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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새 Sep 22. 2021

대치동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불쌍해하면 망하는 거라고

미국에 사는 이유

"대치동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불쌍해하면 망하는 거래...."

개포동에서 아들을 키우며 대치동으로 학원 셔틀을 시작한 친구의 말이다.

친구의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 아이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학원으로 빠질 때에도 아이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놀이터와 숲, 바다를 누비며 아이 시절을 연장해 왔었다. 엄청난 신념이라기보다는 친구는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고 싶어 했고, 아이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 왔다. 그렇게 살았던 아이는 저녁을 먹고 나서야 시작해서 9시가 넘어서 끝나는 학원의 시간표부터 버거워했다. 친구 주변의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워낙 늦게 학원을 다니기 시작해서 그렇지, 금세 적응할 거라 친구를 위로했다. 엄마들의 말대로 6개월쯤 지나자 아이는 적응을 했고, 그 적응에 맞춰 영어 학원이 추가되었다.






지난여름. 2년 만에 온 가족이 한국을 다녀왔다.

부모님께서 '저한테 왜 이러세요' 수준으로 너무 잘해주셨다. 자가격리 에어비앤비로 20가지 반찬을 만들어다 주시는 것을 시작으로,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미국 물(?)을 빼는데 엄카(엄마 카드)를 내미셨다. 거기에 더해 숙성회 같은 고급 배달 음식들은 물론 아기자기한 한국 물건들의 로켓 배송 서비스, 주유가 가득된 차의 키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갑자기 저한테 왜 이러세요...

"너희 가족은 그냥 한국에 와서 살면 안 되겠니?"

삼 남매를 미국 여러 지역에 뿔뿔이 뺏기시고 한가롭고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계신 부모님의 속내는 이거였다. 돌아와. 이 좋은 한국으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왜 한국으로 돌아가면 안 되는지.

이미 개인적인 서사 속에서 회사 생활에는 마침표를 찍은 지 오래. 내가 무엇이 되었든 새로 시작한다면, 그래도 한국의 네트워크가 훨씬 더 나을 터이다.

남편은 마침 한국 회사의 지사에 다니고 있다. 재택근무 2년 차지만, 가끔 본사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면 그 또한 효율이 나을 터였다.

아이는 소위 모범생과 이다.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나가며, 디렉션에 충실하다. 모난 행동은 하려 하지 않는 것이 옛 어르신들이 딱 좋아할 한국형 인재이다.


"엄마, 아빠.

**이는 한국에서 자라면 더 성공(의 의미가 줄 서기 경쟁에서 선두가 되는 것이라면) 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미국에서 자라면 더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아요."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뭐랄까.

한국에서는 모든 아이들을 찍어내듯 견고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서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줄을 세운 뒤,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순서대로 고르게 하는 느낌이다.

뭐든 잘하는 아이가 목표랄까.

뭐든 잘하는 아이는 무엇이 되어도 잘할 테니까.

제일 잘하는 아이는 제일 인기 있는 직업을 순서대로 pick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는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아이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강요받으며 엄마 친구 아들, 딸들과 비교를 당한다.


미국에서는 어려서부터  Difference is awesome! 을 인이 박히도록 가르친다.

유전의 신비와 저주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미국 사회에는 (한국 사회 대비)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노력한다고 비슷해질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 아닌 근본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서로 다른 사람들 말이다. 이 땅은 역사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곳곳에서 모여 들어서 만들어진 그런 곳이다. 어차피 함께 사는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은 다양할지언데, 우리가 다름을 인정하고 사회 곳곳에 콕콕콕 박혀서 각자의 행복한 삶을 산다면 Great America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사회의 기조랄까. 그러니 너와 다른 이웃을 Judge하지 말 것이며, 우리가 서로 다름은 엄청나게 아름다운 일이다. 괜히 노력한다고 되지도 않을 남들과 비슷해지는 일에 시간을 쏟지 말지어다.


평균 수입이 높기로는 전 세계 어디에도 처지지 않는 이곳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퍼지던 Plumber 아저씨들의 워라벨과 소득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약속을 기반으로만 일을 하고, 시간당 보수가 엄청나며, 주말이나 야밤에는 일하지 않고, 혹시나 일하게 되더라도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런 알짜 전문직도 없다는 것이다.

내심 괜찮은데? 싶은 것이 나도 나름 직업에 귀천을 두지 않는 열린 생각을 하기 시작했구나 싶었다.

 음식물 처리기가 막혀서 어쩔  몰라할 , 플러머 아저씨가 오셔서 퍼맨처럼 멋있게 하수구를 고치고 가셨던 경험 때문일지도. 그때 아저씨가 입은 청바지며 공구를 드신 팔뚝도 멋있어 보였다는.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플러머 아저씨도 잘 먹고 잘 살고, 가드너 아저씨도 행복하고, 전 국민 대학 진학률도 낮고, 대학 중퇴자들이 창업한 회사들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이 나라. 아이의 미래에 대한 약간은 열린 결말 때문에 마음이 조금 편하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는 당장 아이를 수학 학원으로 영어 학원으로 돌리지 않아도 아직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이 땅의 분위기가 마음이 더 편한 거겠지. 더 솔직히는 '라떼'는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넌 부모덕에 여유롭게 살아도 되고 영어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 좋지? 싶은 교만한 마음도 있고 말이다. 어쨌든 대치동식으로 자란 나는 미국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쥐뿔 알지도 못한다. 아마도 한국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대치동식으로 아이를 키우며 남몰래 아이를 불쌍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쌍해하면 망하는 거라던데. 불안감을 잔뜩 가지고.


그래서 미안해 엄마 아빠.

나 아직은 미국에 살까 봐요.

망하기는 싫은데, 왠지 한국에 돌아가면 (아이를 불쌍해해서) 망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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