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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K Oct 16. 2020

송곳 같은 발라더와 소울러

크러쉬ⅹ권순관 : 재즈 선율 위의 두 사람, 아주 칭찬해

어렸을 땐 스테레오 타입으로 노래를 '잘'하는 사람만이 가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 목청으로 넓은 음역대를 마구 넘나드는 울림이 큰 가창력의 소유자들 말이다. 특유의 감성이나 음색, 노랫말들은 그저 있으면 좋고 아님 말고식의 '비빔면의 참기름'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양한 음악들을 접하며 때로는 미친 가창력보다 송곳과도 같은 개성이 가져다주는 울림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크러쉬라는 아티스트를 처음 만난 건 한 힙합그룹의 피처링 곡에서였다. 그대로 있어도 된다고, 어느 곳에 있든 잘하고 있는 거라는 격려의 노래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당시 취준생이었던 내게 심심한 위로가 되었다. 낯설고도 신선한 그의 목소리는 명실상부하게도 Crush였다. 지금은 메인스트림의 중심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그는 대체 불가의 매력을 가졌다.


두어 곡의 디지털 싱글과 피처링 활동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2014년에 <Crush On You>라는 11곡이 담긴 풀 앨범으로 음악시장에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졌다. 트랙리스트를 잠깐 훑어보아도 화려한 라인업의 협업 아티스트들을 발견할 수 있는 이 앨범은 힙합 R&B의 A-to-Z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대체 이런 미친 알앤비 소울의 싱어송라이터는 어디에 숨어있다 이제 나온 것인지 감탄을 금치 못했더랬다.


첫 앨범을 세상에 내놓은 후 그는 조금 색다른 행보를 이어나갔다. 스트링 편곡이 인상적인 발라드 곡 <SOFA>를 발매하는가 하면, 그의 크루인 Zion.T, 지코와의 협업으로 힙합 R&B의 정수를 보여주다가도 서정적인 멜로디의 겨울 노래 <잊어버리지마>에서는 SM의 아이콘 태연과의 하모니로 또 다른 히트송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EP앨범 <Interlude>, <wonderlust>, <wonderlost>를 거쳐 작년 12월 발매한 두 번째 정규 앨범 <From Midnight To Sunrise>는 그가 가고 싶은 길이 어떤 곳인지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 같다. 이 앨범은 소울풀한 발라드 넘버부터 단출한 기타 연주로 시작해 다양한 악기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폭발하는 곡, 처음 그를 알린 힙합 기조의 신나는 R&B곡까지 다양한 곡들이 이어지며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담아내고 있다. 그의 초심과 성장과 중심을 모두 잡아 낸 명반이라고 감히 말해보고 싶다. 물론 중간중간 쉴 틈 없이 발매한 디지털 싱글들과 OST 참여곡들은 '말해 뭐해'이다.


붉은 노을에 내 마음 번질 때 부드럽고 아늑한 무언가가 날 감싸네
피어나지 못한 내 꿈들을 다시 살아나게 해
EP앨범 <wonderlust> (좌), 정규앨범 <From Midnight To Sunrise> (우)

 

그의 음악적 고민과 아티스트로 거듭나기까지의 노력들은 EP앨범 <wonderlust>의 수록곡 <2411>에서 슬쩍 엿볼 수 있다. 나의 최애 앨범이기도 한 <wonderlust> 속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2411번 버스를 타고 마장동과 압구정을 오가며 키워 온 그의 꿈이 계속되기를 열렬히 응원한다.




나의 취향 울타리 안에는 낭중지추적인 남성 보컬이 한 사람 더 있다. 바로 노리플라이의 보컬 권순관. 2009년에 발매된 노리플라이의 첫 정규앨범 <Road>에서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왠지 이 사람 툭 건드리면 울 것만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풍성한 사운드와 세심한 편곡의 흔적이 가득한 곡들을 들으면서도 나는 계속 권순관의 목소리에 온 신경이 집중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담은 지극히 인물 중심적인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었달까.


진솔하고 예쁜 우리말 가사를 감성적인 보컬로 풀어내는 권순관의 매력은 그의 솔로 앨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첫 솔로 앨범 <A Door>의 타이틀 곡 <Tonight>에서는 이별을 황홀하게도 노래하는 더 짙어진 그의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앨범은 잔에 가득 담긴 물이 흘러넘치는 순간처럼 권순관만의 감성이 리스너를 감싸 안으며 위로하는 것만 같다. 마지막 곡인 <A Door>까지 듣고 나면 그가 앞에 놓인 문을 열고 나아갈 또 다른 음악 세계가 기다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 3월, 기다림에 보답하듯 권순관이 7년 만에 새로운 정규앨범을 들고 나왔다. 1집에 비해 전체적으로 정제된 느낌의 앨범 <Connected>의 개인적인 감상 포인트를 꼽자면 두 가지이다. 싱어송라이터 권영찬의 편곡 그리고 크러쉬와 콜라보한 앨범명과 동명의 수록곡 <Connected>. 수록곡 절반 가량의 작업에 참여한 권영찬은 보컬의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편곡으로 자연스러운 배경을 멋지게 만들어준 것 같다. 한편, 동명의 수록곡 <Connected>에서는 이외의 콜라보를 보여준다. 권순관의 앨범에 피처링 크러쉬라니? 타이틀 곡보다도 이 곡의 재생 버튼에 손이 먼저 가기도 했다. 재지한 피아노 선율 위에 적당한 무게감의 비트와 베이스, 유려하게 교차하는 둘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다가오는 겨울 추위에도 끄떡 없겠다.


가파른 길을 함께 걷든지 파도치는 바다를 건너든지
그건 사랑의 완성의 과정일 뿐
권순관 2집 <Connected>


<Connected>의 타이틀곡 <너에게>에서 권순관은 사랑의 과정과 완성, 그 아름다움을 아름답게도 이야기한다. 그의 진솔하고 예쁜 노랫말이 더 많은 곳에서 울려 퍼지길,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음악으로 연결되는 순간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2020년 10월의 반틈에서

따뜻한 음악을 찾아 헤매는 K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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