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은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백하게 Nov 18. 2020

가난의 계보 3

짐승

가난은 짐승처럼 삶을 물어뜯었다.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매일 혼절을 거듭했다. 언젠가는 겨우 뿌리쳤다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난은 여전히 한쪽 다리를 물고 목을 노려보고 있었다. 굶주림에 으르렁거렸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도망쳐 보지만 언젠가는 끝날 일이었다.     


영식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여섯 번의 이사를 했다. 집은 모두 반지하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눅눅한 이불을 껴안아야 했다. 그 덕에 영식에게선 반지하 냄새가 났다. 시멘트와 곰팡이 그리고 습기가 섞인, 소독약과 쉰내 사이 불쾌한 냄새. 그 냄새는 영식의 채취가 됐다. 집에 부모님은 거의 없었다. 아빠는 지방 공사판을 전전했고, 엄마는 식당을 서너 곳이나 나갔다. 간혹 두 분 다 집에 있을 때가 있지만 돈 때문에 싸우기만 했다. 영식이 알지 못하는 빚이 있었다.     


그래도 끼니를 굶진 않았다. 집에 밥과 김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오로지 밥과 김치. 영식은 어릴 적부터 그 두 가지로 혼자 밥을 차려 먹었다. 가끔 엄마는 일하는 식당에서 남은 반찬과 음식을 몰래 가져왔다. 영식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맛있는 것.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 그것 이상 욕심을 부릴 수 없었다. 영식의 식탐은 이때부터였다.     


학교에 들어가고 첫 점심시간. 짝의 따뜻한 밥과 반찬. 비교되는 도시락에 창피함보다는 식욕부터 돌았다. 처음에는 조르고 떼를 썼다. 그거 하나를 먹으려고 온갖 짓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짝은 금방 싫증을 냈다. 그래서 다음에는 때리고 빼앗았다. 몇 주 후 영식의 엄마는 학교에 불려 나갔다.     


하지만 영식은 이후로도 친구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반찬이었던 게 학년이 올라가며 옷이 되고, 신발이 되고, 돈이 됐다. 영식은 패거리를 만들었다. 또는 패거리에 들어갔다. 영식은 굶주린 듯 그런 짓을 벌였고, 그럴수록 엄마의 학교 출입도 잦아졌다. 영식은 먹고살려는 것이라고 합리화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고 했다. 집에 있는 쉰 밥과 김치가 생각나지 않게.      


경찰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다. 경찰차가 학교로 오고 몇 명을 태우고 갔다. 그 중 한 명이 영식이었다.


“이름, 주소, 그리고 보호자 이름”

“강영식입니다. 엄마 마화영이고요. 대림동 사는데요”

“대림동이 다 니네 집이야. 일단 엄마 빨리 전화해서 오시라고 그러고”

몇 번의 전화 끝에 통화가 됐다. 몇 초간 말이 없다가 금방 간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영식은 유치장에 수감된다.     


세 평 남짓 유치장은 마룻바닥에 하얀 페인트가 깨끗했다. 입구에 거울 하나. 뒤편으로 창이 하나. 정체불명의 아저씨 둘이 있는 것 빼면 집보다 산뜻해 보이기도 하고... 얼마간 서성대다 영식은 구석에 앉는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은 지루했고 몸이 뻐근했다. 어느새 배도 고프다. 하지만 이쪽으론 아무 관심도 없다.      


그러다 거울을 본다. 어린 나이에 벌써 얻은 거친 피부가 야박하다. 나는 언제부터 이랬지. 생각해보면 영식의 집에는 거울이 없었다. 화장실은 보통 집 밖에 있었고, 집안에서 거울 볼 사람은 없었다. 반지하 집은 잠을 자고 끼니를 해결하는 곳이었다. 집보다는 대피소에 가까웠다. 영식의 집은 많은 기능이 결여되어 있었고, 결국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영식은 거울 보는 법을 몰랐다. 씻지도 꾸미지도 제대로 입지도 않았다. 오로지 먹는 것에만 열심이었다. 삶을 살아내는 것. 부모님과 연대는 오로지 생존에 있었다.     


유치장의 시간은 멈춘 듯했다. 반대로 밖은 분주했다. 영식은 다른 세계로 떨어진 것 같았다. 거울 속 얼굴을 보며 영식은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절뚝대며 살아야 할까. 짐승 같은 것에 할퀴어 짐승 같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목을 노리는 가난에 달리해볼 수도 없이 끝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난의 계보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