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신에 대해 글을 쓰다.
그(칸트)는 신을 믿는 것(Einem Gott Glauben)과 신을 신뢰하는 것(An Einen Gott Glauben)의 근본적 차이를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신을 믿는 것은 아무래도 신을 관념적 대상으로 삼는 것이리라. 이것은 칸트에게 신을 신뢰하는 것이(그 스스로도 분명하게 말하는 것처럼)살아있는 신을 신뢰하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라는 사실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을 신뢰한다는 것은 그 신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가 된다.
사람은 살아있는 어떤 존재하고만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것은 칸트 스스로가 덧붙인 말을 통해 더욱 분명해지는 말을 통해 더욱 분명해지는 것처럼, “그저 우상일 뿐, 인격이 아닌 어떤 존재”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인격이 아닌 신은 우상이다. 여기서 칸트는 믿음의 실재에 아주 가까이 다가선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승리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만든 체계 때문에 자신이 말한 것을 결정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 살아있는 신으로서 신에 대한 관념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운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이 운명에 불과한 것이라면, 제대로 신을 신뢰하는 것 다시 말해 신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철학자 칸트는 말한다. 인간은 신을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이 철학자는 이 믿음에서 진리의 특성을 제거하고, 이로써 실재(단순히 심리적 실재 이상의 실재)의 특성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 파스칼에게는 (아브라함에게 그랬던 것처럼)결정적이었던 것, 곧 신을 향한 사람이 여기서는 필연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마르틴 부버 씀, 손성현 옮김, 《신의 일식》, 복 있는 사람. 94-95, 복 있는 사람, 2025.
연휴동안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가 쓴 《신의 일식》을 읽고 있습니다. 2025년 10월 8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