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여기저기 널려있는 빨래에서 쉰내. 그 사이를 지나가는 남자들에선 땀내. 복도에선 술내. 어느 구석에서는 지린내. 동백 모텔 2층. 저녁이 되자 늙은 남자들이 돌아왔다. 고약한 냄새가 다시 뒤섞인다. 공기가 더워졌다. 그들은 근처 현장의 인부들로, 모텔에 장기 투숙 중이다. 숙소에서 질서를 찾기는 힘들다. 밤이면 술과 도박이 있었다. 그러다 고성이 오가면 그때야 지겨운 하루가 끝났다.
모텔의 밤. 드디어 사위가 조용하다. 하지만 강 씨는 잠들지 못했다. 집안 사정으로 복잡한 것이 있었다. 몇 주 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소년원에 들어갔다. 안사람에게 전화를 듣고는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당장에 올라갈 수가 없던 노릇으로 한 주가 지나고서야 집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때는 아내를 보기만 하면 욕 한 바가지를 시작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목격한 건 다 죽은 송장 같은 아내였다. 머리는 산발에 옷은 무슨 일인지 지저분했다. 안 그래도 야윈 체구는 이제 병색마저 엿보였다. 그리고 씻지 않은 꾀죄죄한 얼굴에 눈물 쏟은 자국이 선명했다. 그리고 강 씨를 보자 다시 자국 위로 눈물이 쏟아졌다. 볼품없는 얼굴이지만 유독 눈이 부리부리하던 아내였다. 그리고 얼굴만 마주하면 돈 염불을 외면서 눈에서 불을 쏟았다. 작정을 하면 조막만 한 사람이 화마처럼 대들었다. 그런데 지금 아주 차게 식어 숨이 다 죽은 것이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것 같았다. 강 씨는 기가 막혔다가 나중에는 숨이 막혔다. 숨을 몰아내려 담배만 연신 피웠다. 강 씨는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그렇게 이틀을 더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모은 돈을 바닥에 두고 나왔다. 할 말이 없었다. 강 씨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다시 지방으로 내려간 후 얼마 안 있어 전화가 왔다. 아내가 일하는 식당 주인아줌마였다.
“영식 아버지 빨리 와봐야 할 것 같애. 영식 엄마 지금 좀 이상해”
“뭐가요”
“아니 빨리 와. 이러다 큰일 나겠어! 지금”
주검 같던 아내 생각이 났다. 이번 만큼은 강 씨도 서둘러 서울에 올라갔다.
아내는 식당에 있었다. 주방 바닥에서 연신 무언가를 닦고 있었다. 맨발에 헐벗은 차림. 그리고 더러운 몰골. 음식물 썩는 냄새가 났다. 식당 아줌마는 거기대고 설명을 해주는데, 어느 순간 말을 아주 못하고, 갑자기 울기를 발작하듯 했다는 거다. 하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여 실은 그만 나오라고 한 지가 며칠 전인데, 여전히 새벽같이 나와서는 설거지를 무섭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들은 얘기로는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밥이랑 반찬을 구걸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쪽 구석에 밥솥을 가리키며 저기다가 담아서 다닌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집에 있던 밥솥이었다.
강 씨는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이 없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아내를 끌고 나왔다. 아내는 강 씨를 알아본 건지 이내 눈물을 흘리고는 순순히 따라 나왔다. 시장에서 급하게 신발을 사다가 아내에게 신겼다. 신발은 커서 덜퍽거렸다. 강 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끌었다. 아내는 밥솥을 간신히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둘을 쳐다보았다.
집은 지독했다. 동냥해온 밥과 반찬이 썩고 있었다. 냄새에 토악질이 났다. 그 광경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사이 아내는 손을 풀고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는다. 둥지 같은 자리에서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 년이 진짜 미치기라도 한 거야, 정신 차리란 말야”
강 씨는 결국 성질에 아내 멱살을 잡더니 따귀를 때린다. 순간 젖은 눈에 째릿하며 불씨가 보였다. 고개가 빳빳해졌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전처럼 성질을 내보란 말야. 대들어 보라고”
강 씨는 다그치며 아내를 도발했다.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힘이 풀려 고개를 떨구었다.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강 씨는 다시 따귀를 한 대, 두 대. 하지만 저항은 없었다. 쓰러져 끅끅대며 소리죽여 울기만 했다.
‘이 염병할게 결국 죽었구나. 버티질 못하고 죽어버렸어. 불씨가 다 꺼져버린 거야. 설움이 얼마나 차가우면, 니 년 같은 화마가 이렇게 됐을까. 돈 때문에 망할 돈 때문에’
강 씨도 이제는 포기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도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그래서 얼굴을 가리고 눈물만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