떠난 사람이 닿아있을 저쪽 세상에서도 잘 보이도록 한껏 불 밝혀 둔 걸까. 그래도 너무 환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까지 환할 일인가.
명망 높은 직원이었다고 한다. 세심한 친구였다고 한다. 울면 같이 울어주고 웃으면 더 크게 기뻐해 줬다고 한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애도가 극에 치닫고 다시 괴상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군가 자분자분 이야기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나는 생각한다. 산 사람은 살 궁리를 하는구나.
세상은 어제와 다름없이 돌아간다. 해가 뜨고, 비행기가 뜨고, 사람들은 출근을 하고, 어제 짓다 만 아파트를 계속해서 짓는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어도 세상은 어제를 이어간다. 떠난 사람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힌다. 차마 잊히지 못할 깊이라면 새로운 기억에 조금씩 묻힌다. 떠난 사람은 어느샌가 지구 반대편 얼굴도 언어도 모를, 사실은 세상에 존재하는지 조차 모를 사람과 같아진다. 그저 언젠가 이 세상에 다녀간 티끌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사람이 먼지처럼 털어질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고 애도받고 잊히고.... 그것이 세상의 순리이고 순서겠지.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공기처럼 자리하고 바람처럼 휩쓸려 가는 존재라고. 세상은 사람으로 이뤄지고 사람으로 굴러가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 속에 있을 때라야 기억되는 거라고. 사라지고 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기억들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는 거라고. 사람의 존재란, 사람의 기억이란 그토록 티끌 같고 공허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