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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하게 Nov 18. 2020

가난의 계보 1

사포

젠장맞을 날씨에 공구리 양생이 더뎠다. 그 바람에 이놈 저놈 욕지기가 종일이었고, 말단 잡부밖에 못 되는 신세는 욕받이가 되야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받치고, 결국 약이 바짝 오르고야 마무리가 났다. 지랄 같은 하루의 송사는 술이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날 일당에서 만 원쯤만 사 먹고 나머지를 갖다주잔 계산이었다.     


소주 한 병과 안주 하나를 시키고는 맛있게 들이킨다. 그런데 타일 붙이는 염 씨가 굳이 합석한다. 그러고는 뜬금 친한척이더니 안주 두세 개를 시키는데, 평소부터 의뭉스러운 구석이 많은 터라 부리는 꼬라지가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돈은 있냐 하니 싸가지 없게 돈 돈 돈 거린다면서 따라놓은 술을 뺏어 먹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열불이 나 대거리를 시작했는데,     


어린놈으로 시작해서 애비애미가 없다느니, 초졸인 거 들먹이며, 못 배워서 위아래 식별이 안 되다느니 그런 쌍욕을 하기에, 여태 상투도 못 틀은 게 어디서 어른행세냐며, 나이를 어디로 처먹었냐며, 서로 으르렁댔다. 쌍욕 섞인 고함이 오가고 급기야는 끌어안고 뒹구는 난장판을 벌였다. 마침내 주인장이 뜯어말리고야 진정은 되었지만, 타는 속에 결국 들이 붇고 만 것이다. 오늘 벌어먹는 돈의 절반을 술로 먹고 말았다. 마지막에 손에 쥔 돈이 6만 원 남짓. 이러고 집이라면 불벼락일진데,     


네 평 남짓 반지하 방. 세간은 넉넉지 않다. 날씨 탓인지 눅눅한 공기. 여러 번 덧댄 벽지로는 곰팡이가 무성하다. 그 위에 색색 한글과 알파벳 포스터. 뒹구는 장난감. 그걸 보고는 집구석이 여태 꼬라지가 이게 뭐냐며 한 소리 하는데, 듣는 척도 없는 빈처.     


작고 여린 체구로 풍기는 기운이 볼품없다. 거기다 여즉 해 한번 못 본 것처럼 피부는 생기가 없다. 그래선지 보이는 행색이 더 애잔하다. 아무거나 입고 아무거나 먹던 게 일생인지라 기쁨이 적고 슬픔이 짙었다. 그런데 유독 눈 한가지가 부리부리했는데, 여태 쌓인 한이 오로지 그 두 눈으로 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화가 붙으면 두눈에서 독기가 불똥같이 튀는데 여간 매서운게 아니었다. 그런 그가 끔쩍 노려보며 쏘아대는데,      


 “썩을 놈아. 여태 그렇게 퍼마시고 얼마를 남겨왔어.”

 “뭐. 니 년 눈에는 내가 돈으로나 보이지”     


없는 체면에 결국 염 씨까지 들먹이며 이랬노라 저랬노라 큰소리를 해보지만, 아내는 악쓰고 소리치며 아주 무섭게 대들었다. 결국은 나도 젠장할 집구석이 가시 같다며 같이 더는 못 살겠다고 죽자고 쌈질을 하려니 늦게 생긴 아들놈이 울기를 시작한다.     


나를 등진 채 볼품없는 아내는 마른 아들을 껴안는다. 훌쩍거리며 코를 먹는다. 그리고 이제는 울음이 못돼 쇳소리같이 뱉는 자식새끼. 처연한 광경을 무기력하게 마주함에 또 성질머리가 뻗쳐 애먼 우유병을 집어 던진다. 씩씩 거리며 둘을 쳐다보니 껴안은 품 사이로 삐져나온 하얀 발. 안타까움에 내 새끼 발을 쥐어본다. 이렇게나 야들하구나. 그리고 내 손바닥. 쉽지 않던 생활에 거칠기가 사포와 같다. 사포처럼 살아야 했다. 작고 연약한 내 새끼 발이 행여 거친 손바닥에 생채기가 날까. 마음껏 만져볼 수 없었다. 손아귀에 힘을 풀고 한숨을 몰아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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