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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하게 Nov 18. 2020

가난의 계보 2

작명

서울이면 어찌 되겠지 하고 여기저기 타향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쉽지 않은 생활에 동네는 항시 분주하고 가난했다. 그 바람에 동네가 다닥다닥해 볼품이 없었다. 그저 산을 타고 올라 지낼 만 하면 들어와서 앉았던 게 이 모양이 된 것이다. 그런 내력 때문일까 떠오르는 달빛이 유독 이곳만 서글픈 구석이 있었다. 그래선지 너도 나도 달동네라 부르기 시작했다.     


달동네 골목 초입. 태평 전당포라고 간판이 다소 요란한데, 그 가게 창문에는 ‘사주, 관상, 작명, 신년운세’라고 벽보가 붙어 있다. 이 무슨 조합인가 싶어 자세히 들여보니 그 속에서 작은 실랑이가 있는데,     


“편관에 정관에 이게 지금 아주 어지럽고 혼잡하단 말이여. 관살혼잡이라는거라. 이러면 남자가 없어. 거기다 비겁은 또 서다가 말았는디. 탁하다 탁해. 이래갖곤 남자가 있어도 박복허지. 팔자 순탄하기가 힘들어”

“이 양반이. 재수도 없게 갓난애를 가지고 다짜고짜 그런 소리부터 한단 말이야."

“덕담 들으려고 여길 왔어. 이게 다 논리가 정연한거여. 관성 금(金) 기운이 넘치는 거라 지금... 보자고...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거는 아니고. 이걸 화(火)로 좀 꺾어놔야 쓰겄는디. 이라면 이름으로 식상을 북돋아 볼 법도 하제,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이름도 한 번 보더라고”

“아니 박형. 시방 그걸로 돈 푼 더 벌라는 거 내사 모를까 이러는 거요. 동네 사람끼리 해도 해도 유분수지. 살피는 김에 뜸 들일락 마시고 아예 다 알려주오.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유난이란 말이야.”

“아니 그 푼돈도 반절만 준 양반한테 인심으로 살펴주니까 어디서 겁박이여. 역지사지로다가 갓난애 팔자를 가지고 복채를 흥정하는 건 도통 무슨 순리여. 어디 흥이 나서 쓰겄어 이 사람아”     


둘은 그러고도 한 동안을 티격태격하다 종국에는 큰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었다.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박복이라니, 그리고 이름값이라고 얼마간을 더 들여야 한다니. 마 씨는 꽥 소리를 지르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성질머리에 분이 나서 사기를 친다느니 그것도 모자라 선무당 흉내를 낸다느니 악담을 쏘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자꾸 꺼림칙한 게 한동안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한 것이다. 그러다 옳거니 싶은 바가 있어 나르듯 간 곳이 있으니, 바로 그 옆 옆 쌀집 김 영감네였다.     


“영감님. 나 그 글자 좀 찾아주시오.”

“아니 대뜸 와서 야단법석이냐. 꿔간 거 변통은 못 할망정. 글자는 또 무슨 소리고, 망할 놈이 이 무슨 수작이야”

“아니 영감님도. 내가 설마 해 먹을까 봐 그러시오. 내가 어디 도망을 가겠습니까. 일만 나가면 금방인데. 이제 막 애가 나와 그러지 않습니까. 딸 이름은 지어야지. 저 돌팔이 박가 놈은 순 엉터리란 말입니다. 차차 생각해보니 애초에 영감님이 공부도 족히 하셨던 거고, 그러니 이렇게 찾아온 거 아니겠습니까. 화(火). 화(火)자 변이면 될 것 같으니까. 궁리 좀 해봅시다”     


김 영감과 마 씨는 강화 동향으로 꽤 있는 나이 차를 마 씨가 살뜰히 대우해 준 덕에 서로 간에 어느 정도 우애가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 마 씨가 동향을 핑계로 쌀을 한 말이나 꿔가 여태 안 갚은 일로 김 영감은 마 씨만 보면 바가지를 긁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쳐서 변제는 기미도 없고 아닌 밤중에 글자 타령이니 기가막혀 아주 역정을 내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김 영감도 들이대는 갓난애 사정에 더 화를 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특히 깍듯한 마 씨 태도에다, 오늘은 일거리가 없어 적적한 상황도 있고, 거기에 갓난애 이름을 짓는다는 사명감이 일부 생기면서 마지못해 두꺼운 옥편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둘은 책 속 화(火)자 변 한자를 훑어보고 써보고 읽어보고 나중에는 서로 불러보고 하면서 이게 좋네 저게 좋네 하더니만 밤이 늦어서야 두 자를 결정하였다. 그제야 한시름 놨다는 생각에 마 씨는 크게 안도했고, 김 영감은 갓난애 일생에 일부 공헌한 기분이 들어 흡족하였다. 그러고는 아주 인심을 내기로 작정한 건지, 애 엄마 먹이라고 쌀 한됫박을 퍼주었다. 마 씨는 연신 조아리고 쌀집을 나왔다.     


단칸방 작은 창으로 달빛이 충만하다. 아기와 엄마. 젖을 물고 물리다 지친 둘이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그리고 그 곁을 마 씨가 조심스레 앉아 본다. 이제 일가를 이루었다는 성취에 기쁘다가도 식솔을 책임진다는 막연함에 겁도 난다. 쌀. 내일 먹을 쌀. 받아온 쌀을 품에서 꺼내놓는다.     


“저녁은 드셨어요”

“먹었지. 더 자지 않고 그래. 몸은 좀 어떻구”

“밖에서 그러지 마시고 진작 들어오셔서 드시래도요”

“사주가 제법 좋다는 거야. 그 바람에 늦은 거지. 금방 커서 부잣집에 시집갈 거라는구만, 두고두고 효도도 할 거고. 임자가 애쓴 바람에 복덩이가 온 것 같단 말이야. 내가 아주 그러자고 이름까지 받아왔구만”

“사주에, 이름에, 다 적잖이 돈을 들여야 했을 텐데 무슨 형편에 하셨어요”

“거 사람이. 바깥일에 무신 신경을 써. 어련하려고. 다 있어서 해오지. 보라고 저기 쌀도 얼마 가져왔으니까 나중에 해다 먹고”     


아기엄마는 기어코 몸을 일으켜 냉수를 한잔 마신다. 그리고 그 틈에 마 씨가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받는다. 배냇저고리 꼬물한 손과 발에 마 씨는 사뭇 감격스럽다.     


“이름을 지어왔다니까. 궁금하지도 않어. 화영(火榮)이라고 화영(火榮). 사주에 금(金)이 많아 흠인 거라, 화(火)로 잡아야 한다잖소. 이게 듣다 보니 논리가 정연한 거요. 이러면은 앞으로 우리 화영이가 부잣집에 시집을 가서 두고두고 효도를 한단 말이요. 저 염가 호래아들이 지 애비한테 대들던 걸 보았지? 보시구려 우리 화영이가 곱절은 효도를 할 테니까. 두고 보라고”     


셋은 나란히 누웠다. 아기는 웬일인지 깨지 않았다. 아기엄마는 피곤에 금방 잠이 들었다. 마 씨는 무한한 책임감에 잠이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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