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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정 May 13. 2022

나쁜 감정이란 없다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칼럼 18]


  “사람 자체를 만나는 게 싫어지더라고. 피곤하고 지긋지긋해서.” 


  그동안 연락이 뜸했다. 안 본 사이 많이 수척해진 그녀를 보고서 적잖이 놀랐다. 두어 달에 한번 정도는 만날 만큼 자주 보던 사이인데 이번에는 다시 보기까지의 기간이 한참이나 길었다. 연락의 빈도가 줄어드는 동안 많이 바빠서 그런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녀가 내뱉은 첫마디를 듣고서 많이 지쳐있음을 알 수 있었다. 평소 힘든 일이 있어도 잘 내색하지 않는 친구가 그렇게까지 표현하는 것으로 봐서 오랫동안 많이 힘들었을 거란 걸 쉽게 짐작이 가능했다. 한동안은 어느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도,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그 사람이 싫어서 사람이 싫었는데 누군가를 계속 욕하고 비난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보기 싫더라. 그러고 있는 내가 더 미웠어.” 


  “누군가가 미울 수 있지. 화가 날 수도 있고 욕하고 싶을 수도 있어. 그러면 안돼? 그게 잘못된 거야?” 


  내 말에 친구는 조금 놀란 듯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소리 없이 주시했고,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어. 감정의 주인은 나잖아. 내가 그렇게 느꼈다면 느낀 그대로 받아주면 되는 거야. 미움도 분노도 다 받아줘. 내 마음을 내가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어떨까?” 


  어떤 감정을 느끼더라도 나쁜 감정이란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나쁘다고, 잘못되었다고 규정지어 놓은 하나의 관념이 있을 뿐.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들은 타인을 욕하는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 간주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남을 미워하는 자신을 원망하고 심지어 자기 탓을 한다. 그러한 내 모습이 실망스러운 나머지 자신의 감정을 억압한다. 하지만 억누른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결국엔 터져버리는 법이다. 


  그러니 감정에 대한 판단을 내려놓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먼저다. ‘그러한 감정이 들 정도로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내가 많이 속상했구나.’ 하고 보듬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감정과 솔직하게 마주하고 내가 먼저 나의 감정에 공감해줄 때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이른바 ‘상처 없는 자기 치유’의 시작이다. 


  나의 감정을 인정해주면 이내 안정을 찾게 된다. 그때 차분히 살펴보면 된다.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상처와 고통은 타인이나 외부환경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때문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감정을 글로 적어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나의 괴로움이 과연 ‘사실’인지 나의 생각으로 해석된 ‘가짜 진실’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 친구에게 지금의 감정들을 숨김없이 써 보기를 권했다. 잠시 후 그렇게 써 놓은 감정들을 그녀와 함께 살펴보았다.


  식음료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는 몇 달째 하루가 멀다 하고 매장에 오는 중년 여성 고객에게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싱겁다느니 온도가 맞지 않다느니 하며 컴플레인을 걸기 일쑤였다. 그래서 다시 준비해주면 한참 동안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가 만만해서, 나를 무시하기 때문에 저럴 수 있는 거라며 몹시 불쾌하고 비참했다고. 


  그런데 여기서 알 수 있었다. 친구가 남을 미워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까지 미워하게 될 만큼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의 이유를. ‘내가 만만해서, 나를 무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친구만의 해석이자 착각 때문이라는 것을. 정작 그 여성은 아무런 의도가 없었을지 모른다. 친구를 특별히 만만하게 보아서가 아니라 그녀의 말투 습관이 다소 투박했을 뿐이고, 친구에게 악의를 품어서가 아니라 요즘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상황이 좋지 않아서 예민하게 행동했던 것일 수도…. 


  만난 지 세 시간 만에 어둡게 굳어있던 얼굴에서 허탈하게 웃음 짓는 친구의 표정을 보았다. 이렇게 한 생각에서 깨어나면 단숨에 괴로움이 사라지는 마법을 또 한 번 경험했다고나 할까. 


  앞으로도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전적으로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만, 내 감정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 이후의 행동까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 그에 대한 반응과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대한 결과 또한 내가 받아들여야 할 몫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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