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첫 백신 생산을 위해 간 아프리카 출장
본격적인 나의 백신과의 인연은 2018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KOICA 해외 영프로페셔널 인턴을 나가기 전 맞아야하는 필수 백신은 아프리카 기준으로 총 7개가 있다. 이는 독감, 파상풍, A형 간염, 장티푸스, 황열병, 수막구균, 광견병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18기 2018년 파견 인턴들은, 교육이 끝나고 나서 단체로 코이카 강당에서 해당 백신들을 예방접종하였다. 당시 100명 정도되는 인턴들이 줄을 서서 7가지 백신을 맞으려고 기다리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홀로코스트 수용자들이 대기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렇다고 나가기 싫었던건 아니었다.) 다들 잔뜩 뚫린 팔을 지혈하며, 궁시렁대며 코이카에서 준 무거운 이민 가방을 들고 집으로 갔다.
나는 아프리카로 나가기에, 수인성 질환을 염려하여 추가적으로 권고되는 경구용 콜레라 백신을 병원에서 먹었다. 당시에 나는 구강으로 섭취하는 백신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상태라 삼성병원에서 건네 받은 경구용 콜레라 백신이 매우 생소하였는데, 비용도 무려 8만원으로 만만치 않았음을 똑똑히 기억한다. 하긴, 수질이 거의 지구촌 최상급인 대한민국에서 콜레라 백신은 희귀하겠지.
섭취 방법은 더 신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바이얼(병)안에 있는 백신 원액을, 과립 형태의 발포 가루와 함께 컵에 넣고 물을 기준선까지 따르면 된다. 누가 제조해주는게 아니고 내가 제조하는거라 더 신기하다. 마시자마자 왜 발포 가루가 필요했는지 알게 되었는데, 백신 원액이 날계란 흰자 식감이었다. 맛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은근 새콤달콤 포도맛이다.
내가 마셨던 Dukoral은 1991년도부터 유통되던 콜레라 백신이었으며, 2001년 세계보건기구에서 유일하게 허가된 콜레라 백신이었다. 2012년부터 한국에 유통되기 시작하였지만, 질병관리청은 수인성 및 식품매개감염병 예방지침에 "현재 국내 허가된 경구용 콜레라 백신(Dukoral®)이 있으나 비용대비 예방효과가 낮기 때문에 (66~7% 효과성) 권장하지 않음" 이라고 평가하였다. 2015, 2018년도에 추가적인 콜레라 백신이 보건기구에 의하여 허가되면서 현재는 Dukoral 이외에도 두개 백신 Shanchol™ 과 Euvichol® 콜레라 백신이 유통되고 있다.
정말 놀랍게도 현재 콜레라 백신 가격이 2 달러 미만까지 내려가며, 그 중에서 자랑스럽게도 유비콜은 대한민국의 유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한 제품이다. 참고로 샨콜(인도회사 협업)과 유비콜(한국 유바이오) 둘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국제백신연구소(IVI)가 개발을 위한 기술 이전에 관여하였는데, 우리 회사가 개발에 참여하게 되면서 국제보건을 위해 1회당 4만원짜리 백신을 1달러 30센트로 낮춘 성과가 있다.
좀 더 덧붙이자면, 유바이오로직스가 개발한 Euvichol 은 유리병이 아닌 플라스틱 튜브 용기에 담아 유통되며, 백신 접종일 하루는 실온 보관도 가능하다. 유리용기+냉장보관이 필수인 Dukoral과 달리, 이는 물류비용 감소 및 취급에서의 용이함을 가져다 주고, 유통이 험한 개발도상국에 보급하기 가장 적합한 형태가 된다.
따지고 보면 개발 당시부터 국제보건을 생각한 백신이었던 셈인 것이다.
그 이유는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의 감염 특성에 따라서 백신 투여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기중 전파되거나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전파되는 다른 감염병과 다르게, 콜레라는 수인성 질병으로 콜레라 박테리아가 오염된 물 섭취를 통해 사람의 내장으로 들어오면서 병을 유발한다. 이 경로를 역 이용하여, 반대로 콜레라 백신을 통해 죽거나 반쯤 죽은 박테리아 병원체를 사람의 위와 내장으로 넣어 간의 면역 시스템을 깨워 항체를 생산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정확히는 소화기관 점막의 면역 시스템이다). 따라서 콜레라 백신은 다른 백신과 다르게 경구용 섭취가 가능하다. 정말 좋은 것이, 이렇기 때문에 주사에 숙련된 의료 인력의 부재에도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 회사 연구원들에게 듣기로, 병원체마다의 감염 경로 및 질병 발현 특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발과정에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나는 2023년도 초중반기에 아프리카를 휩쓴 콜레라 질병과 함께, 최근 국제백신연구소에서 경구용 콜레라 백신을 열심히 판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백신연구소는 네팔, 에티오피아, 말라위, 모잠비크에 접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에서 허가한 몇 안되는 백신 중 두개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어, 많은 나라들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의약품 제조사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가나의 DEK Vaccines-유바이오로직스-국제백신연구소 와의 MOU 체결로, 백신 생산기술이 아예없는 나라들에게 의약품 제조 시설이 건설이 되면 언제든 가나 내 백신 협업을 할 수 있는 의지를 보이기 위한 상징적인 체결을 하기 위한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저개발국가에 백신 생산 기술이 부재하면, 결국 역병이나 감염병의 세계적인 유행에 있어서 백신을 구하기 위해 선진국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불평등이 백신의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국제백신연구소의 노력은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