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도 Jul 16. 2024

어머님 생신 축하드려요

당일치기로 안동에 다녀왔어.

운전을 한 것도 아닌데 누나 왜 이렇게 피곤한 거니.

형이 매번 그래.

“닌 운전 안 해서 피곤하겠다.”

나는 그래도 올 때는 안 졸았다고.

근데, 따님은 오가는 길 풀로 꿀잠 주무시더라.

시댁에 가면 누나 항상 형 옆에서 밥을 먹었어.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하니까.

형도 간만에 가족들 만나면 여유 있게 먹고 웃고 얘기 나누고 싶을 텐데….

유주가 제법 커서 이젠 누나를 잘 챙겨줘.

반찬 위치며 종류도 알려주고, 냅킨이며 물도 갖다 주고.

고맙고 기특한 지고.

어제는 언니 같은 형님이 누나 곁에 앉아 살뜰히 챙겨주신 덕택에 오리 고기를 배불리 먹었어.

문득 ‘이제 같이 식사해도 불편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구나.’ 깨달았네.

누나 원체 사회성 떨어지는 인간인지라 불편한 자리에서는 밥도 잘 못 먹잖아.

유독 식사 장면이 그래.

맹인 밥 먹는 모습이 웃겨 보이면 어쩌나 싶고, 흘리면 또 창피하고, 반찬 위치 물어보는 것도 조심스럽고 여러모로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안 넘어가는 거야.

반면 형이랑 뭘 먹을 때는 너무 빨리, 많이 먹는 통에 맥없이 핀잔을 들어.

부부가 오래 살다 보면 어딘가 동성이 되어가는 듯한 익숙함이 있거든.

누나 어릴 때도 별로 여성적인 매력 같은 거 없는 학생이었는데, 나이 드니까 더 해.

같이 사는 남자한테는 조금 미안할 때가 있지.

 작년 겨울에 아버님 떠나시고 홀로 계시는 어머님이 그래도 잘 적응하시는 것 같아 다행이야.

요즘은 생활지원사가 특정 시간에 가정에 방문하여 건강 체크도 하고 말벗도 되어 드린다더라고.

주 2회 유선으로 어르신들 ‘안녕’을 확인, 관리하기도 한대.

꽤꼬리 같이 맑은 목소리를 가진 우리 형님은 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하셨단다.

응, 형님의 맏아들, 그러니까 유주 사촌 오빠가 지금 경찰 시험 준비 중이거든.

더위에 고생하는 아들 뒷바라지 하시다가 엄마도 공부하는 모습 보여주자 싶어 결심하셨대.

아름다운 모성이여라.

성격 좋은 우리 형님, 강의실에서도 단연 분위기 메이커.

도시락 숟가락통 흔들어 가며 노래도 한 자락 부르시고, 필기 잘하는 언니 노트 유심히 보셨다가 누나에게 다 얘기해 주시는 거야.

생동감 넘치는 표현력, 끝내주십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누나집 이사하고 안동 식구들이 한 번 다녀가신 적이 있었어.

그때 형님이 누나 손 잡고 우리 집 벽지 모양을 설명해 주셨었거든.

누나 만나기 전에는 시각장애인을 접해본 적 없으셨을 텐데도 어쩜 그리 자연스럽게 누나 궁금했던 지점을 콕 집어 말로 풀어 주시는지….

형님이랑 통화하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니까.

웃다 보면 거짓말처럼 두 시간이 가 있다.

안동 가면 형님 어깨며 허리 차분하게 만져 드리고 싶은데, 매번 마음뿐이네.

취업 준비하느라 고생하는 조카 등판 한 번 못 만져 주고 돌아오기 바빴구나.

선량한 우리 어머님, 손주 해외여행 간다는 소식 들으시고는 글쎄 금일봉까지 챙겨 주셔서 깜짝 놀랐잖아.

멀리 있어도 늘 함께 인 듯 가까운 가족이로세.     

매거진의 이전글 나눔 → 감사 → 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