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드레킴 Mar 10. 2024

호주 이민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때 호주로 조기 유학을 오고 이듬해 가족 모두 이민을 결심한 막내 고모 가족은 20년 넘게 시드니에 거주하고 계신 교민이다. 호주로 여행을 계획하고 13년 만에 연락을 했다. 결혼식 끝나고 못 만난 지 오래인데 뜬금없이 연락하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호주를 가게 되었으니 잠깐이라도 얼굴을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는데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반겨주는 사촌동생 연진이가 너무 고마웠다. 

어릴 때만 해도 친척들 왕래가 많았기 때문에 사촌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고 이사문제로 잠시 머물 집이 필요했던 막내고모 가족이 우리 집에서 잠시 지내게 되었을 때는 가족캠프를 하는 듯 즐거운 기억만 남아 있다. 막내고모는 당시 피아노 선생님이셨는데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정이 상당히 많으셨다. 연진이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갈 때까지 엄마의 등살에 학구파 소녀로 자랐는데 내면엔 뭔가 탈출의 의지가 있었던 거 같다. 중1 여름방학을 이용해 호주 서머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각국의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체험하고 했던 시간이 참 좋았었는지 귀국 후 유학을 보내달라고 한참을 졸랐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해외 조기 유학과 이민 그리고 결혼과 사업까지 20년이 훨씬 넘은 이민사 일대기를 사촌동생의 저녁 초대로 근사한 시드니 뷰를 보며 들을 수 있었다. 


호주에서 다시 시작한 학창 시절은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의 교육 방식과는 다르게 다양한 활동과 관계형성을 통해 교육을 받고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고 활발하고 모험심 가득했던 여학생은 건강하게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반면 삼 남매를 데리고 연고도 없는 시드니에 처음 도착한 초기에 고모는 하루종일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전업주부로 지내셨다고 한다. 아침에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오페라 하우스 주변을 돌고 산책하는 정도가 다였다고,,, 이야기만 들을 땐 모든 사람의 로망이지 않을까 하며 좋았겠다 생각했지만 그 생활도 서너 달 지나니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고모는 친구도 없이 참 너무 무료하고 외로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집 근처 조깅하며 오다가다 지나쳤던 초밥롤 식당에서 파트타임을 구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시간을 보낼 겸 일을 시작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식당의 업무는 주방 보조. 당연히 설거지와 청소였고 피아노만 치고 공부만 하셨던 고모에겐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한국사람 아닌가? 투철한 주인의식과 근면 성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식당 주인이었던 러시아인의 마음에 쏙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밥민족의 고모는 캘리포니아롤등 셰프의 업무도 금세 익숙해지셨다. 여러 차례 힘들어 그만둘까 고민했던 고모는 매장을 하나 맡길 정도로 주인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러시아 사장이 다른 지역의 매장 확장으로 고모에게 일하고 있는 매장 인수를 권하셨고 '이것이 기회다' 하고 생각하신 고모는 큰 고민 없이 한국에 계신 고무부께 연락드려 장사를 결심하고 곧바로 진짜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후 한국에 기러기 아빠로 계셨던 고모부까지 이주를 하시고 고모의 초밥 비즈니스는 그야말로 대박이 터지게 되었는데 매일 버는 수입을 다 정산하기도 힘들어 비닐봉지에 싸서 퇴근하셨다고 한다. 

'인생 역전', '캘리포니아 드림'처럼 행운으로만 가득해 보이는 고모의 정착기지만 기쁘고 재미있는 날만 있었을 리 만무하다. 여느 이민자들이 그러하듯 매일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고 이겨내야 하는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며 외로움에 눈물을 삼킨 일도 많았을 것이다. 

"희진아~ 지금이야 이렇게 좋은 식당에서 편하게 맛있는 요리 먹으면서 지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가 셋이라고 집주인들이 세를 주지 않아 집을 구하러 전전하고 다니기도 하고 현지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고 때로는 빈 공백을 채우기 위해 쉬지 못하고 일해 병이 나기도 하고,, 말도 말아라. 니 고모가 마음고생 많이 하셨다." 


아이들의 교육이나 비즈니스 또는 현재의 일탈을 위해 해외로 이주하고 정착하는 해외 교민수는 7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어떤 이유나 또는 좋은 기회로 인해 해외에 살고 있는 것인데 겉으로 보기엔 마냥 좋아 보일 때가 많지만 사실 많은 어려움과 외로움으로 매일매일을 도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드니 대학을 졸업한 사촌 동생 연진이는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도 있었지만 엄마가 그동안 고생하시면서 일궈온 요식업 비즈니스를 이어받고 전문적인 비즈니스로 브랜딩 하기 위해 고모가 운영하시는 식당에 취직해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매장이 10개가 넘는 프랜차이즈의 대표가 된 그녀가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게 느껴지는지 가슴 한편이 뜨겁게 벅차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민자들의 세상 시드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