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며 숱한 터널을 지나가게 된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높은 산에 터널을 뚫어 빠르고 쉽게 가는 터널도 있고, 강이나 바다를 뚫어 태풍 등 기상악화에도 언제든 오고 갈 수 있게 만든 편리한 해저터널도 있다. 인간에겐 피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반면에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피할 수 없는 위험도 곳곳에 널려있다. 나는 터널을 지날 때마다 붕괴되거나 앞차의 교통사고로 피할 수 없는 위험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고정관념의 스트레스를 감내해야만 한다. 우린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터널을 숯하게 지나가고 있다.
“지금 볼 수 있니. 나 며칠 뒤에 군 입대야”
전화 넘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9시 저녁 뉴스가 끝날 무렵이었다. k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사고를 친 후 대안학교에서 졸업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군에 입대한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었던 K 엄마가 나를 귀애했던 탓에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명동 지하 술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가까웠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영업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홀 안은 썰렁했다. “친구야! 여기.”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기는 K 앞에는 술에 취해 탁자에 엎드린 여자와 K 어깨에 기대어 있는 또 한 명의 앳된 여자가 보였다. 그녀도 이미 인사불성인 상태였다. 술상 위 차림으로 보아 너덧 명은 이미 자리를 떴고 주인공인 K와 여자 두 명만 남은 것 같았다.
미남에 덩치 크고 말솜씨 좋은 K는 고등학생 때부터 음악다방에서 DJ를 보며 젊음을 불태우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DJ의 외모와 능력에 따라 음악다방의 성공 여부가 달려있었다. LP 판의 음악을 틀어주던 그 당시 신청곡과 구성진 사연을 모양새 나게 읽어 내리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서 여학생들로 가득 찼다. 그의 인기도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남자 친구들에겐 속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따돌림당했다.
“뭐야! 내 이럴 줄 알았지.” 또 속은 것이다. 야릇한 눈짓을 내게 보내며 그 친구는 기대어 있던 여자를 부축해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졸지에 탁자에 퍼져 있는 여자애와 둘이 남게 되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자가 술 취하면 대책이 없다’라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영업은 끝났고 나는 주인의 도움으로 얼굴도 보지 못한 그녀를 둘러업고 밖으로 나왔다.
심야버스가 없었던 당시 이미 버스는 끊어진 지 오래였고, 택시 잡는 인파로 대로변은 북새통이었다. 고래고래 목적지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요금의 두 배를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합승하기 위해 택시 기사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를 보곤 머리를 돌렸다. 행선지를 물어보았던들 그녀의 집이 어딘지도 모르니 난감하긴 마찬가지였으리라. 양 떼를 모는 개처럼 방범과 경찰은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통행금지 시간이 임박함을 알려왔고, 취객들은 명멸되는 택시의 깜빡이에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행인들은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바닷가의 갯강구처럼 쏜살같이 사라져버리거나 파출소에 연행되어 하룻밤을 지새우고 벌금 딱지를 주먹에 움켜쥔 채 새벽녘에 나올 것이다.
남대문 시장에서 남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 변엔 노동자들을 위한 여인숙이 줄지어 있었다. 몇 군데를 둘러보았지만 아래위를 훑어보곤 혀를 차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통행금지 직전 막다른 골목에서 대머리 여인숙 주인과 최악의 단판을 해야 했다. ‘웃돈 더 드릴께요’
널빤지로 써 놓은 ‘남산 여인숙’의 주인은 마지막 손님인 우리에게 선심 쓰듯 가장 끝 골방을 내주었다. 흠뻑 젖은 땀에 미끄럼 태우듯 그녀를 등에서 방바닥으로 밀어 내렸다. 그녀는 잠시 눈을 뜨며 K를 찾았다. 엄마의 따듯한 품을 떠난 갓난아이처럼. 뭐라 설명할 겨를도 없이 누렇게 변색되고 찢어진 장판 위에 그녀는 또 기절하듯 잠들었다. 낡은 벽지엔 음서와 붉은 그림으로 가득했다. 등을 벽에 기댄 채 여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숩지 않은 짙은 화장은 미성년자임을 알리는 명찰 같았다. 성년식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갓 스물의 K를 오빠라고 부르니 만 20세가 되지 않은 여고생이 분명했다. 하염없이 늘어져 새근대는 앳된 여자의 애처로운 모습과 K를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아마 두 여학생 모두 K를 좋아하는 삼각관계였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불심검문이라며 여관 문 흔드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아까 우리를 보며 수상히 여긴 경찰이 임검을 나온 것 같았다. 때마침 여자는 토하려고 몸을 움찔거렸고 난 재빨리 휴지통을 머리에 밀어 넣었다. 방문이 세차게 흔들렸고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문을 열었다.
경찰은 주민등록증을 요구했고 나는 곧 입영한다며 영장을 내밀었다. 당시 군에 입대한다면 웬만한 것은 눈감아 주던 시절이었다. 여자는 휴지통에 얼굴을 묻고 한창 토하는 중이었다. 시큼하고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주인은 험악한 인상을 쓰며 온갖 욕을 다 퍼부었다. 경찰도 냄새에 못 이겨 그냥 나가버렸다. 난생처음 들어와 보는 여인숙 하며 그것도 낯선 여자와 합숙하다가 불심검문까지 받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심장은 오래도록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짧지만 길고 먼 생각으로 한라산 숲 터널을 지나왔다.
제주엔 터널이 없다. 화산 섬인 이곳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터널을 팔 수가 없는 지질이다. 하지만 제주시에서 5.16 도로를 넘어 서귀포시로 진입하면 아름다운 숲 터널이 나온다. 봄엔 연두와 초록과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여름이면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숲 터널에서 새들이 합창한다. 가을엔 한 해의 폭풍우를 잘 견뎌낸 형형색색의 단풍이 오고 가는 이의 마음을 정화한다. 봄 숲 터널처럼 연두색 사랑도 초록색 꿈도 녹색의 희망도 키웠던 젊은 시절의 과거 속에 잠시 머물며 아름다운 숲 터널을 벗어났다.
속을 게워 낸 여자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곤히 자고 있었다. 천장의 작은 벌레는 자리를 옮겨 다니며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고 나는 그 감시자가 그녀의 몸에 떨어질까 불안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또 다른 감시자가 되었다. 새벽 4시 다시 통금 해제의 사이렌이 울렸다. 나는 작은 쪽지 하나를 써 여자 머리맡에 놓았다. ‘이상 무’ 모두가 잠든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곧 떠오를 해를 맞이하기 위해 남산을 무심히 올랐다.
숲 터널을 벗어나자 멀리 바다가 보였다. 수평선 위에 구름이 흘러 내게로 오고 있었다. 여인숙까지 가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인숙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떠나 의연히 천장을 바라보며 사랑의 정의와 의미를 되새기며, 피할 수 있는 위험을 용케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 한순간의 욕정으로 잘못된 위험에 빠졌다면 지금까지 죄의식 속에서 살았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어찌 나 뿐이었겠는가. 여고생이었던 그녀 또한 눈을 감은 채 터널을 역주행하며 가속 페달을 밟은 젊은시절의 자신를 원망하며 지금껏 분노의 목소리로 삶을 후회 속에 보내며 살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몰려왔다. 뭉게구름이 하얗게 웃고 있었다. 해 질 녘 나가 밤새 경계근무하고 동틀 녘에 부대에 복귀하여 이상유무를 보고하는 초병처럼,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감사한 마음으로 크게 외쳐 보았다. ‘내 인생은 이상 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