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밍아웃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오픈하는 일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 회사의 보스나 가까운 동료 등 내가 병원에 얼떨결에 입원해서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쉽고 자연스러웠다.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제발 암이 아니었으면, 혹시 암이 맞더라도 치료가 잘 되는 종류였으면,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마음을 잘 다잡고 지냈으면 하는 나의 바램들을 기도편지로 적어 지인들에게 나누었기에, 내 상태를 알리고픈 1차적인 사람들의 리스트는 자연스레 나온 셈이었다.
어디가 아프다는 사실을 비밀처럼 혼자 품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딱히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를 마주쳐서 잘 지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마음이 동하면 나의 상황을 나누었다. 누구 한 사람의 기도라도 더 필요했기에. 아무리 현대의학과 약이 좋다 한들 암은 여전히 무서운 병이었기에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했고 많은 이들이 눈물을 비추어 주었다. 꼭 안아주는 사람도 있고 손잡고 바로 기도해 주는 이들도 있었다.
연락이 뜸하게 지내다 뜬금없이 소식을 전하게 되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특히 그랬다. 한국을 떠난 후로는 여기의 삶에 바쁘게 지내느라, 그리고 4시간의 시차가 생각보다 굉장히 애매했던지라 , 마음처럼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그들은 오랜만에 연락 해도 어제 만난 것 같은 반가운 사람들이다. 그들 중 누군가에게는 갑자기 연락해서 내가 암에 걸렸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비록 자주 연락하지 못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내 삶에 중요한 사람이랍니다, 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내 상황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내가 일하며 만나는 클라이언트들이었다. 그들 각자의 상황과 사정들은 다 다르지만, 모두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뭔가 동병상련의 느낌을 느끼면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내 처지를 좌라락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상황과 목표에 맞게 필요한 서포트를 하는 것이 나의 일이고, 나의 개인 정보를 과도하게 공개하지 않아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 또한 기본 중에 기본이다.
병가를 내기 직전, 일을 마무리 하며 내가 맡았던 사람들을 다른 동료들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는 클라이언트들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왜 쉬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대부분 착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라 같이 속상해 해주고 이해해주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반응은 이거였다.
“아니 너처럼 좋은 사람에게 왜…”
암은 사람이 좋고 나쁜 거랑은 아무 상관이 없이 찾아온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이 나라의 분위기가 이럴 때는 편리하다.
하지만 늘 예외가 있는 법이다.
나는 사실... 두 사람에게 진작에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첫번째는 J였다. J는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좀 괜찮아진 상태였는데 하필 그 때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을 발견해서 수술을 했었다. (뉴질랜드는 높은 자외선 수치로 피부암 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흑색종은 전이가 빨라 다른 부위에서도 혹시 모를 가능성이 있기에 그녀는 또 다른 조직검사를 앞두고 있었다. J와 이야기를 하는데 암에 걸려 무거웠던 마음과 조직검사를 앞두고 있는 마음에 대해 털어놓으며 그녀는 덧붙였다.
“넌 모를 거야...”
그게 딱히 나라서가 아니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한 말일 터였다. 근데 나 그거 알지...
털어놓을까 말까 몇 주를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게 오히려 관계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어느 날 또 그녀의 “넌 모를 거야”에 타이밍을 잘 잡아 들어갔다.
“사실 나 알아.”
목에 조직검사를 한 자국은 이제 흉터가 되어서 감추려고 해도 티가 나기 때문에 목을 가리키며 말해주었다.
“나도 얼마 전에 조직검사 했어. 맞아, 많이 아프더라. 결과 나올 때 까지 너무 불안하고.”
눈이 동그래진 그녀에게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몇 주 전 갑자기 아파서 못나왔을 때 사실은 병원에 있었노라고. 아마 조만간 치료를 위해 일을 쉬어야 할 것 같다고.
그날 그 순간 이후로 그녀와 나는 뭔가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겼다. 가족도 친구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이해하는 사이. 그냥 말로만 이해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같은 고통을 경험해 본 사이. 라포의 깊이가 전과는 많이 달랐다.
또 다른 사람은 K였다. 어느 날, 나를 만나기로 한 시간에 K는 공황 장애가 왔다. 겨우 이리저리 그녀를 다독여 안정을 시켰는데, 갑작스런 공황 장애의 이유가 수면제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의사를 만나 약 처방을 바꾸고 싶어했고, 우리는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은 만원이었다. 조용한 가운데 말을 하는 사람은 오로지 K 뿐이었다. 본인의 힘든 상황을 읊조리며 처지를 한참 한탄하던 그녀가 문득 나를 빤히 보더니 슬프게 말했다.
“나도 너처럼 보통 사람 normal person 이면 좋겠어.”
보통 사람이란 뭘까. 내 몸과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보통 사람, 이게 그녀의 정의였다. 그녀의 상황이 힘든 것은 맞지만,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또한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힘을 발휘할 때가 아직 안 되었는지, 자꾸 부정적인 생각과 자기 연민의 늪으로 빠지고 있었던 K. 응급실에서 대기를 한 지 한 시간이 지나고 너처럼 보통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세 번 쯤 들었을 때, 나는 그냥 말해버렸다.
“나도 딱히 보통 사람은 아닌지도 몰라. 사실 나는 암환자야.”
K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고, 안 그래도 조용하던 응급실은 물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K가 놀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내가 그 동안 너무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이냐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이 밝을 수 있냐고, 너는 내가 아는 가장 명랑한 upbeat 사람이라고, 암환자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K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응급실의 모든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침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는지 모르겠는데, 그날 이후로 K는 조금씩 바뀌었다. 뭐라도 시도해보려고 알아보기 시작했고, 어디라도 참여해 보려고 노력을 했다. 나의 건강 상태를 물어오기도 했고, 기도하겠노라고 하기도 했다. 예전에 비해 확실히 나아졌다.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이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다만, 사람은 다 각자의 힘든 점이 있다는 것을 한번은 말해주고 싶었고, 너의 아픔을 내가 이해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을 털어놓고 나니 이들을 대하는 것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쉬워졌다.
암밍아웃은 어쩔 수 없이 나를 연약한 존재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내 편을 하나씩 늘려 주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