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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름 판타지아 Jan 13. 2022

관계가 남긴 구멍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혼자 사는 사람들 (2021)

‘혼밥’, ‘혼술’, ‘혼영’. 혼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본다는 뜻의 단어들이 근 몇 년 사이에 생겨났다. 주로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상의 행위들을 ‘혼자서’ 하는 사람들을 강조하기 위해 ‘혼’이라는 글자를 단어 앞에 붙인 것이다. 대부분의 일상을 철저히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혼족’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혼자가 너무나도 익숙한 현대의 우리들 중 하나인 캐릭터 ‘유진아’의 일상을 따라가며 관객들을 향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 컷 ⓒ㈜더쿱


우리에게는 TV 속 얼굴이 더 익숙한, 어느덧 데뷔 10년 차 배우인 공승연이 처음으로 장편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그녀가 연기하는 카드사 전화 상담원 ‘유진아’는 하루 중 사람과 나누는 대화라고는 상담 업무를 하는 것이 전부인 캐릭터이다. 무표정을 유지하지만, 동시에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섬세하게 보여주어야 하기에 스스로에게도 큰 도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동질감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캐릭터이다. 눈을 뜨면 출근, 점심시간에는 늘 혼자 쌀국수 집에서 밥을 먹고 퇴근하면 TV를 보다가 잠이 드는 평범한 회사원의 일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생활을 사찰이라도 한 듯, 영화에서는 진아를 통해 그야말로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이 표현된다. 혼자 사는 자취방의 TV를 절대 끄지 않는다거나, 출퇴근길 버스와 점심 식사를 하는 도중에는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으로 각종 드라마나 예능을 본다. 사람보다는 화면이 더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결국은 사람 사는 모습이라는 점이다. 실제 사람과는 마주하지 않으면서, 화면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 컷 ⓒ㈜더쿱


혼자서도 잘 살던 진아에게, 하루하루 똑같았던 일상을 흔들어 놓을 사건이 발생한다. 늘 아파트 복도 같은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던 옆집 남자의 죽음, 인사 한 번 건네지 않았던 사람의 죽음은 인터넷 뉴스로도 보도되고, 진아로 하여금 타인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더불어 회사에서는 신입의 교육을 맡게 되고, 돌아가신 엄마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아버지의 전화가 자꾸만 걸려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옆집에는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오기까지 한다. 평화롭던 일상에 새로운 사람들이 끼어들면서 1인분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진아는 더 이상 늘 하던 방식대로 살 수만은 없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영화를 연출한 홍성은 감독에게도 첫 장편 데뷔작으로, 배우와 감독 모두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첫 작품이라는 타이틀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도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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