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토요일.
소녀가 교회 중등부 행사로 롯데월드에 놀러 간 거야.
7시 집합을 지키려면 집에서 30분 전에는 출발을 해야 돼요.
알람 소리도 못 들었는데, 소녀가 쪼르르.
깜짝 놀랐지 뭐야.
난 내가 깜빡 늦잠 잔줄 알고 혼비백산 일어나 시계를 봤더니 5시 34분.
신청 접수할 때는 그렇게 뜸을 들이고 별생각 없는 것처럼 미적지근하시더니 막상 당일 아침 되니까 유치원생은 저리 가라일세.
교회 데려다 줄 때는 아빠차가 있었어.
모처럼 세 식구 나란히 집을 나서서 아이 교회 내려주고 남편이랑 콩나물국밥 한 그릇하고 들어왔지.
문제는 소녀의 귀가였으니.
할머니는 출타 중, 아빠는 야근이었거든.
며칠 전부터 궁리를 한 거야.
‘유주 단짝 친구 엄마에게 부탁해 봐야겠다.
아침에는 우리 차로 가고, 저녁 때는 그 엄마 차로 오면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겠지?’
나름은 해결책을 찾았다 생각하고 톡을 보냈어.
친절한 그 엄마 즉각.
“ㅎㅎ 네. 걱정하지 마셔요. 안전하게 데려다주겠습니다.
그런데 아침에는 너무 멀지 않을까요?
바쁘실 텐데 그냥 제가 교회로 데려다 줄게요.”
형한테도 톡을 보냈지.
아침에 친구도 태워가야 한다고.
이쪽 답은 이랬어.
“그 친구 태워가려면 집에서 6시에 나가야 해. 거리가 얼마나 먼데·”
그때부터 내 맘이 사정없이 불편한 거야.
‘그 시간에는 힘들겠구나.
그럼 저녁 때는 어떻게 하지?
그 친구 집과 우리 집, 교회 동선이 그렇게 멀다는데, 이 엄마인들 밤늦게 안 피곤할까.
부탁은 철회.
그럼 소녀를 어떻게 데리고 올 것인가.
9시가 넘어 혼자 택시를 태울 수도 없고.
내가 교회로 나가서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와야겠구나.
혼자 그 컴컴한 곳에 기다리고 서 있는 꼴이 초라해 보이지는 않을까?
아! 내 아빠랑 동행하면 되겠구나.’
당장 전화를 했어.
‘아이고 왜 안 받으신대.
벨 소리가 또 안 들리시나?’
어제도 퇴근하면서 뭐 간식거리라도 사다 드릴까 싶어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셨거든.
아빠 귀가 어두워지신 후로는 옆에서 대화하기도 쉽지가 않고 전화벨 소리도 종종 못 들으셔.
‘그냥 나 혼자 가야겠다.’
그렇게 교회 갈 체비를 했어.
다행히 차가 잘 잡혀주네.
차 오기 10분 전, Oh, my god!
아빠가 부재중 보고 전화를 하셨더라고.
덕분에 아빠 손잡고 맘 편히 교회에 갔지.
로비에 앉아 기다리는데 특별 집회가 있는지 강사님 설교 말씀이 쩌렁쩌렁 이 맹인 귀를 꽉 채웠어.
오호, 마침 시각장애인이 등장하는 말씀을 하시더라고.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성경 말씀이라며.
“니가 맹인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이니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마음의 눈을 뜨라는 건데…
아, 저 말씀도 뭐 즐거울 수는 없으나 그래도 내 안에 하나님 주시는 평안이 있으므로.’
특별 집회가 있는 줄도 몰랐던 이 나이롱 집사 로비에서 귀동냥을 하고 있자니, 롯데월드 일행이 도착했어라.
친정아버지가 로비 밖으로 나가 동태를 살펴서 유주를 맞아 주셨어.
내가 헤매는 꼴 안 보이고, 할아버지가 아이 맞아 주시고, ‘감사’ 로고.
유주가 다가와 내 무릎에, 친구 하하는 내 곁에 앉아 재잘재잘 무용담을 늘어놓았어.
“엄마 나 자이로스윙 탔음. 하나도 안 무서움.
그때 엄빠 나 빼놓고 탔던 거, 그거 롤러코스터 있잖아.
그것도 탐.
엄마 이거 만져봐라.
기념품 샵에서 삼.
하하는 여우 사고 난 이거 사서하고 다님.”
“으음, 이 토끼귀를 열네 살이나 드신 분께서 무려 돈을 주고 샀단 말이지.”
다시 택시를 부르고, 안전하게 귀가 성공.
비로소 긴장이 풀렸어.
눈 뜬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내게는 산너머 산일 때, 유주 아빠 1분이면 해결할 거 내가 10분도 20분도 좋도록 진척 없이 헤맬 때 어디 한두 번이냐만.
하루 종일 침대에 딱 붙어 드라마 『토지』 진도만 뺀 오늘이었어도 부지런한 유주아빠 청소하고 빨래하는 거 모른 척했어도 이 밤 유주 귀가에 성공한 어미는 기꺼이 ‘만족’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