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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하게 Nov 18. 2020

계십니까 모선생님

그건 지난주 출근길에 있던 일이다.


“모 선생, 모 선생 계신지요”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다시 한번 노크와 함께 황송히 불러본다.


“기침하셔야지요. 모선생”


기척도 없다. 밤사이에 출타하실 리는 없고, 아니면 아주 가버리신 건지... 행여 정성이 부족했을까. 혼자서야 그 형편을 헤아릴 수 없으니 속만 갑갑할 뿐이다. 제대로 된 대접 한번 못 드렸는데 이렇게 보내드리기엔 분명 서운한 일. 오늘만큼은 그 용안을 뵙겠노라 다짐하며 다시 모 선생 두 함자를 불러본다.     


모 선생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평생을 알고 지낸 사이로, 기쁘거나 슬프거나 웃거나 울거나 좌우간에 자주 붙어먹었다. 그렇게 수년을 살아온지라 남들이 보기에는 저 둘이 제법 막역하다고까지 여길법하다. 그런데 내 모 선생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찬찬히 따지고 들면 둘 사이는 쌍방이 아니라 일방이요, 그래서 수평이 아니라 수직이었던 그런 불편함이 있었단 말이다. 내 더 솔직히 고발하자면 모 선생하고 나는 사실 주(主)와 종(從)이라 해도 과함이 없는 게, 여태 살면서 내는 받은 것 하나 없고, 가히 수탈이라 할 만큼의 뺏겨먹기만 했단 말이다. 이 사정을 알면 아무도 둘 사이 우애 좋다고는 못할 일이다.     


남 골려 먹기를 좋아하고, 몸가짐은 방정맞고, 타고난 용태가 가볍기로는 부는 바람과 한량 차이가 없다. 성격은 또 원체 음침스러워 낮에는 기척도 없던 양반이 밤만 되면 쏘다니는데, 거기다 말수가 적고 몸가짐이 비밀스러워 더 흉흉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목소리는 또 얼마나 얇고 성가신지 듣기만 해도 부아가 치민다. 검은빛. 얇은 허리. 길쭉한 배. 바늘 같은 주둥이, 두 쪽 날개와 앙상한 여섯 다리. 보통 모기라고 두 글자 존함 쓰시는데, 모 선생에 대한 요약은 이쯤이면 될 것 같다.     


좌우간 아침 출근길부터 내가 모 선생을 찾은 건 이틀 전 내 차로 내방을 오신 탓이다. 그 당시는 퇴근길이었는데 차선에 들어서자마자, 별안간 요망한 기운에 등골이 오싹하더랬다. 그래서 시야를 좁혀 정체를 뜯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모 선생이 핸들 주변에서 그 특유의 망령된 무브먼트를 가져가고 계셨다.


“아니 오신단 말씀도 없이, 이리 오시면 제가 준비가 없어 큰일입니다.”


별안간의 방문에 당황스럽고 또는 괘씸하기도 할 적에, 더불어 운전에 경솔할 수도 없는지라 모 선생 상대로 민망함만 키우고 있었다. 그 날따라 신호는 왜 그렇게 또 파란불인지... 행여 모 선생 꽁무니를 놓칠까 봐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그리고 빨간불. 그제야 모 선생 뒤를 쫓으며 쌍수를 들고 손뼉을 치고 온갖 아양을 떨어보는데, 이미 빈정이 상하셨는지 이리저리 손길을 뿌리치시고는 공조기로 쏙 몸을 감추더란 말이다. 나는 황망하기도 혹은 분하기도 했지만 대꾸는 못 하고 속만 태워야 했다. 그 날 집에 가 보니 손가락과 발목에 한군데씩 모 선생의 흔적이 있었다.     


