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뒷산엔 왜 가?>, 벌어진 앞니 -스스로를 못난이라 불렀던 나에게
엄마, 이건 왜 못난이야? 아이가 파프리카가 담긴 봉지에 붙은 스티커를 가리키며 물었다. 못난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400원 싸게 팔리던 한 무더기의 파프리카. "왜 못난이라고 했을까? 엄마도 잘 모르겠네." "엄마, 다음에 가면 물어봐. 왜 못난이라고 했는지." '못난이'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제의 산행에서도, 오늘의 산행에서도. 하산하다 문득 혀로 앞니를 훑었다. 나의 벌어진 앞니. 못났다는 생각으로 나를 훼손한 강렬한 증거. 못나다 1. 얼굴이 못생기거나 예쁘게 생기지 아니하다. 2. 능력이 남보다 모자라다 유의어: 덜되다, 못생기다, 무능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못났다는 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는 걸까? 누군가 누구를 '못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잘나다 1. 얼굴이 잘생기거나 예쁘게 생기다. 2. 능력이 남보다 앞서다. 유의어: 똑똑하다, 뛰어나다, 반듯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못나다의 반대편에 있는 잘나다. 칭찬으로 많이 쓰는 말이다. "어머, 잘생겼네요." "어쩜, 그 집 아이는 그렇게 똑똑해요." 기준이 존재하고, 그 기준 사이에 두고 '잘나다'와 '못나다'가 있다. 아무도 내게 평가하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수시로 상대방을 판단한다. 내 마음에 들 때는 '잘났다'라고 이야기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못났다'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잘났다', '못났다'라고 말하는 순간 내 기준이 드러나는 셈이다. 기준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대중매체에서 '잘났다'라고 말하는 기준에 부합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여성이라면 기미, 주근깨, 점, 상처 없는 흰 피부. 168cm 정도의 키에 44~55사이즈. 긴 생머리나 매체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유행하는 옷과 신발, 장신구. 남성이라면 정돈된 짙은 눈썹, 균일한 얼굴색. 185cm 정도의 키에 근육질 몸. 유행하는 헤어스타일과 옷. 나열한 여성의 잘난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나는 한 가지도 없다. 늘어난 모공에 기미가 여기저기 올라오고, 화장하는 법을 잘 몰라서 화장을 하면 얼굴만 둥둥 떠 있다. 77사이즈에 장발과 단발 사이의 생머리다. 옷은 거의 사지 않고, 손에 잡히는 옷을 입는다. '잘났다'의 기준에 성품, 개성 등은 여간해서는 끼어들기 어렵다. 첫아이를 낳고, 아이가 돌이 됐을 무렵이었을까? 앞니가 살짝 벌어진 게 보였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때는 그게 엄청 벌어진 것처럼 느껴져서 제대로 웃지도 못했다. 못났다는 생각은 나를 훼손하기 시작한다. 나는 앞니가 살짝 벌어진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워했다. 앞니가 딱 붙어 있는 '정상성'에 매달려서 괴로워했다. 네이버에 '앞니 벌어짐'을 검색했다. 래미네이트, 레진 시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친정 근처 치과에서 올린 레진 시술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앞니가 벌어진 틈이 좁아 이를 갈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게 거의 영구적인 치료로 생각하고 알았다고 했다. 아랫니와 부딪치면 레진이 깨진다고 아랫니도 갈았다. 아, 과거의 나를 붙잡고 말리고 싶건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레진은 1년도 되지 않아 깨졌다. 그전에는 앞니가 벌어진 것을 나만 알았는데, 레진을 붙이기 위해 갈아놓았기 때문에 훨씬 많이 벌어져서 누구나 알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멀쩡한 이를 가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의 그 못난 점을 꼭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딱 붙은 앞니를 보고도 개운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신체변형장애 타인이 알아보기 힘든 미미한 정도의 신체적 외모의 결함에 대한 의식과 과도한 몰두 및 집착에서 비롯된 반복적 행동(거울 보기, 과도한 치장 등)이나 심리 내적인 행동(타인과 자신의 외모 비교 등), 외모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중요한 생활 영역(사회적, 직업적 영역 등)에서의 고통이나 손상 초래, 외모에 대한 집착이 섭식장애 등으로 나타나는 것 등을 말한다. 