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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May 17. 2021

해운대에서 깨달음 범벅 먹은 썰

집을 떠나자 비로소 보이던 나와 남편

나는 5월생이다. 그래서인지 봄을 가장 좋아하는데, 긴 겨울이 끝나고 날이 따뜻해지면 나의 의식도 함께 깨어난다. 매년 3월 정도 되면 혹독한 몸살을 한번 겪은 후 4월에 비로소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곤 했다. 마치 겨울잠에서 깬 동물처럼.


지구온난화 때문일까? 이상 기온으로 추운 날씨가 계속되더니 올해는 5월이 되어서야 겨울잠에서 깼다. 그 기념으로 해운대 여행을 계획했다. 파아란 바다를 하루종일 보고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1년 간 못 갔던 시댁도 방문하기로 했다.




해운대 여행 3박 4일 동안 깨달은 것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글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길을 걷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찰나의 깨달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메모장에 모두 적었다. 거의 개인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가장 개인 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했던 봉준호 감독의 말에 용기를 얻어 그 메모장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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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많은 곳

선택지가 많은 곳에 가면 정신을 약간 잃는 편.

다이소나 뷔페나 그런 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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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맞춰지고 있는 거 같다 신랑이랑.

여행 진작 올걸...

계절의 여왕 5월 남 행사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내면을 채우는 것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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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있을 감정평가사 2차 시험공부해야 하는 남편

여행 가고 싶은 내가 충돌한다


내가 밖에 혼자 돌아다니고 오는 사이

호텔에서 공부하고픈 남편은 그렇게 한다.


각자가 원하는 걸 하면서

각자의 시간을 기다려 주고 존중해주는 일.


우리 부부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합을 맞춰가고 있다는 걸

이번 여행 통해 깨달아 가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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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 않은 시간, 한정된 식사.

뭐든지 최선의 선택을 하고픈 피곤한 나의 성격.

이곳저곳 맛집 검색에 스트레스받기보다는

맛있는걸 다 모아 놓은 그랜드조선 아리아에 왔다.

부산이니 싱싱한 해물은 이미 보장돼 있을 거고

입맛 다른 우리 부부에게 안성맞춤인 곳.

식사 시간도 넉넉해 즐거운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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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해서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귀에 집중되어 더 내 말에 집중하는 중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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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를 하자.

메모를 하고 한 달에 한번 정도 정리를 하자.

반복되는 나의 아이디어나 생각은

그걸 꼭 해야 하는 나만의 숙명,

마음의 소리이다.

나에게 집중하자 나만의 루틴을 만들면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을지도.



예민한 기질, 아빠에게 물려받은 것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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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아빠는

‘신경이 곤두서서 자기 힘들다’고 하셨고

어린 나에게 화도 많이 내셔서... 원망을 많이 했는데

아빠가 예민한 기질이라서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아빠 딸인 내가 예민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늘 많은 울 아빠... 글을 쓰면서 치유할 수 있기에

글을 써보라고 말씀드렸다.

나중에 우리 세 자매만 세상에 남았을 때

우리 아빠는 엄마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고 볼 수 있게, 우릴 위해서.


아빠 생각은 잘 모른 채로 시집을 왔기 때문에 늘 궁금하고 마음 한켠이 답답했었다.

마그네슘을 아빠가 신경이 곤두서서 잠을 못 주무실 때, 그때 드실걸... 중학생인 나는 마그네슘 그런 건 몰랐지...

지금이라도 엄마께 챙겨드린 영양제 같이 드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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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하면 너무 시간 빨리 간다.

내 시간 나에 집중해야

빨리 가는 인생 그나마 시간이 더디게 간다 느끼며 살 수 있다!!

시간이 없다는 건 그냥 그 느낌이다.

쓸데없는 딴짓=시간이 너무 빨리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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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향이 은근 돈이 많이 드는 고급 취향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스타일!

나를 위해 돈 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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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 때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여행이라는 리프레시를 못 해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신랑의 나쁜 점만 한없이 보이고... 정말 이대로 쭉 같이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 해운대가 상당히 좋았다. 기분 좋은 해외여행 느낌. 여행 오니 신랑이 달라 보이고 이해가 됐다. 남편의 좋은 점, 의외의 매력이 새로이 다가왔다.


이런 경험으로... 내가 힘들면 남이 싫고, 남의 나쁜 면만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이 느낌을 잊지 말자.


