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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kim Mar 11. 2020

아홉 번째 산맥

10. 누군가는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보라카이 여행기 챕터 투

 


시드니에서 보라카이로 가는 항공편엔 직항이 없다. 일단 마닐라 공항에 내려 보라카이 인근 지역(?)으로 향하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당연지사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리 예약해 놓은 버스를 타고서 선착장으로 가 십 수명의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탄다. 나름대로 깔끔한 배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린다. 조디는 뱃멀미가 심했기에 이쯤부터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하선을 하고서 주위를 둘러보면 필리핀 사람들이 난생처음 보는 교통수단 옆에서 호객행위를 한다. 트라이시클(또는 툭툭)이라 불리는 그 이동수단은 오토바이 뒤에 천막의자를 매단 것과 같은 형상을 했는데 그 기묘한 것을 타고서 10분가량을 달린다. 가는 도중에 '여기가 보라카이라고? 진짜 다 와간다고? 제대로 가는 거 맞긴 해?'를 세네 번 반복하다 보면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상아색 모래사장과 에메랄드 빛 바다의 보라카이가 나온다.


 


보라카이 도착 시간은 대략 저녁 7시에서 8시 가령됐지 싶다. 꼭두새벽에 집에서 나와 하루 온종일을 이동수단들에 실려 넘실넘실 대고서는 저녁에서야 땅을 밟은 것이다. 우리는 도착 즉시 짐만 던져놓고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나는 보라카이 화이트비치 내 1 존 2 존 3 존 중, 어디 레스토랑에서 무엇을 시켜야 실패를 하지 않는지, 보라카이 맛집은 어디인지, 꼭 먹고 가야 할 음료는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세세한 계획을 짜 왔으나 내 뒤를 따르는 망나니 둘은 촘촘한 그물망처럼 잘 짜여진, 빛나고 고운 그 계획서를 산산조각 내다 못해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술 취한 사람들이 차고 흐르는 보라카이 비치 근처를 정처 없이 배회하다 그냥 사람이 많아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해산물 뷔페였는데 정말이지 맛대가리 없었다. 나는 양보다 질을 선호하는 쪽이라 뷔페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4일간 이 뷔페에 매일 아침 방문하게 되어있다.


이유인즉슨, 우리가 해변가를 돌고 돌다 결국 들어간 곳이 알고버니 리조트와 연결된 조식 레스토랑이었던 것이다.(저녁은 해산물 뷔페로 바뀌는 듯했다). 그로 인해 조식을 먹는 5일 내내 몹시 언짢았던 나 자신을 위로한다.




첫 판부터 망 스멜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열심히 임했다. 남들 다 가는 맛집이 아닌 숨겨진 보석 같은 곳에서 1일 2 망고 주스를 실천하기도 했고, 디몰 (보라카이 번화가) 근처의 기깔나는 발마사지 가게로 망나니들을 이끌고 가 극찬을 듣기도 했다.


또 한가지 필리핀 여행 팁을 하나 주자면, 인터넷 검색 결과 필리핀은 공산품이 좋지 않은 나라라고 했다. 샴푸 린스 폼클렌징의 질이 매우 떨어지니 꼭 사들고 가라는 꿀팁을 보았기에 고것들을 사부작사부작 챙겨갔지 말이다. 제나와 조디는 보라카이의 대형 슈퍼마켓인 버짓 마트에서 팬틴 샴푸와 린스를 구입했는데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머리가 거의 뻣뻣한 빗자루가 되었다고 불평을 했더랬지.

역시, 사람은 계획 하에 움직여야 한다.


굉음



하루도 되지 않아 제나가 돼지코를 잃어버렸다. 당장 핸드폰 충전을 해야 했던 제나는 저녁에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직원이 말하길 바로 근처 큰 시장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스멀스멀 기어나가 보았다. 시장은 중국의 어느 야시장 느낌이 드는 복잡하고 미로 같은 곳이었다. 이 곳 저곳을 쏘다니다 저렴한 가격에 돼지코를 구입하고서 제나의 핸드폰을 그에 맡기고 잠이 들었다.


새벽 다섯 시쯤 되었을까. 파랗게 동이 틀 무렵이었다. 빠빵! 하는 굉음에 발작하듯 일어났다. 허둥지둥하는 날 다독거리며 괜찮아 밖에서 난 소리야. 하는 제나의 팔을 뿌리쳤다.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나는 허겁지겁 불을 켰고 저녁에 산 돼지코의 폭파 현장을 목격했다. 호다닥 충전기를 빼내니 돼지코는 이미 시커멓게 탄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충전기는 무사했다.


다음날 제나의 말을 들어보니 밖에서 총싸움이 난 줄 알았다고 했다. 허 참. 이 곳은 필리핀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대나 뭐래나. 새카맣게 변한 호텔 콘센트에 난감해진 우리는 일단 아침 식사부터 하고 들어오자고 했고, 짜디짠 밥을 먹고 들어와 보니 콘센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끔하게 고쳐져 있었다. 우리 둘은 그 모습에 더더욱 소름이 끼쳤다. 콘센트 폭파쯤은 아무 일 아니라는 양.. 자주 있는 일이라는 양.. 숙박객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쳐놓은 이 나라는.. 대체..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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