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4화
최근 심리상담을 받던 중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아침형 인간은 자기계발서를 쓰고 저녁형 인간은 소설을 쓴다고.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해 자책하는 나에게 해주신 얘기였다. 저마다 각자의 시간이 있는 거라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정답은 없다. 앞으로 나는 어떤 시간으로 내 삶을 채워가야 할까.
<기록의 쓸모> 중에서
'저마다 각자의 시간이 있는 거라고'
<기록의 쓸모>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구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시간은 늘 뒤로 가있는 것만 같았다. 더 일찍 일어나고 싶어도 미라클 모닝은 죽어도 안 되는 나의 관습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나의 시간에 집중하기보다는 남들의 반짝거리는 모습이 참 부러워했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아갔다.
이 책에서 만난 책 구절은 나를 위로해주었다. '너의 삶을 잘 채워가고 있어'라고 말이다. 위로를 밖에서만 찾았다면 책에서 마주한 위로가 얼마나 따스한지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매일마다 사람에게 위로를 받든, 자극을 받기란 어렵다. <기록의 쓸모>는 책은 언제나 나에게 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떤 글이든 매일 열 줄씩 쓰는 행위에는 꽤 대단한 공력이 들어간다.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아침에 일어나 신선한 원두를 정성껏 갈아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정성의 7.2배쯤 될까. 나를 소개하는 글도 열 줄이 될까 말까인데, 매일 스쳐 지나가는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내는 작업은 단순히 ‘어렵다'의 수준 그 이상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친구나 동료와 나누는 대화마 해도 열 줄은 족히 넘을 텐데. 글은 왜 그렇게 쓰기 어려울까. 단골 카페에 앉아 갓 구운 빵과 커피 한잔을 놓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하늘에 대해서만 써도 서너 줄은 나올 텐데 말이지
빵과 커피와 하늘에 ‘나’를 넣어야 하기에 어려운 걸까. 하루 열 줄에 대한 생각을 쓰다 보니 어느덧 분량을 채운 듯하다. 뭐든 해봐야 안다는 인생 선배들의 말은 역시 옳다. 꾸준히 잘하느냐가 관건이겠지만.
<기록의 쓸모> 중에서
글쓰기에 정성이 들어가는가?라고 묻는다면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릴 테다. 고개를 끄덕거리고 또 말할 듯싶다. 하루 열 줄씩 쓰는 행위에도 꽤 대단한 공력이 들어간다는 말에 공감한다. 브런치에 70개가 넘는 글을 써 내려가고 퇴고를 했지만 매번 어렵기만 하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주제로 쓸까?', '이 책 구절이 글과 잘 어울릴까?' 하는 질문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 다닌다. 문득 글쓰기와 관련된 시간이 나의 이름에 걸맞은 나를 만든 거라는 생각도 든다. 글쓰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묻는다면 부정의 답을 내릴 거라 생각한다.
글쓰기를 한다면 매일 나에게 '오늘의 나'를 마주할 기회를 준다. 아쉬운 하루든 만족하는 하루든 오늘을 돌아보는 힘을 키운다고 생각된다. 우린 매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달라짐에도 알지 못하는 건 명확히 나를 보지 못해서가 아닐까.
저자가 쓴 <기록의 쓸모>를 읽다 보면 '꾸준히 쓰는 삶이 가지는 이점'을 이야기해 준다. 꾸준히 읽고 쓰는 삶이 얼마나 나를 만들어주는가라고 물어본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사진출처 : Unsplash의Kelly Sikkema
대학에 와서 기록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메모로 끝나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삶이었다. 이 책만큼은 3번 넘게 정독하면서 꾸준히 기록하는 동기부여를 준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그 책들은 나에게 같은 질문을 스스로 묻게 만들었다.
"그래서, 너는 어떤 어른이 되고 있어?"
질문들은 나를 한층 더 성장하게 만들었고 기록의 이점을 하나씩 알게 해 주었다. 기록하지 않는 삶은 성찰하지 못하는 삶, 멈춰있는 삶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록하는 어른이 되고 싶은 난, <기록의 쓸모>를 읽으며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난, 언제나 기록하는 어른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