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독일 어느 시골 마을에 살게 되었다. 우리집은 주로 밀과 유채를 집중 재배하는 너른 들판 근처에 위치해 있다. 걸어서 30분 거리엔 작은 읍내규모의 시청사와 더불어 번다한 상가도 있지만, 그 반대편으론 우리 동네를 경계선으로 작물재배 들판이 펼쳐져 있다. 산책은 주로 들판 주변 경계길로 다니곤 하는데, 각종 새들과 청설모는 흔하게 목격하고 흔치 않게 사슴과 토끼도 목격했었다. 딱따구리가 실제로 딱딱거리며 나무 쪼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원래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냈던 터라 시골은 내게 편안한 공간이었고, 바쁜 한국생활에선 경험하지 못한, 작지만 흙마당 아닌 잔디마당을 갖는 호사를 누리게 되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 동네 터줏대감인 까마귀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 이웃들은 종종 우리 마당에도 놀러 오게 되었다. 오래 보면 정든다는 말이 맞았다. 자주 보다 보니 이들이 얼마나 똘똘하고 귀여운지 알게 되어, 요즘은 자주 그들이 놀러 오기를 나 홀로 친구 삼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내가 까마귀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변했음을 깨달았다. 그 인상의 변화들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1. 전설의 고향
까마귀에 대한 공포심은 "전설의 고향"이라는 옛날 TV프로그램 영향이 컸다고 본다. 첫 시작부터 음산한 분위기에서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배경음향으로 깔리면 어김없이 "죽음"을 예고한다고 보면 되었다. 불길함과 죽음의 상징처럼 까마귀가 사용되었고, 매주 나는 아빠의 등뒤에 숨어 TV를 보며, 내 심장은 까마귀를 불길함과 죽음의 강력한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2. 동화책
한국의 전래동화는 "전설의 고향"처럼 까마귀를 불길한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었지만, 서양(아마도 유럽이었을 듯)을 배경으로 하는 동화책도 까마귀는 처형장이나 시체가 있는 벌판이나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느 착한 소녀가 귀부인의 보석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되어 일평생 고생하다가 그 누명을 벗는다는 얘기였다. 알고 보니 집주위에 사는 까마귀가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여 창가에 놓여있던 귀부인의 보석을 훔쳐간 것으로 밝혀졌다는 내용이었고, 나는 이로서 까마귀는 시체를 뜯어먹는 데다가 보석까지 탐하는 탐욕스러운 새라고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 착한 소녀가 누명을 쓰고 고생을 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그 원망이 귀부인이 아니라 까마귀를 향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어린 날의 나는 참으로 분노했었다.
3. 히치콕 영화 "새"
아마도 "The birds"가 아니었나 싶다. 주말의 영화였을 것 같은데(어린 시절 내 영화 경험은 거의 TV뿐이다. 영화관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니까), 공포영화로서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영화감독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의 TV시청에 대단히 제한적이셨는데, 저녁 8시 이후로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TV 드라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설의 고향"이나 "주말의 영화"는 허용해 주셔서 MBC와 EBS에서 나오는 영화 보기는 유년기 감수성을 적셔주는 유일한 물줄기였다. 생각해 보면 난 EBS를 통해 아주 기초적인 교양수업을 받았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당시 보았던 여러 영화들이 대단한 명작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세월이 꽤나 흐른 성인이 되어서였다. 당시엔 그저 재밌는 영화였을 뿐인데, 그 많고 많은 영화들 중에 나의 부실한 기억력 속에 몇 개 남아있지 않은 영화 중 이 공포영화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강렬하게 무서웠다는 뜻이다.
한 동네에 있는 모든 새들이 인간들을 습격하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날 극도의 원초적 공포감으로 몰아넣었던 장면은 유난히 번들거리던 까마귀의 새까만 눈동자를 클로우즈 업 하던 순간으로 응축되어 있다. 그 윤기 나는 새까만 새의 새까만 눈동자는, 나를 새까만 공포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게 했었다. 진심 "전설의 고향"에 나왔던 '내 다리 돌려줘' 이후로 제일 무서운 것이었고, 이후로 "에이리언"이란 영화를 보기 전까진 내게 최고의 공포영화로 꼽혔다. 그렇게 까마귀는 공포스런 존재로 또 각인되었다.