신체변형장애를 가진 사람은 외모에 대한 왜곡된 주관적 지각을 보이며 부족하다고 느끼는 강박적 사고를 보이며, 결함이 있다고 느끼는 신체 부위를 보완하고 감추거나 관찰하는 강박적 행동,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공포증을 비롯한 불안장애, 물질 관련 장애, 다른 강박장애와의 공병도 흔하게 나타난다. 17~18세의 청소년기에 최초 발병하는 경우가 많으며 만성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환자들은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에 대하여 심리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으며, 신체적인 이상이라고 믿는다. 낮은 자존감이나 신체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인지, 뇌 구조나 신경화학적 측면에서의 이상, 강박장애와 관련된 유전적 위험요인, 경쟁적이고 부정적인 평가가 많이 이루어지는 사회문화적인 환경, 유년 시절의 학대나 무시와 같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족 중 강박장애나 신체변형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을 경우, 불안장애나 우울과 같은 다른 정신장애가 있을 경우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체변형장애 [Body Dysmorphic Disorder, 身體變形障礙]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돌아보면 그때 나는 출산 후에 신체변형장애를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앞니가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나는 억울해하며 이를 다시 보여줬다. 내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병원에 가면, 대부분의 치과나 성형외과는 '지금 큰 이상이 없는데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고민하는 부분을 위한 진료를 안내해 줄 뿐이다. 그러기 위해 이를 깎아내고, 뼈를 깎아낸다. 문제는 나를 못나게 보는 상한 마음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술 후의 모습에도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는 진짜로 벌어졌기에 이를 붙이기 위해 교정병원에 방문한 적이 있다. 내 이의 교합 상태가 아주 좋다고 사진 찍어준 간호사가 말해주었다. 의사는 앞니 쪽만 교정할 때의 비용과 전체를 교정할 때의 비용만 안내해 주었다. 지금 교합이 훌륭한데, 앞니를 붙인다고 이걸 잡아당기는 것이 괜찮을까? 고민하겠다고 병원을 나온 후로 교정 생각을 접었다. 앞니가 벌어질 수 있다. 이가 고르게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앞니의 레진이 깨진 후에 다시 시술을 하지 않고 있다. 이가 벌어진 나, 내가 나를 못났다고 여겨 멀쩡한 이를 갈아서 정말로 이가 벌어진 나를 받아들인다. 이를 갈아놔서 가끔씩 이가 시릴 때마다 화가 난다. 나를 못나게 여겨서 생긴 상흔이 내 입안에 남아있다. 앞으로도 내 앞니는 벌어져 있을 것이다. 이가 누럴 수 있다. 꼭 미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못났다'라고 생각하는 지점에 광고가 등장한다. 흰 피부, 흰 이, 날씬한 몸매 등등. 세상에 똑같은 지문이 없는 것처럼 똑같은 사람이 없는 것뿐이다. 나를 깎고 무엇을 발라서 타인과 똑같아질 이유가 없다. 그들과 같아져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과 비슷해져서 내가 잃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에게도 누군가를 '못난이'라고 부를 권리를 준 적이 없다. 평가할 권리는 더더욱. 잘나기 위해 나를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잘나기 위해 당신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은 존재 자체로 귀하다. 산책로에 아무도 없는 순간이었다. 그 고요함에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나서야 고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생명이 있는 곳에 고요는 없다. 새소리, 바람에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 그 생동감. 살아있는 자체로 소중하다. 물에 비친 햇빛에 눈을 감았다. 하늘에 떠 있는 해만큼이나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