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에 발매한 DJ DOC 의 앨범 중 <허리케인 박> 이라는 제목의 2분 남짓한 짧은 노래가 있다. 신당동 떡볶이타운에 떡볶이를 먹으러 간 여자친구가 떡볶이 집에 DJ 에게만 한눈을 판다는 재미있는 가사의 노래인데 아마 요즘 MZ들은 떡볶이 집에 DJ 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생소할 것이다.
1950년대 생겨난 신당동 떡볶이 타운은 1970년대 후반 손님을 끌기 위해 떡볶이 집에 DJ 부스를 만들어 원하는 노래를 틀어주던 방식으로 인기 몰이를 했다. 노래가 발매된 1996년 만해도 40여개의 달하던 떡볶이 집들이 20여개 정도로 줄어들고 DJ 부스가 있는 떡볶이집도 노래 제목처럼 허리케인박 떡볶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지만 여전히 서울에서 손에 꼽히는 맛집골목 중에 하나가 바로 신당동 떡볶이 타운이었다.
2024년 현재도 운영하고 있는 허리케인박 이라는 떡볶이 집은 1996년 노래 발매 이후 한동안 밀려드는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하지만 신당동 떡볶이 타운에는 넘사벽 고수가 있었으니 바로 가본적은 없어도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마복림할머니 떡볶이' 었다. 고추장 CF 에서 '며느리도 몰라' 라는 대사로 더욱 유명해지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부터 ‘마복림할머니’ 떡볶이는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 터줏대감으로 존재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서도 늘 1등이었던 마복림할머니 떡볶이가 과연 다른 떡볶이 집에 비해 압도적으로 맛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90년대 신당동 떡볶이 타운 죽돌이였던 나와 나의 친구들의 단골집은 ‘마복림할머니’가 아닌 ‘우정’ 이라는 곳이었다. ‘마복림’은 외지에서 온 지인들이 가보고 싶어 할 때만 마지못해 갔던 기억이 몇번 있지만 개인적으로 ‘우정’ 떡볶이가 더 맛있었고 더 친절했다. 더욱이 마복림할머니 떡볶이는 떡볶이 골목에서 유일하게 추가 단무지를 500원 받고 팔았다.(다른 곳들은 당연히 무료였다) 그럼에도 항상 마복림에는 긴 웨이팅이 걸려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이유가 바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퍼스널브랜딩의 힘 이었다.
현대그룹 하면 무엇이 제일 떠오를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정주영이라는 창업주의 이름이 떠오른다. 집에서 키우던 소를 훔쳐 달아나 사업 자금으로 썼던 일화부터 ‘해봤어?’ 로 요약되는 그의 이미지가 곧 현대의 이미지이다. 삼성하면 이건희의 “마누라 빼고 다 바꿔”의 혁신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들은 모두 핵심메세지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사업초반 이나 규모가 크지 않는 사업이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있는 사업주 개인의 브랜드가 해당브랜드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매장에 출근하며 전날의 과음으로 머리도 옷차림도 부스스 하고 고객에게 퉁명스럽게 응대하는 사업주들이 의외로 많다. ‘맛있으니까 괜찮아’ 라고 넘기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아무리 맛있어도 난 안간다. 나만 안갈까?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가 장사가 잘되었던 이유는 미디어 노출의 힘이라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마복림 할머니의 스토리를 알고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1950년 경 고추장에 춘장을 섞은 지금의 즉석떡볶이 양념을 처음 만들어 내고 1978년 끓여서 먹는 즉석떡볶이의 개념도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故마복림 할머니 이다. 미디어에 노출이 되었을 때 그 이후가 더 빛을 발하는 스토리를 사업주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반면 마복림할머니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주 미디어에 노출이 되고서도 한순간 반짝이고 사라졌던 브랜드들은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있다.
폭행과 갑질로 뉴스에 나왔던 피자 브랜드 CEO, 여직원을 데리고 호텔로 들어가셔서 논란이 되었던 두 마리치킨 회장, 회장의 성추행으로 기업의 이름까지 바꾼 D 보험 외에도 오너의 잘못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폭락했던 사례는 거의 매년 나온다. AI 가 아무리 발전하고 매장마다 서빙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고 주문도 결제도 기계가 대신 해주는 세상이 되었어도 브랜드를 키우는 것도 브랜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결국엔 사람이다.
-
나의 옷차림이, 말투가, 위생이, 자세가, 철학이 브랜드의 시작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내 자신의 모든 것이 사업초기에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만약 바쁘다는 핑계로 얼룩이 뭍은 더러운 주방복을 입고 화장실에서 손도 안씻고 나왔다가 손님이 그걸 봤다? 그게 바로 그 집의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모두가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누구나 1920년 생이셨던 마복림 할머니 같은 세월의 스토리를 가질 수 는 없다. 하지만 브랜딩을 하기 위한 출발은 바로 내 자신이 브랜드임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 에서 시작을 해야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TV나 미디어에 나와서 가장 먼저 청소를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