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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레카 Nov 10. 2021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4)

말 한마디 못하고 들려 나가는 그 순간, 노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구급차에 누가 탔었는 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119 대원들이 들것에다가 할아버지를 눕혀서 일어서는데 생각보다 너무 가볍게 달랑 들어 올리는 걸 보고 뭐랄까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저렇게 가벼웠었나?'

들 것 뒤로 가족들이 우르르 염려스럽게 따라나섰다.


아빠가 보호자였으니까 할아버지랑 같이 구급차를 탔던가?  그 뒤로 자가용을 타고 삼촌들이 따라갔었던가?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대신 다른 장면은 아주 또렷이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훤히 다 보이는 집이었기 때문에 번쩍거리는 119 사이렌 불빛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웅성웅성거리며 우리 집을 가리키는 눈빛들이 선명히 기억에 남았다. 단순히 호기심에 별 의미는 없었겠지만 왠지 꼭 비난의 눈초리인 것 같아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알린 적은 없지만 동네에는 소문이 빨랐다. 어떻게 알게 됐는진 모르겠지만 동네 사람들이 그냥 다 알았던 것 같다. 저 나무 많은 집 할머니 돌아가시고 병든 할아버지 혼자 살고 있다고. 하기야 늘 할머니 손이 닿아 잡초 하나 없던 텃밭은 잡초가 뒤덮이고 앞마당엔 낙엽이 수북했다. 사람 하나 없는데 넓은 집은 금방 티가 났다. 

더구나 마당을 가려주던 큰 나무들도 베어 내버려서 길가에서 집안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60년 이상을 이사도 안 가고 같은 집에 살았으나 그 동네엔 할아버지의 지인은 거의 없었고 할머니는 인품이  좋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홀로 계시는 치매 노인에게 음식도 가져다주고 동네에 무슨 관급공사라도 할라치면 우리 집 공사해주는 것 마냥 인부들에게 찬 물도 가져다주고. 이틀에 한 번 오는 트럭 야채장수는 꼭 우리 집 주차장에서 시동을 끄고 방송을 해댔다. 할머니가 요구르트 한 병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 


할머니는 안 계셨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 생전에 뿌려놓은 인심 덕분에 동네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인근 유치원 원장이 박카스를 사들고 오기도 했고 트럭 장수가 과일 한 봉지를 주고 가기도 했다. 


우리 집 마당에는 집 지붕을 다 덮을 만큼 큰 벚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대문 밖에서 보면 마치 숲처럼 보여서 사람들은 할머니 집을 나무 많은 집으로 불렀다. 

봄이면 흐드러진 벚꽃이 온 마당에 눈처럼 흩날렸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에 매미소리가 우렁찼다. 

가을에는 매일 쓸어내도 낙엽이 떨어졌다. 겨울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바람보다 더 찬 소리를 냈다. 


할머니는 이 나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집을 어둡게 하고 춥게 하고 꽃잎이며 버찌며 낙엽이며 모두가 일거리였으니까. 그래서 볼 때마다 베어 내 버리고 싶다고 했다. 해 좀 보고 살자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무슨 심경의 변화였는지 할아버지가 아빠더러 나무를 몽땅 다 잘라버리라고 했다. 

안 그래도 나무가 점점 길가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그쪽으로 쓰러져서 사고가 날까 봐 노심초사하던 차였다. 할머니 생전 그렇게 베어버리자고 할 땐 꿈쩍도 하지 않더니 돌아가시자마자 베어버리라니. 이렇게 쉽게 벨 거면 할머니 있을 때나 베어버리지. 뒤늦게 나무를 베라는 심보가 너무 미웠다.  


몇몇 삼촌들은 수령이 오래된 나무를 함부로 베는 게 썩 내키지 않은 것 같았다. 자기들 어릴 때부터 오르내리고 늘 마당에 자리하던 나무였으니까 아쉬운 마음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별도리가 있나. 내가 양팔을 벌려 안아도 다 안을 수 없었던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가 순식간에 베어졌다. 


나무가 베어져서 마당 위로는 시린 하늘이 그대로 뻥 뚫렸다. 

해도 잘 들고 마당이며 집 안이며 환해졌지만 무언가 을씨년스러운 것이 텅 빈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누운 채 들것에 실려 나갈 때 구름 한 점 없던 그 하늘만 시야에 가득 찼을 것이다. 


푸르고 시린 하늘을 보던 그 순간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아버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들 다섯에 며느리 다섯이 모여서 이러쿵저러쿵 하더니 119가 왔다. 

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될지 본인의 거취를, 본인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니었다. 


내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할아버지는 화가 났었을까? 아니면 슬펐을까? 

어리둥절한 채 버둥거리며 타인의 결정대로 그저 무기력하게 들려나가던 할아버지의 눈가가 촉촉했던 것 같기도 한데, 어쩌면 그냥 모든 걸 포기한 감정에 대한 유일한 표현은 아니었을까?


119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자 어수선했던 분위기도 잠시, 동네는 곧 고요함을 되찾았다. 김장 때문에 모였던 가족들도  무거운 분위기를 이겨내고 이내 각자의 할 일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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