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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Apr 07. 2024

24개월 전에

1, 첫 해외여행(대만, 2018년 9월23~ 26일)


 호모 사피엔스 인간이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은 24개월부터인 거 같다. 

그전까지는 어딜 가도 사람의 인원수로 넣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불만이냐고? 원, 천만의 말씀. 

 그 덕에 뷔페에도, 전람회에도 놀이동산에도 대부분 무료가 아닌가....  하지만 이건 매우 합리적이다. 24개월의 아기는 외부음식을 거의 먹을 수없고 전시회를 즐기지 못하고 놀이동산에 참여할 줄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24개월에서 하루라도 넘어가면 갑자기 이 모든 깍두기 혜택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24개월 1일이 지나면 아기들도 그 모든 자본주의적 행위가 가능해질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사랑이가 24개월이 가까워지자 초조해졌다. 비행기도 한 사람의 좌석을 사야 하고(요금 지불한 자리는 비워두고 엄마 무릎에 앉아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해도) 패키지 여행에도 성인과 동일한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성인과 같은 혜택은 하나도 누리지 못하지만) 자본주의적 인간이 되기 전에 빨리 해외여행이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  나는 아기와도 갈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아  여행사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날짜, 비용, 거리, 그리고 내가 가보지 않은 곳. 모든 것을 조합하여 열심히 인터넷 서핑을 한 후 최종적으로 정한 곳은 대만이었다.


우리 내외, 아들 내외, 딸, 사랑이 6인의 투어지만 5인 비용에 유류할증료만 추가됐다.  19개월 사랑이가 자본주의적 인간이 되기 5달 전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합가를 하기 전이어서  아들 내외가 집으로 와서 같이 출발했다. 


사랑이는 첫 비행기 탑승을 잘 견뎌 줄까? 비행기 안에서 울기라도 하면 다른 승객들에게 민폐를 끼칠 텐데....  걱정이 된 아들 내외는 장난감, 쓰던 이불 등 만일을 대비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챙겨 사랑이의 물건만으로도 커다래진 가방 하나가 더  있었다. 

태블릿도 챙겨 왔다. 

육아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24개월 전에는 핸드폰 같은 통신 기기에 노출시키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들 내외는 그때까지 그 육아 조언들을 잘 지켜 온 편이다. 하지만 이건 특수 상황이었다. 내 아이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여행도 중요하니  민폐를 끼치지 않을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 했다.

그러면서 믿는 구석도 있었다. 

사랑이가 15개월 때 병원에 13일이나 입원한 적 있었다. 전신 화상 때문이었는데 복도로 나가는 것도 금지되어 침대 안에만 갇혀있었다.  

그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힘든다는 말도 배우지 못한 아기의 모습은 참 애처로웠다. 하지만 아프지만 참아야 한다고, 울면 더 아파진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사랑이는 신기할 만큼 보채거나 울지 않았다. 오히려 병실을 찾는 사람만 보면 방긋방긋 웃어서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나 청소하시는 분들, 주위 환자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비행기는 그때보다는 사정이 낫지 않은가. 약 3시간 걸리니 한숨 자 주기만 하면 금세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사랑이는 잘 가줄 것이다.



사랑이의 첫 해외여행은 아시아나 항공사의 친절한 승무원이 선물을 안겨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사랑이에게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상황을 설명하고 여러 번 당부했다.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 이 비행기를 탔단다.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울면 안 돼. 착하게 잘 가자." 

그러면서 비행기 좌석에 가득 앉은 다른 사람들도 보여주었다.

"저기 봐, 네가 울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겠지?"

상황을 이해했던 걸까? 

역시  이번에도 사랑이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끽소리 하나 내지 않고 비행시간을 견뎌준 것이다. 잠은 한숨도 자지 않는 바람에 안고, 업고, 놀아주느라 비행기에서 내릴 때쯤 며느리와 아들의 눈이 퀭해져 있긴 했지만.


덕분에 우리 가족은 편안하고 흐믓한 마음으로 대만 공항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사랑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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