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민정 Apr 16. 2022

들꽃이 건네는 말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칼럼 17]


  봄기운을 물씬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다. 뉴스에서도 연일 전국 곳곳에 꽃이 만발했다는 소식들을 전하며 봄나들이의 기대감을 높였다. 햇살조차 어서 나와 이 봄을 만끽하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아서 기꺼이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도처에 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아파트 화단에서 먼저 목향 장미와 목련, 산당화가 나를 멋지게 에스코트해 준다고나 할까. 언제 그렇게 활짝 피어 있었던 건지 물오른 꽃들의 미모에 미소가 번진다. 파란 물감으로 채색한 듯한 새파란 하늘과 솔솔 부는 봄바람까지 모든 것이 안성맞춤이었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큰 길가에 들어서니 하얗고 노랗게 물든 세상이 나를 맞이했다. 벚꽃나무와 개나리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길을 걷는데 꽃잎이 바람에 나부끼며 환상적인 꽃비를 내려준다.

바람의 운율을 타고 내 손위에 내려앉은 꽃 잎 한 장이 이리도 가슴을 심쿵하게 하는지….


  길을 거니는 동안 흩날리는 꽃잎을 따라 내 시선도 함께 옮겨갔다. 나풀나풀 떨어지는 꽃잎들을 따라가다 보니 나무 밑에 피어있는 작은 들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머, 너희들은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니.’


몇 걸음 사이에 꽤 다양한 꽃들이 피어있었다. 오랜만에 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이름 모를 들꽃들에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마음의 소란함이 가라앉고 머릿속 생각들을 벗어던진 채 오직 꽃들에게 눈 맞춤한 시간이랄까. 생각이 끊어진 순간 속에서 잔잔한 평온함이 찾아들었다.


 평화로운 고요를 즐기며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슬며시 떠오르는 생각 하나.


  ‘너희들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도 않고 예쁜 봄의 풍경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구나!’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본연의 모습으로 당당히 제 생명을 살아가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으로 충분히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다.


모두가 벚꽃과 개나리만 좋아한다고 실망하지도,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주목받지 못한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갸륵하고 대견하다고 할까.


  절대 작고 초라한 이름 없는 들꽃이 아니다.

오늘 본 그 어떤 화려한 꽃들보다 길가에 핀 이 작은 들꽃이 가슴에 깊은 감동과 진한 여운을 선사한다.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성스러움과 경이감을 느끼고, 그 생명력에서 큰 힘과 용기를 얻었다.


  기특하기만 한 들꽃들을 찬찬히 카메라에 담았다. 너희의 존재를 내가 알아주겠노라고.

그 어여쁜 존재 하나하나의 이름들을 검색해보았다. 어찌 그 이름마저 아름다울까.

자줏빛 꽃잎을 가진 ‘자주달개비’, 네 개의 꽃잎으로 갈라져 있으면서 하늘색을 띤 ‘봄까치꽃’, 작은 줄기에 여러 송이의 꽃이 어긋나게 달려 있는 노란 빛깔의 ‘꽃다지’, 벼룩이 입을만한 아주 작은 옷 같은 연약한 잎 모양에서 이름 붙여진 ‘벼룩이자리’, 짙은 분홍빛을 띠면서 앙증맞게 생긴 ‘광대나물꽃’, 제비꽃의 일종인 보라색의 ‘비올라 필리피카’까지….


소중한 만남에는 언제나 설렘과 기쁨이 따르듯이 오늘 이 친구들을 알게 되어 마음이 더없이 푸근하고 흐뭇하다.


  들꽃이 말한다. 모두가 봄의 상징인 벚꽃과 개나리일 필요가 없다고.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제 삶의 주인공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자기 자리에서 고유의 역할을 해내면서 묵묵히 자기 삶을 사는 것이 진정 인생을 슬기롭게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당당하게, 가볍게 살아가는 삶을 배워야겠다.


아름다운 봄날에 ‘너도 나처럼 살라’며 들꽃이 내게 건네는 말이 아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대만판 번역 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