우리의 이틀 동안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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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웨스턴 해운대 호텔의 장단점

장점 :

조용하고 콤팩트하고 깔끔하다

코로나로 방 정리는 안 해주고 수건만 큰 봉지 안에 넣어서 문 앞에 놔둔다.

해운대 거리 중심에 위치해 접근성 좋다

익스프레스 체크아웃 가능( 바로 주차장 가서 카드키 퇴거함에 놓고 나가기 가능)


단점 :

화장실 약간 곰팡이 있고 샤워 매트에도.

드라이기 손잡이 부분 전선 연결되는 부분 홈이 좀 더러움

요즘 같은 때에 공청기가 없다.

공중 화장실에 변기 클리너 액체 분사기다 없다(그랜드 조선 부산, 웨스틴조선도 마찬가지)

그랜드 조선 화장실은 동선이 불편

세면대 두 개 나란히 붙은 곳에 핸드 숍, 핸드크림 나란히 있어서 오른쪽 세면대 사람은 핸드크림 모르고 누를 가능성 있음.

페이퍼 타월이 멀리 있음. 물 뚝뚝 흐르는 손으로 화장실 입구 쪽 페이퍼 타월로 닦고 다시 세면대로 와서 핸드크림 발라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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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다른 듯 닮은 듯, 우연인 듯 인연인 듯

가정환경이 마치 데칼코마니 같다.

우리 집은 딸만 있는 세 자매 중 나는 장녀,

신랑 집은 아들만 있는 두 형제 중 신랑이 장남.


3년 남짓 같이 살며 느끼는 건

내가 나를 통해 신랑을, 신랑은 신랑을 통해 나를

각자 키워야 하는 임무를 띈 게 아닐까?


표현에 서툰 아들인 신랑에게 그의 부모님과 더 가까이 만드는 방법은

“전화 좀 해” “아버님한테 자주 가자” “용돈 많이 드리자” 그게 아니라

우리 엄마는 내가 첫사랑이었대 첫 자식은 첫사랑 이래

자기도 그럴걸? 이렇게 말하는 것.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신랑이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것.


결혼은 수련이다

결혼식은 이제부터 내가 이 사람과 수련에 들어가겠다는 그런 선언식



어버이날에 이런 거 하나쯤 들고 가야 마음이 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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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마음을 헤아리면서 어른이 된다.

신랑 아버지가 늦게까지 야근하는 신랑을 위해

직장까지 차로 라이딩해 주시고

정작 아버지 본인은 근처 지하철역까지 가서 지하철 타고 본인 직장에 가셨단다.


너무 대단해 보였다.

그런 귀찮음과 희생, 사랑을 그걸 받은 자식이 깨닫는 순간

그 자식은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어른이 된 후 부모가 될 준비를 마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 부부가 아직 철없어서 아기가 안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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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부모님은 사랑이 아주 넘치고 쿨하시다.

“편한 바지 줄까?” 하고 내게 물어보는 것이

“너 일 좀 해라”라는 뜻이 아닌

정말 편한 바지 입고 편하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내 바지 입을래? 내가 벗어줄게.”

“앗 그럼 어머님은 뭐 입으시려고요?”


어머님은 다른 더 허름한 바지를 입으셨다.

어머님이 입고 계신 바지는 플리츠 검은색으로 더 예뻤다.

이쁜 바지를 이쁜 며느리에게 입으라고 주신걸 보면

정말 편하게 있길 바라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시댁이 편안하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두텁고 큰 이불에서는

이제는 영영 갈 수 없는 외할머니 방 이불에서 났던 포근한 냄새와 같아서 놀랬다.


나의 시댁은 매스컴에서 나오는 그런 눈치 주고 부려 먹는 악덕 시댁이 아닌,

정말 편한 바지를 주려고 본인 바지를 벗어 주시는...

숨겨진 의미 찾기로 애써야 하는 자리가 아닌

그냥 보이는 그대로 하면 되는...!! 그런 곳임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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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향은

초여름밤바람에 실려 오는 나무 냄새다.

초여름의 두근거림이 아직 좋은 30대 중반 여성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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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날씨, 바다, 먼 곳에서의 여행의 들뜬 마음이

계속 영감을 떠올리게 했다.

해운대에서 매초 매분마다 잊었던 내 모습과

내 옆에 항상 있던 남편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소중한 해운대 여행, 벌써 다음 방문이 기다려진다.



흐린 날 해운대의 바다는 그것대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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