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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K Oct 02. 2020

야구, 이러니 사랑할 수밖에

어쩌면 당신을 설레게 할 야구 영화

지난달에는 1점대의 ERA를 기록하며 호투를 펼친 메이저리거 김광현 선수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SK 와이번스의 터줏대감 선발투수의 면모를 메이저리그에서도 여전히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1구, 1구 그의 전력투구를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주책스럽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야구팬으로서 꿈의 마운드에서 후회 없이 공을 뿌리는 그의 당찬 뒷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디 그가 낯선 땅에서의 페넌트 레이스를 이탈 없이 계속해나가길 기원한다.


야구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위의 문단을 문맥으로 이해하며 읽었을 것이다. ERA가 뭔지, 김광현 선수가 얼마나 에이스인지 알게 무어란 말인가. 하지만 야구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는 복잡한 규칙과 용어들을 뒤로하고서라도 야구가 얼마나 '인생스러운' 스포츠인지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대변해 줄 야구영화가 있으니, 바로 브래드 피트 주연의 <머니볼>이다.


이 영화는 텅 빈 야구장의 관중석에 홀로 앉아있는 어느 야구팀의 단장 '빌리'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휴대용 라디오를 손에 쥔 그는 경기 중계를 들으며 상념에 빠져있는 듯하다. 표정을 보아하니 경기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아 보인다. 패배의 쓴 맛을 뒤로하고 다음 시즌을 위해 선수단을 꾸려가야 하는 그는 없는 살림에 선수 영입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그의 선수 영입 전략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청년 '피터'를 만난다.  


두꺼운 알의 안경을 쓴 양복 차림의 피터는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회 초년생이다. 피터는 훌륭한 야구단을 꾸리려면 선수가 아닌 승리를 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고액 연봉의 스타플레이어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덧붙이며. 예일대, 경제학, 야구? 피터의 남다른 야구 이론에 흥미를 느낀 빌리는 과감히 그를 부단장으로 영입한다. 통계학을 바탕으로 수많은 선수들을 분석하며 전례 없는 유형의 영입 작전을 펼치는 이 콤비는 과연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Just Enjoy the Show.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머니볼>은 빌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야구 얘기만 하지만 사실 인생의 기회와 선택, 그리고 신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나는 모두가 아니라고 말할 때 확신을 가지고 내린 결단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일까? 모르겠다. 힘껏 휘두른 배트가 부러지더라도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으며 1루로 질주할 뿐이다. 이 영화를 떠올리면 극중 아빠에게 Lenka의 <The Show>를 불러주는 빌리의 딸의 예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리운 얼굴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히어로 크리스 프랫의 풋풋함을 보는 소소한 재미 또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머니볼을 통해 인생스러운 스포츠, 야구를 느껴보라.




'벡델 테스트'를 아는가? 어떤 테스트인지 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하고 이 테스트의 통과 조건만 나열해보겠다.


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명 이상 나올 것

2.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3. 대화 소재는 남성 캐릭터에 관련된 것이 아닐 것


올해 개봉한 우리나라 영화 중 이 테스트를 무난하게 통과한 야구 영화가 있다. 제목부터 관람 욕구를 자극했던 <야구소녀>. 이주영 배우가 연기하는 '주수인'이라는 인물은 고교 야구단의 유일한 여자 선수로 고등학교 졸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만 해 온 수인은 여느 고교야구선수들처럼 프로팀에 가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프로 지명을 받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고, 수인의 엄마는 야구를 그만두고 취업하기를 권하며 갈등이 시작되기도 한다.


수심에 잠긴 수인은 때마침 새로 부임해 온 코치 '진태'를 만난다. 모두 여자가 어떻게 프로에 가냐고 할 때 너도 할 수 있다고 외쳐 줄 구원투수인가 싶었더니, 이게 웬걸. 진태 또한 수인에게 '너 같은 애는 어차피 해도 안된다'며 수인의 행보를 무리수로 치부해버린다. 모두가 안된다고 말하는 이 상황에서 과연 주수인 선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영화는 어찌 보면 야구 영화라기엔 무언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스포츠 영화의 정석이자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는 치열하고 드라마틱한 경기 장면 한 번이 안 나온다. 야구가 그저 풍경처럼 펼쳐질 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확신에 가득 찬 눈빛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주수인'이라는 야구소녀의 성장 드라마는 당신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대체 그놈의 공놀이가 뭐길래?


내가 130 던지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왜, 그게 왜 대단한 건데?
주수인 선수가 마운드 위에서 그 누구보다 당당하길 바란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수인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에 가득 찰 수 있는지, 어떻게 이게 아니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한 가지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인지. 손끝이 온통 무르도록 연습하여 장착한 너클볼은 여전히 쏠쏠한 주무기로 쓰고 있냐며 안부를 묻고 싶다. 이쯤 되면 야알못이어도 너클볼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구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9회말 2아웃 풀카운트의 숨 막히는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 '야구는 OO이지!'라는 명제에 OO을 채우는 기쁨이 당신에게도 찾아오길 바란다.



2020년 10월 한가위에

오래전부터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염원하고 있는 K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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