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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별 Jul 10. 2021

선우정아의'도망가자'를300번 듣고

따뜻한 손이 내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살다 보면 반갑지 않은 내리막길을 마주한다고 한다. 

그것이 예상했던 길이든 그렇지 않든 내리막길은 몸보다는 정신이 힘든 시간임에 분명하다. 


나의 내리막길은 지난해 12월부터였다. 코로나 시대에 당당히 전직을 선언하고 옮긴 회사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업무, 분위기 환경에 나를 매일같이 메마르게 했고, 견디지 못하여 한 달 만에 퇴사를 선언한다. 


바로 전 직장에서 나름 인정을 받고 자신감도 올라온 상태여서 더욱이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맛있고 화려한 신상 디저트 같던 스타트업으로의 전직은 나에게 내리막길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직장이 없는 하루하루는 나에게 고통스러웠고 불면증을 안겨주었으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한날 라이브 세미나에서 진행자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직장이 아닌 직업이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나는 정답을 알면서도 문제만 열심히 읽어대는 사람이었던가. 나의 밥통 하나 지키지 못하고 어느 하나 잘하는 것 없이 살았던가. 이런 온갖 핀잔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뭐야? 아니, 할 수 있는 게 뭘까? 


한 달을 눈물 흘리며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고는 마음이 급했다. 무슨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턱대고 좋아하는 브랜드가 새로이 매장을 오픈한다는 소식에 새로운 팀에 합류하였고 3번의 면접을 거쳐 입사하였다. 퇴사 후 한 달 만에 입사했고, 나는 이 직장에서 세 달도 안되어 퇴사한다. 맞지 않는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이었고, 이기적이었고 이기적이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다달이 나가는 월세,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고정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나의 내리막길은 더욱 가파라졌다.





제한된 선택 사항에서 최대를 얻고자 노력했다. 

더 나은 기회를 잡기 위해 앞선 합격을 거절했고, 더 나은 기회는 내 손에 쥐어지지 않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욕심을 버리기에는 아직 젊고 나는 더 큰 포부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 믿었다. 적어도 3개월 정도 까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라는 존재가,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 다 무의미하고 타인과 비교하게 되며 가속도가 붙은 자전거처럼 빠르게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다. 불안과 초조함이 심해질수록 현실과 마주함을 피하고 짧고 강한 유혹에 혹하여 나를 망치고 있었다. 


못된 생각을 한 적도 있고, 가족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처럼 날카롭게 박히는 듯했다. 그것들은 나를 위협적이게 하지도 아프게 하지도 않는 깃털 같은 부드러운 말들이었지만 내 몸에서는 날카로운 부분만을 받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피폐해지는 것인가 악해지는 것인가 스스로가 안되었다가 미웠다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듣게 된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고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 말자


그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돼 내가 안아줄게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거야 어디든




뜨거웠다. 처음 이 노래를 듣게 된 순간. 

눈과 내 얼굴 전체가 후끈 달아오르며 이내 크고 뜨거운 눈물이 뚝 하고 흘러내렸다. 

노래를 듣는 동안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온기 가득한 투박한 손으로 내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이런 너라도, 지금 이 시간도 

가파른 내리막길에서도 내가 옆에 있어줄게 같이 가줄게." 라며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내리막이 끝나고 평평한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거기에선 조금 더 웃고 행복해보자고.

가사의 모든 구절과 단어들은 내편이 되어 나에게 손 내밀어주었다.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그 따뜻함에 나는 무한반복으로 이틀 내내 300번이 넘도록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모두 앞으로 나아갈 때 나만 뒷걸음질 치는 것은 아닐까 

내 하루가 진정 의미 있는 시간일까. 한 사람의 몫을 한 것일까 

의심에 의심이 덧대여 스스로를 불신하며 지냈던 시간들이었다. 

나의 역량을 내 존재를 그리고 나의 미래를. 그리고 지금도 이 내리막에서 헤어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나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자 

모두에게 각자의 시간이 있다. 

그래서 곧 내리막길도 끝날 것이라 

위로한다. 안되면 도망가야지 그리고 또 돌아와야지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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