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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란 Jan 03. 2024

탄자니아 국경지대 난민캠프 탐방기

키고마 Nyagurusu 난민 캠프, 난민 인권에 대한 고찰

아래는 2021년 11월 방문한 아프리카 탄자니아 Kigoma 지역의 Nyagurusu 난민 캠프 관련 글이다.


난민캠프는 UN 직원이 아니면 매우 들어가기가 힘든데, 그 이유는 캠프 거주자들은 자국으로부터 망명한 신분으로 탄자니아 정부는 그들의 외부와의 접촉에 매우 민감하다. 나 또한 방문 허가를 받기까지 3주가 걸렸는데, 공교롭게도 UN 관련 사업을 하는 기관에서 일했고, 너무 감사한 배움의 기회를 주는 상사를 만났기에 어렵사리 방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난민캠프 방문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으로 또 다른 SDG 분야인 난민 인권, 자치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이다.

UN Mission 비행기만 이착륙하는 - 탄자니아 


#특별한 미션임을 증명하는 캠프 퍼밋을 발급받아 난민촌을 들어갔다


생각과는 달리 너무 질서정연하고 깔끔한 마을이었다. 

캠프 내를 UNHCR 차량을 타고 들어가면, 메인대로를 따라 집과 각종 행정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사람들은 좋은(decent 한) 옷을 입고 있고, 아이들은 깨끗한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놀고, 어른들은 보급품인 자전거로 마을 안을 돌아다닌다. 난민촌 외부로의 경제활동은 금지되지만, 내부에서는 가능하여 탄자니아 화폐로 자신들만의 음식점, 헤어살롱, 작은 농장을 운영하며 경제활동을 한다. 난민촌 곳곳에는 후원한 기구의 표지판이 있는데 약 20개가 넘는 기관들이 마을 존속을 지원하고 있다. 내가 차창 밖으로 얼굴을 비추면, 검은 머리 외국인인 나를 보러 아이들이 집에서 뛰어나온다. 

난민촌은 UNHCR(유엔난민기구)와 탄자니아 정부의 자치를 받고 있어(유엔이 공동체 질서를 세운다) 내부에는 작은 마을처럼 꾸며져 있고 나가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다 구비되어 있다. 병원은 WHO 소관 운영, 학교는 unicef가, 식량 배급소는 WFP, 행정사무소는 IOM… 경찰서는 UNHCR와 현지정부의 공동 운영. 적당한 자본과 지식으로, 무질서한 상황을 유엔 기관만으로 정리할 수 있고, 유엔 매뉴얼대로 시행하면 완전히 작동하는 (자치권은 없지만) 소국가를 설립할 수 있다는걸 여기서 처음 깨달았다. 사회 시스템이 의외로 촘촘하게 잘 짜여져 있음에 감탄하게 된다. 물론 자본의 힘이겠지만 이렇게 이상적인 마을이 또 있을까. 


주변의 허름한 탄자니아 땅과 비교하여 너무나도 좋은 조건에서 보급을 받고 공부(영어 국가인데 프랑스어도 가르친다)도 하니 좋을 법한데, 정작 난민들도 힘든 점이 있다고 한다. 하루하루 기다림과 매일매일 정해진 밥을 정해진 분량대로 먹고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겪어서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게 되면 탄자니아인들이 해코지를 하고 심하면 강간과 상해의 위협을 받는다. 이를 막기 위해 난민 캠프 출입을 엄하게 통제하고 있다.


그도 그럴게, 모든게 아쉽지 않게 구비되어 있는 좋은 환경의 난민 캠프를 시기하는 키고마 지역 원주민인 탄자니아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보아도 캠프 내의 아프리카인들은 내가 보아왔던 일반적인 주변 시골의, 그리고 도시의 탄자니아인들 보다 더 좋은 교육과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단지 난민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이 외국식 교육을 받고 체스를 배우는 호사를 누리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라도 옆동네의 사람으로서 부러울 것 같다.

난민 캠프 안 - 들어가면 입구에서부터 내부로 들어가는 메일 도로를 타고 달리게 된다. 내가 얼굴을 비추면, 아이들이 달려온다.



#난민촌의 배경


캠프의 인원은 많았을 적엔 총 150,000명 정도까지 되는데, 대부분 옆나라의 DRC(콩고민주공화국), 그리고 브룬디 사람들이다. 캠프의 설립은 1996년이었는데, 콩고 내전이 일어나면서 콩고 시민들이 망명을 하여 인구가 탄자니아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브룬디 내전이 있었고, 브룬디 및 일부 르완다 사람들도 오게 되었다. 


이방인들이 들어오자 탄자니아 내부에는 항상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러한 원주민과 난민 간의 텐션과 갈등이 심해졌을때, 해결책으로 어떤 NGO가 마을 주변의 공동 시장 형성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여 마을 입구에 탄자니아 인과 난민들이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공동시장은 흥행하게 되었는데, 물건을 사고 파는 경제활동을 통하여 탄자니아 인들과 난민들의 긍정적인 교류가 늘게 되었고, 부가적으로 타인에 대한 편견이 상호 감소하게 되어 평화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인구가 너무 많아지자 탄자니아 정부가 난민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이에 탄자니아-콩고 및 탄자니아-브룬디 정치인들의 싸움이 일어나게 되면서 국경 지대 텐션이 생겨 난민 방출이라는 강경책과 함께 공동시장도 폐지되고 난민촌에 대한 인식은 원위치로 돌아가게 되었다.


빨간색 표시가 키고마 지역. 국경이 브룬디와 르완다, 그리고 콩고와 함께 맞닿아있다.



#언젠간 떠나야하는 사람들


이곳의 난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국가가 안정화되면 언제든 반드시 UNHCR을 통해 떠나야하는 이별의 아픔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콩고의 안정화에 따라 사람들을 싣고 귀로여행에 출발하는 버스들이 많아졌으며, 내가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을 싣고 귀로여행을 하는 버스들이 보였다.


여기서 콩고와 부룬디 사람들은 별도의 악감정 없이 친구처럼 지낸다. 콩고 사람들은 일을 할때 항상 신나게 하는 습관이 있어 농사 체험 트레이닝이 즐겁다고 한다. 반면 브룬디와 탄자니아 관계가 냉각되어 있어 브룬디 사람들은 현재 유엔의 자기계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UN 직원은 브룬디 사람들이 콩고 사람들에 비해 농사를 더 잘 짓는 법을 알고 있다고 한다. 같이 농사 교육을 받는다고 하니 노하우 같은게 많이 공유가 된다.


난민 캠프의 텃밭. 임시적인 환경이긴 하지만 농사 교육도 받으며, 직접 수확한 작물로 경제활동을 한다.


난민촌 내부는 국가별로 거주 구역이 나누어져 있다고 하는데, 마을 내부는 모두 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 아이들이 다 함께 뛰어논다. 아이들이야말로 자기네가 난민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별해야 함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한다. 탄자니아 정부는 매년마다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난민들을 내보내는 정책을 취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 없이 송환이 결정되어 떠나는 중이라고 한다.


창밖으로 손을 흔들면 아이들이 손을 같이 흔들어주는데, 아이들은 난민으로서의 아픔을 이렇게 나마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이겨낼 수 있다는게 다행으로 느껴진다.

난민캠프 일정 내내 타고다닌 UNHCR 버스.
연탄 사업 - 경제활동의 일종. 난민들의 돈 벌이 수단으로 석탄을 만들어서 외부로 판다.
난민들이 많든 연탄들
연탄을 말리는 곳. 직접 가보면 연기도 많이 나고 열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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