4. 철원평야
남동생이 강원도 철원 부근 군부대에 배치되어 자대배치 첫 방문을 하게 되었다. 나와 남동생은 그리 사이가 원만한 오누이는 아니었다. 데면데면 지내면서 각자 도생하자는 무언의 지침을 서로 약속한 듯 살던 때였다. 나는 나대로 내 삶을 만들어 가야 해서 남동생을 애틋하게 대하지 못했었다. 불안한 성장통을 심하게 앓던 남동생은 내게 있어 인생을 시간낭비하는 모습으로 비춰졌기에 한심한 마음으로 모른 척했었다. 성장한 지금, 그래서 난 늘 동생들에게 항상 미안한데, 특히 남동생에게 그렇다. 참으로 너무나 야멸찬 누나였으니까.
어쨌든, 우리 집 하나밖에 없는 아들 면회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철원으로 아버지는 차를 몰았고, 그 당시엔 내비 없이 지도를 찾아가며 달렸는데, 중간에 길을 잃어 돌고 돌아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만났던 내 동생은 깡 말랐고, 새까맣게 탔고, 손등은 다 터져 있었다.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모습이었다. 평소에 쌀쌀맞게 굴던 내 맘도 그 순간엔 순식간에 변해 맘이 찢어지게 아팠던 걸로 기억한다. 없던 우애가 생겨날 정도로 내 맘이 이랬으니 부모님은 어땠을지... 그래도 잘 있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하는 동생은 그새 쑥 어른이 된 듯했다.
짧은 면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철원평야에 새까맣게 내려앉아 있던 까마귀 떼들을 보았다. 그때 남동생을 홀로 두고 떠나오는 착잡한 심경 때문에, 평야를 온통 뒤덮은 까마귀들이 남쪽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모두 쫓겨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었었다. 실제로 우리 동네에서 까치는 종종 보았지만, 까마귀들은 보기 어려웠었다. 사람들이 까치는 길조라 좋아하고 까마귀는 흉조라 꺼려한다는 것을 안 지 한참 되었는데, 그 때문에 까마귀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진 건가 하는, 아무 합리적 근거 없는 혼자만의 짐작도 했었다. 그래서 그 모두들이 쫓겨온 곳이 이 쓸쓸한 곳이구나 싶고, 저 군부대에 있는 내 동생들처럼 딱해 보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그냥 울적한 내 기분에 따라 대상을 내 맘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나도 알고는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다만 내 맘이 그렇게 울적했다는 것을.
당시의 까마귀들은 유배지로 쫓겨난 가련한 존재들의 상징 같았다.
5. 호두 떨어뜨려 깨먹는 까마귀
그리고 이제 독일 시골에 집 하나 짓고 살게 된 어느 가을날. 집 밖 도로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종종 들렸다. 그러다 우연히 목격했는데...
까마귀가 도로 위를 낮게 날며 호두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오잉? 뭐 하는 거지? 까마귀는 호두를 딱딱한 아스팔트 도로 위로 떨어뜨려 껍질을 부수고 그 속 알맹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순간 그 장난스럽지만 진지한 모습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까마귀가 저렇게 머리가 좋았어? 저렇게 귀여웠나? 미소가 내 맘 속에 물감 번지듯 퍼져 나갔다. 그 뒤로 지붕 기와 틈새에 호두를 넣었다 뺐다 해가면서 적당한 틈을 찾아 끼워 놓고 호두를 깨먹는 모습부터, 우리 집 잔디마당에 앉아 작은 홈을 만들어 호두를 파묻고 덤불로 덮기까지 하며 숨겨두는 모습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숨겨둔 호두를 찾아 먹었을지 궁금해서 며칠 관찰했는데 어느 날인가 홀연히 그 호두가 사라진 걸 발견한 날, 마치 내가 호두를 숨겼다 찾아먹은 것마냥 기분이 좋아서 하늘로 훨훨 날아갈 듯 상쾌했다. 그리고 이후로 호두나무도 없는 우리 마당 여기저기 구석에 호두가 보이면 어김없이 까마귀 짓이려니 하며 웃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무서워하던 까마귀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귀여워하게 되었고, 기다리게 되었다.
