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부엘링 정말,, 저가 항공의 비애 2>
2022. 8. 18일 10일 동안 떨어져 있던 신랑을 만나기로 한 시간이 왔다. 신랑은 어제 인천에서 출발해서 이스탄불을 경유해 이곳 바르셀로나로 오고 있다. 해외에서 그것도 공항에서 신랑을 만나기로 하니 색다른 느낌이다.
장거리 비행 후 입국장을 빠져나올 때 누군가가 피켓을 들고 있거나 환영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의 피로도 금방 사라질 것이다. 내가 10일 전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을 때 민경 씨의 장미꽃과 환영 피켓이 그러했다. 그 느낌을 알기에 멀리 인천에서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온 신랑을 맞이하고 싶었다. 우리도 여행 중이었기에 피켓은 만들지 못했지만, 입국장을 나왔을 때 아이들이 달려가 "아빠~~~~" 하며 안기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을 준비를 했다. 은근히 극적인 이벤트를 좋아하는 신랑도 안에서 짐을 찾으며 따로 전화가 없는 걸 보면 은근히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이스탄불 출발한 비행기가 공항에 착했다는 모니터를 확인하고 출구 쪽으로 가고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 게다가 아이들은 꼭 이럴 때 화장실에 가고 싶다. 넓고 복잡한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아이들을 챙기고 큰 수화물을 실은 카트를 끌고 움직이는 건 미션이다. 아이들을 챙겨 입국 게이트로 가고 있는데 신랑한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우리 게이트 앞이야~~ 자긴 짐 찾는 중이야?"
"나 나왔는데?"
"아이고~"
저기 보니 모자를 푹 눌러쓴 홀아비 모습을 한 아저씨가 서 있다. 수화물용 트렁크와 큼직한 침낭을 들고,,,
아이들이 "아빠~" 하며 달려간다.
연예인처럼 입국장 게이트가 열리며 멋지게 등장하는 극적인 상봉 영상은 시시하게 날아갔지만, 여전히 반갑다.
공항 밖으로 나갈 시간의 여유는 없어 출국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바르셀로나 여행기를 브리핑하고 신랑의 장거리 비행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앞으로 10일 동안 하게 될 '여행의 끝판왕' 아이슬란드 일정을 확인했다.
우선, 항공 지연이나 수화물 분실로 악명이 높은 부엘링 항공을 타야 하므로 만약의 때를 대비한 시뮬레이션을 그려본다. 신랑이 챙겨 온 초겨울 의상 중 몇 가지는 추려서 기내용 캐리어에 옮기고 입지 않을 한여름 옷들도 조금씩 수화물용 캐리어에 바꿔 넣었다.
출국까지는 아직 5시간이나 남아 있지만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 100미터도 넘어 보이는 긴 줄을 보니 신랑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추가 금액을 지불하고 'Premium timeflex check-in'을 선택한 것에 크게 칭찬해 줬다.
어렵지 않게 출국 check-in을 마치고 Terminal 1 면세 구역으로 들어갔다. 이미 피곤에 지친 우리 가족이 여유 있게 면세 쇼핑을 즐길 리 만무하다. 대신 비용을 좀 지불하더라도 편하게 서너 시간을 쉬고 저녁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공항 라운지'는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샤워시설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넓은 공간에서 여유 있게 쉴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다양한 스페인의 음식을 뷔페식으로 맛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정신없이 복잡한 공항 터미널을 한가하고 에어컨 빵빵한 라운지 2층에서 통창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호사가 없다.
"얘들아~ 아이슬란드 물가 비싸다고 하니 넉넉히 먹고 가자!"
현실성 있는 농담을 던졌는데 아이들이 꽤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밀린 휴대폰의 사진을 정리하고 그동안의 여행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드디어 미지의 나라로 갈 시간이다. 긴장되고 기대된다.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국제공항에서 레이캬비크 케플라비크 국제공항까지는 4시간 정도 소요되고 시차는 스페인이 아이슬란드보다 2시간 빠르다. 모든 여행이 그렇겠지만, 날씨는 여행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오로라는 기대할 수는 없지만 ( 오로라는 대체로 겨울로 접어드는 9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그것도 운 좋으면 볼 수 있다.) 여름에 해당되는 8월엔 비교적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파란 하늘을 만나가 어렵다는 게 여행 선배들의 조언이었다. 아이슬란드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이 예사롭지 않다. Darkgrey의 무거운 구름이 뭉게뭉게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으스스하다.
창밖을 보며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제발 비가 많이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짙고 무거운 구름을 통과하며 많이 덜컹거렸지만,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 도착했지만, 이곳 아이슬란드는 밤 9시, 게다가 백야가 있어서 착륙하며 바라본 미지의 세계는 늦은 오후의 느낌이다.
