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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Jun 07. 2024

공감, 그리고 ㅡ 원본글, 못다한 이야기

20240325

제 그림 어때요?

그림을 보며 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귀는 솟아오르고 동공이 커지는 느낌이다. 한마디도 놓치기 싫어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특히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또는 처음 들어보는 소감이면 더 그렇다.

나의 작품에서 봄호의 키워드를 찾기 위해 8명이 모였다. 7명의 관객에게, 더군다나 따뜻한 시선이 깔린 상태에서 작품 감상평을 듣는 일은 흔치 않은 귀한 시간이었다. 그림으로 주목을 받는 건 언제나 설레면서도 약간의 부끄러움이 있어 회의 내내 들뜸상태였다. 이미지는 고사하고 10초짜리 영상도 다 보기 인내가 필요해 다음으로 넘기는 시대인데, 내 그림을 가만히 천천히 보는 모습들은 꽤 감격스럽거든.


키워드 후보로 소실점이 있었다. 봄호에서 나올 여러 이야기를 관통하면서도,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감상평이라 흥미로웠다. 처음 소실점이 언급되었을 땐 내 그림과 소실점은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의아했는데 내용을 듣고 보니 그것을 알아챈 시선이 나의 노고를 알아준 것 같아 감사하기까지 했다. 작업을 하면서 일부러 명암이나 투시를 해체하려고 애썼던 지점을 발견하신 거였다. 인물이나 배경의 집중도를 위해 또는 분위기나 시각적 표현을 위해 그렇게 망가뜨리려 했던 소실점이 역설적으로 더 드라나 버리고 말았다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주제가 소실점이 되는가 싶었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느샌가 우리는 힙으로 통일되었다.

요즘 세상에 힙을 이길 수 없긴 하지. 힙하다는 거. 이 시대 최고의 멋짐이 가득한 칭찬이다.

'제 작품에서 힙이 나오면, 이참에 작가 이미지 쇄신을 해볼래요.' 진심 가득한 농담이었다. 소재가 할머니라, 재료가 페인팅이라, 작가가 어르신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아니라서 오히려 매력적이라고 말해주는 분들도 있었지만, 나도 나이가 드니깐 작업에서 올드패션이 느껴지나 하는 약간의 자격지심을 깨고 싶었다.  


봄호의 키워드는 힙이 되었다.



내 그림이 힙하대요.

"저 할머니 왜 이렇게 힙해?" 그림을 선보일 때마다 몇몇 관람객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오 정말?" '작업하면서 한 번도 생각지 못한 건데 그런가? 힙하다니 너무 좋은데!'

나는 어떤 부분에서 그게 극찬으로 들리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힙은 구식과 신식의 절묘한 조화이다. 그래서 빈티지 패션이, 레트로 굿즈가, 힙하고. 할매카세라고 불리는 노포 맛집이, LP 바가 힙하다.


그렇다면 이 시대 진정한 힙스터는 내가 그리는 길에서 만난 할머니들이 맞는 듯하다.

일단 거대한 화면에 원색이 시선 강탈이다. 투머치한 화려한 패턴이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있다. 산, 바다 유치하리만큼 직관적으로 그린 배경이 보인다. 인물들의 표정은 시크하게 무심하나 발걸음에는 기운생동 함이 있다. 조금은 귀여운 듯 손선풍기, 오이, 대파 등 생활 속 흔적들이 보인다. (관람자의 의견과 주관적 나의 견해를 모아보면 이렇다) 또한 주어진 역할과 환경에 최선이면서 계속 나아가는 진취적인 삶, 재미와 열정을 추구하는 삶,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믿으며 그 안에서 충족하고 충만함을 느끼는 삶을 사는 사람들.

내가 그리는 장바구니를 든 할머니들은 그럴 것이다.

사실 어쩌면 할머니를 그리면서 나의 이상향으로 투영하고 있으며, 때로는 흔들리는 내가 의지할 버팀목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늙어가길 바라면서.



나도 힙해지고 싶어.

이 힙한 할머니들을 그리면서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뿐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파헤치는 경험을 하고 있다. 2019년부터 지하철역 부근에서 보이는 어르신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바구니를 든 할머니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거침없는 말투, 행동이 흥미로워 드로잉을 했으나, 작업이 진행될수록 사실은 그 안에서 느낀 어떤 불편한 마음을 극복하려고 어느 순간부터 귀여운 시선으로 바라보려 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성향인 것을 그때 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페인팅 작업으로 이어오면서, 불편한 감정을 왜 할머니로 풀게 되었나 스스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대상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완벽한 모성애에 대한 동경과 결핍, 두려움이라는 여러 감정이 녹아 있었다. 그것은 나, 엄마, 할머니로 투영되어 있었고, 타인에 대한 이해가 곧 나를 이해하는 방법인 것을 작업을 하며 알아가고 있다.


약 20년 전 그림을 시작한 순간부터 늘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9년 전 나는 디자인회사의 실무자였고, '공감 그리고'의 디자인 용역을 따기 위해 재단에 방문한 적이 있다. (아쉽게도 그 당시 회사가 따지 못했다) 그런 내가 모험의 시간을 지나 지금 봄호의 주제를 뽑아내는 작가로 회의에 참석하다니! 회의 당시에는 와닿지 않던 이 감정이 며칠 뒤 지인을 만났을 때 고조되어 서로 이보다 더 힙할 수 있을까라며 자화자찬의 시간을 가지며 서로를 응원했다.

예술은 결국엔 작품보다 작가가 남는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하는 게 아직 예술이라 하기에도 모자라지만 어쨌든 그 과정에 막 발을 들였다 한다면) 내 그림이 힙한만큼 나도 힙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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