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자리 지킴이
이른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에 방을 탈출한다. 에어컨과 팬이 조합된 바람으로 시원한 도서관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도서관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나는 그중 학습공간을 즐겨 찾는다.
이쯤에서 고백한다. 나는 요즘 매일 도서관에 출근한다. 덕분에 사람에 대한 의도치 않은 몇 가지의 사실을 알게 됐다.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의 대다수는 왜 늘 같은 자리에 앉을까. 마치 지정석인 것처럼.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휴대폰을 본다. 그들을 보면서 ‘아! 내가 오늘은 일찍 왔구나 또는 늦게 도착했구나’를 가름한다. 이런 나 또한 나의 지정석이 된 21번 자리를 고수한다. 21번을 선호하는 이유는 입구가 가까워서다. 입구 자리는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통로로 밀폐공간으로부터 언제든지 탈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5개월 동안 자격증 고시생이 되어 매일 출근한 도서관에서 발견한 사실은 또 있다. 무언의 커뮤니티라고 해야 할까! 매일 8시간 이상을 한 공간에 있는데 눈길이 마주쳐도 눈인사를 하지 않는 관계성이다. 눈인사를 하는 순간 시작되는 관계의 피곤함 때문일까, 그 누구도 아는척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부득이 인사를 해야 하는 두 사람이 생겼다. 실수로 만들어진 관계다. 한 사람은 입구 쪽에서 길게 통화해서 조금 조용해달라는 사인을 보내서, 또 다른 사람은 공부하다가 당이 당겨 사탕을 살금살금 꺼내는 순간 눈길이 마주쳐 사탕 한 개를 건넨 게 사단이었다. 사탕 한 개가 쌍화탕 한 병이 되어 돌아왔다. 이후 나는 내가 먼저 나서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학습할 수 있는 도서관에는 도착 선두주자 두 명이 있다. 엄청난 책을 쌓아두고 노트북을 하는 한 명과, 노트북 1대만 설치하는 또 다른 한 명이다. 21번 자리에서 2시 방향에 마주하는 ‘자리 지킴이’는 책을 잔뜩 쌓아둔 채 노트북을 하거나 졸기를 반복한다. 2시 방향에 자리한 이는 책을 보는 모습은 볼 수 없었고,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보거나 외출로 긴 시간 빈자리였다. 퇴실 방송이 나오는 시간까지 그 자리를 보존한다. 또 다른 ‘자리 지킴이’는 4시 방향에 있어 내가 들락날락할 때 인지되는 위치다. 4시 자리의 그는 주식하는 사람이라 3시 30분 되면 그 자리에서 로그아웃한다. 특징은 그 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않는다는 것과 심각한 기류가 흐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과 마주쳐도 서로 투명 인간 대하듯 눈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동일 시간에 그들과 공간 공유를 한다. 커뮤니티의 또 다른 방식이다. 그러고 보니 학습도서관에서 팬, 종이, 책도 없이 몇 시간을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 몇몇 더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