이곳에 오기 전 여러 책을 보며 예습한 내용에 의하면 공항 밖의 주류가 상당히 비싸서 아이슬란드에 입국하는 사람들은 공항을 빠져나오기 전 반드시 면세점에서 술을 사야 한다고 배웠다. 우리는 내세울 만한 주당들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내야지 하며 아이슬란드 로컬 맥주를 한 팩 샀다. 이제 짐을 찾아 나가면 된다. 수화물을 찾으러 벨트 쪽으로 가고 있는데 Lost&Found 창구 주변에서 승객들이 웅성웅성 된다.
"무슨 일이지?"
"글쎄,,, 다른 항공기를 타고 온 사람들 같은데 짐을 분실했나 봐~~"
"어머, 어떻게 해. 우리 짐은 잘 나오겠지?"
"그래야지.!"
한참을 기다리는데 수화물 벨트를 통해 들어와야 할 캐리어가 나오질 않는다.
처음부터 찾아가지 않은 캐리어로 보이는 하나만 몇 바퀴째 계속 돌고 있다.
이상하다. 지금쯤은 수화물이 나오기 시작해 하나씩 짐을 찾아 떠나야 할 승객들도 그대로다.
예감이 좋지 않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신랑과 시뮬레이션도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막막하기만 하다.
Lost&Found 창구로 갔다. 부엘링 항공 배지를 단 직원들이 승객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물었다. "What's going on?"
직원 말에 따르면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VY 8560편 항공기가 사람만 태우고 수화물은 아예 안 실었다는 거다.
믿을 수 없었다.
다른 비행기에 잘못 실은 것도 아니고 아예 짐을 안 싣고 이륙했다고? 그것도 일부가 아닌 탑승객 전원 150명의 수화물을 말이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어이가 없었다.
부엘링 항공이 악명 높다는 이야기는 수차례 들었지만, 하필 내가 골고루 경험하게 되다니 말이다. ( 이륙 6시간 지연과 수화물 분실/ 엄연히 말하자면 분실은 아니고 수화물 도착 지연이다.)
설명하고 일을 처리하는 부엘링과 공항 측 직원들의 태도가 더 놀랍다. 이 사람들은 자주 있는 일인 듯 상당히 편하게 응대하고 있었다.
이미 아이들의 시계 패턴으로는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라 졸려 했지만 우리 부부는 나중에 손해를 보면 안 되므로 꼼꼼히 확인하고 챙겨야 했다. 현재의 공항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두고 여권에 붙여둔 수화물표 스티커도 찍어 두었다. 받지 못한 수화물의 개수와 내용물들 그리고 우리가 아이슬란드에서 이동하는 동선에 따른 숙소들을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해서 제출했다.
수화물은 다음 비행기를 타고 올 예정이니 내일 공항으로 와서 찾아가거나 여행지를 이동해야 하면 그다음 날 도착하는 숙소에서 수령하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매일 다른 루트로 이동해야 하므로 (대부분 승객들이 비슷한 상황이다.) 앞으로 5일 정도 우리가 이동하면서 머무를 숙소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 줬다.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믿지 않는다고 별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만약을 대비해서 긴 바지와 긴소매 티셔츠, 바람막이 점퍼를 하나씩 빼서 기내용 캐리어에 넣어 온 것에 감사해야 했다.
첫 번째 예약한 숙소는 공항 근처로 잡았다. 처음 경험하는 아이슬란드의 밤 운전을 고려해서이다.
기내용 캐리어 달랑 하나 가볍게 끌고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와 렌터카 부스로 갔다. 아이슬란드에서 차를 빌리는 건 숙소를 예약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 비싸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아이슬란드 도로 상황과 날씨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바람이 문제인데 여러 가지 렌터카 보험 옵션 중 돌보험과 바람 보험 등도 있다니 상상이 된다.
그래서 렌터카를 고를 때 어떤 종류의 차량을 빌려야 하는지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운 좋게 예약한 차량보다 조금 업그레이드한 차량을 제공받았다. 아마 렌터카 업체 직원이 우리의 지친 얼굴을 보고 업그레이드해 준 게 아닐까?
어렵게(?) 밖으로 나온 아이슬란드의 첫 공기는 차가웠다. 아니 추웠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더워서 얼음이 간절했던 우리는 공간 이동을 해서 추운 나라로 왔다.
우리나라 11월 초의 날씨 정도일까? 영상 10도 정도인데 당장 내일 입을 옷이 걱정이다.
서둘러 차에 올라타 히터 온도를 높였다.
밤 11시가 가까이 되니 이제야 어둑어둑 하늘이 짙은 청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