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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Aug 02. 2023

#1. 할머니가 너무 싫은 13살 나에게


 ‘나에게 편지 쓰기’

과거의 나, 정확히 말하면 유년 시절 할머니를 유난히 싫어해서 힘든 나날을 보냈던 나에게 편지를 씁니다.



To. 13살의 나




오늘 하루는 어땠어? 아침에 엄마한테 엄청 혼났는데, 학교에서는 잘 지냈어?


많이 답답한 거 알아. 그런데 나 지금은 할머니를 이해해. 2020년의 나는 꽤 성숙해졌거든. 할머니와 함께 사는 다른 집 아이들은 사이도 좋던데, 우리집 할머니는 진짜 유별나지?


 




오늘도 아침에 씻으러 욕실로 가니, 마침 할머니가 당신이 들어갈 때만 되면 꼭 네가 들어간다고 짜증을 내셨잖아. 거기에 자존감 흔드는 심한 말은 기본이고. 한창 사춘기가 오려는 너는 답답한 마음에 할머니에게 처음 화를 냈어. 아침부터 언성이 높아지고, 그걸 본 엄마는 버릇없다며 널 혼내셨고…


 







출처 : 사진찍는 직장인 서산 포스트소년 우체국예금보험우편





엉망인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하니, 등교길 등나무가 아름답게 휘날리더라. ‘화가’라는 동요도 스피커에서 나오고 있었어. 순간 ‘아… 차라리 집보다는 학교에 오는 게 평화롭다’고 생각했지. 




엄마 시집살이를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지



갈등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돼. 할머니는 워낙 자기 중심적이고, 딸 자식들마저 종처럼 생각하시는 분이어서 집안 일은 아예 못하시잖아. 예쁜 옷, 악세서리 같이 멋부리는 것에만 집중하셨어. 동네 사람들은 우리 할머니 겉 모습만 보고 ‘멋쟁이 할머니’라고 좋아하잖아.


게다가 정말 숨 막히는 건, 경제 주도권을 본인이 가지시는 거야. 아빠가 타온 월급은 할머니가 가져가시고 엄마에겐 생활비로 아주 조금 주셨지. 팍팍한 살림에 세 딸들 키우시느라고 엄마의 노고가 말도 못할 정도야...




 





출처 : 레이디경향




이런 무서운 할머니 밑에서 엄마는 시집살이를 아주 오랫동안, 심하게 하셨어. 엄마를 많이 사랑하는 13살 너는, 그런 고생을 옆에서 보고 있고. 커서 절대 시어머니와 같이 살지 않겠다고 일기에 다짐하는 거 보니 조금 웃음이 나더라. 


너는 네 인생 최초로 누군가를 깊이 싫어했고, 그 대상이 한 지붕 아래 가족이라는 사실이 힘겨웠지만 스무 살에 그것도 끝나게 된다.



한 사람이 평생 느낄 수 있는 감정에도 할당량이 있다면, 이미 ‘증오’라는 감정은 유년 시절에 다 느꼈다고 생각할 정도야. 이제 가능한 증오의 감정이 없을 것만 같다고도 생각해. 


일찍이 큰 교훈을 얻었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마음을 파괴시키는 것이더라. 사막처럼 고통스러워. 증오라는 것은 곰팡이 같아서… 작은 포자로 시작해 축축한 눈물의 슬픔 안에서 점점 크게 퍼지더라고. 하지만 13살 초딩이 뭐 피할 수도 없었지. 독립할 나이도 아니고, 할머니와 매번 충돌할 수도 없으니… 너무나 이해해.










출처 : 한겨레 21 내 김대중 일러스트레이터 작품




네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해.



정말 고생했어. 사느라. 


매일 보는 가족이기에, 그 감정을 멈추거나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야. 유년시절이 정말 중요하더라, 지금도 가끔 자다가 꿈을 꿔. 꿈 배경이 지금 네가 사는 마당 있는 집이더라고. 게다가 할머니도 종종 나오신다? 고운 한복 차림으로 다가오시길래 나도 좋은 마음이 생겨 따뜻하게 안아 드렸어. 그래서 13살의 네가 느끼는 증오감이 2020년에는 아주 흐려졌어. 


 




‘힘내, 파이팅’ 이런 말은 안 할게.. 이건 말 하는 사람만 속 편한 거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런 말도 안 할게. 그 시간은 생각보다 아주 기니까.


2020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해’


 




13살의 너는 노래 부르기, 일기 쓰기를 좋아하고 음악도 꽤 좋아해서 테이프도 많이 모았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시간을 많이 할애하길 바래. 그러다 집에서 할머니 때문에 너무 힘이 들 때, 방에서 좋아하는 것들에 몰두해 봐. 그러다 보면 그 시간도 지나갈 것이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전문지식도 많이 쌓일 거야.








엊그제 석촌호수 풍경이야.  완연한 가을처럼 보이는데,  날씨는 한겨울처럼 많이 추워. 추위를 너는 여전히 많이 타니까, 13살이라  생강차는 싫겠지만 많이 마셔두고, 틈틈히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몸 관리 많이 해 주길 바래. 2020의 나를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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