6. 모자 까마귀
남편과 차를 타고 외출하던 어느 날이었다. 집 골목에서 나가다가 주도로를 만나는 부근에 잠시 멈췄을 때였다. 거기엔 나무 몇 그루와 잔디밭이 좀 있었는데, 까마귀 세 마리가 놀고 있었다. 한 마리는 윤기가 반들반들하고 체구가 좀 작아 보였고, 두 마리는 털이 부스스하고 윤기가 덜하지만 덩치는 좀 커 보였다. 그런데 덩치 큰 놈이 작은 까마귀 뒤를 종종거리며 쫓아다니고 있었다. 작은 까마귀가 풀숲에서 먹이를 잡아 물면 큰 놈이 달려와 냉큼 그 부리에서 낛아채 갔다. 한 놈은 종종 따라다녔고 한 놈은 멀찍이 자기 먹이를 알아서 찾고 있었다.
아하! 어미와 자식이구나. 순간 이해완료. 까마귀 모자지간이라니. 어미는 어미구나. 애들 다 컸는데 이젠 독립시켜야 될 텐데. 두 놈 키우는 모습이 나랑 같네. 한 놈은 평생 거들어야 하고, 한 놈은 홀로서기 잘하고 있고. 혼자 중얼거리며 그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어느새 까마귀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기까지 하다니. 허허허.
7. 나무 끝 까마귀
여기는 바람이 거센 동네다. 야외에 무언가를 설치하려면 반드시 거센 바람에도 불구하고 버텨낼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자주 비를 머금은 돌풍이 불어오곤 하는데, 어느 날 거실창을 통해 저 멀리 나무 끝에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보았다.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이 구도자의 모습 다름 아니었다. 불어오는 비냄새를 맡는 것인지, 비 피할 곳을 찾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랜동안 그 높은 곳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바람 불어 위태로운 높은 나무 끝에 앉아 바람을 맞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왜 그 많은 시인들에게 불려 가는 시재로 쓰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짧은 한 줄도 가능하게 하는 까마귀였다.
내 메마른 영혼의 나뭇가지 위에 앉은 까마귀여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물으니
하늘 향해 부리 곧추 세우고
불어오는 바람 속 비냄새만 맡네.
8. 까마귀는 그냥 까마귀다.
법정 스님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하셨다. 그 깊으신 뜻을 나같은 모자란 중생이 이해할리 만무하지만, 그 표현만큼은 좀 빌려도 되지 않겠나 싶다.
어느 누군들 존귀하고 가치롭게 살고 싶지 않을까? 그러다 또 자신이 우주 속 티끌만큼도 가치 없다는 걸 알아채는 그런 순간도 경험한다. 그러면 세상 모든 게 부질없게 된다. 더 찬란하고 싶었던 만큼, 더 가열찼던 만큼 더더욱 초라해진다. 나도 내 삶에 욕심이 득시글 했었다. 지금도 좀 그러할거다. 그렇지만 내 존재에 대한 의심은 하지 않게 되었다. 부질없으면 또 어떤가?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이 그리 죄 되거나 무가치까진 아니란 뜻이다. 존재 자체가 기쁨이란 걸 깨달았다. 까마귀와 작은 새들이 그저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특하고 기뻤다. 마당에 피어나는 잡초들도 꽃을 피우는데 그것도 기쁨이었다. 생명 자체가 존재하면 그로서 순수한 기쁨으로 우주를 채운다는 걸 배웠다.
까마귀는 까마귀이고 나는 나다. 존재 자체가 쓸모있음이다. 각자각자 모든 생명이.
가끔 마당에 새들이 놀러 온다. 모두들 한 우주를 품고 있으니, 내 기쁨이 우주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