이튿날. 헤어짐이라면 지금 오늘이어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제의로서 발목을 덮는 양말과 긴 팔 셔츠를 착용했다. 제구로는 전기 파리채를 준비했다. 그리고 에어컨을 풀로 가동했다. 시동을 켜기 전 아직 떠나지 않았을 모 선생을 십여 분간 찾고 또 찾았다. 그런데 여간 찾아도 안계신게 어제가 마지막이었던 걸까. 여기까지란 생각으로 아쉽고 혹은 분하고 혹은 속 시원함을 안고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한 참 뒤, 모 선생이셨다.


“아니 모 선생님, 세상살이에 법도가 있는 것인데, 이리 걱정스럽게 구시는 게 퍽 점잖지가 못하십니다!”


아직 24시간도 안 지난 상황. 거기다 동일한 모 선생을 또 서비스 한다는 건 상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건 법으로도 무슨무슨법에 위법 될 것이다. 나도 더는 참기 힘들다. 그나마 자유로운 왼팔을 미친놈처럼 휘둘렀다. 그렇지만 모 선생은 비웃듯 닿지 못하는 자리에만 머무르셨고, 나는 그때마다 속앓이만 해야했다. 이번 모 선생 종착지는 사뿐히 뒷좌석이었고 나는 원통함에 소리 없이 울어야 했다. 그는 분명 어제의 그 모 선생이다.     


그렇게 셋째 날 출근길. 이틀이나 골탕을 먹은 일로 한창 약이 오른 것이다. 그래서 어디 계시냐며 애타게 모 선생을 어르고 달래고 구슬리고 있던 것이다. 그 용안을 보기 위해 밤잠에 생각해둔 온갖 수를 다 써볼 생각이다.


“기침하셔야지요. 모 선생”


공회전을 돌리고 에어컨을 켰다. 꼭 마주 보고 대면해 결판을 내려고 문을 걸어 잠갔다. 핸들이며 운전석이며 천장이며 이곳저곳을 눌러보고 찔러보고 툭툭 쳐가며 모 선생만 기다렸다. 오늘은 꼭 사생결단을 내리라.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나고 여기를 보고 저기를 보고 그런데 시간은 조이고 이러다 지각은 하겠고, 나는 결국 너그럽게 상황과 타협을 벌이면서 ‘그래도 모 선생께서 분별이 있으신 분인데, 오늘에는 기어코 떠나셨나 보다’ 하며, 눈에 켜둔 불똥을 민망하게 거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남부순환도로 오류IC 분기점. 천성 천성 그 천성이 어디를 가지 못하는구나. 천하기가 쌍놈인 모가 놈이 결국 제 주제만큼 다시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게 아닌가. 나는 운전이고 뭐고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울분에 분통에 머리끝이 더워지는 게 내 저 모가 놈을 잡지 못하면 성을 바꾸고 말리라. 제발. 신호. 신호. 신호. 그리고 빨간불. 나는 실성한 것처럼 차 문이고 유리고 핸들이고 계기판이고 휘두르고 두드려댔다. 모가 놈도 그런 지랄에 심히 당황했는지 움직임이 부산스러웠다. 승부처임을 직감한다. 나는 안전벨트까지 풀고는 모가 놈을 쫓는다.     


빵빵대는 경적. 정신을 차리니 이미 신호는 바뀐 후. 비상깜빡이를 켜고는 급하게 악셀을 밟는다. 늦기 전에 1차선으로 변경해서 지하차도로 진입. 기계적으로 익어온 출근길로 다시 들어선다. 변함없이 평범하고 지루한 러시아워. 오늘도 야근은 하겠지. 회의 가기 싫은데. 그런데 작게 얼굴에 웃음이 돋는다. 그러다 혼자 소리도 지르고 껄껄 웃기도 했다. 실성한 놈처럼 웃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오른손 손날에 모가 놈이 짓눌려 있었다.


“망할 모가 놈이 이럴 줄 알고 여태 그 염병을 떨었니”


근래 이렇게 유쾌했던 적이 있을까. 그 응징의 여운은 아직도 나를 흐뭇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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