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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Dec 07. 2024

19. All Day 항해 즐기기

We will navigate all night and day long in the Ioanian Sea, having the Greek coasts(including the Peloponnese) on the left. In the afternoon/evening we will be at the beam of the Greek island of Kythira, entering the Sea of Crete. We will then continue our navigation toward the Cyclades islands and Mykonos. 

'우리는 왼쪽에 그리스 해안(펠로폰네소스 반도 포함)을 두고 이오니아해를 밤낮으로 항해할 것입니다. 오후/저녁에 우리는 그리스 키티라(Kythira) 섬의 광선에 있을 것이며 크레타 해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다음 키클라데스(Cyclades) 섬과 미코노스(Mykonos)를 향해 계속 항해할 것입니다.'




이탈리아 브린디시를 떠나 다음 목적지 그리스 미코노스 섬까지는 약 970km,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리스로 들어가는 이오니아해를 항해 중이다. 첫째 지환이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그리스여행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오늘 크루즈는 정박하지 않는다. 

장기 여행에서는 중반을 넘어서면 슬슬 피곤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지쳐갈 때쯤 아무것도 안 하고 호텔방안에서 뒹굴거리는 것만으로도 큰 휴식이 된다. 

물론, 크루즈 프로그램은 선실에서 그냥 잠만 자게 두지는 않는다. 하루 종일 배안에서 즐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매시간시간 알차게 프로그램을 짜놓고 크루즈 가족들을 불러 모은다. 

부지런한 둘째가 아침 일찍 스트레칭을 하러 가는 엄마를 따라나선다. 7시에 맞춰 헬스클럽으로 올라갔는데 이런,,, 13세 어린이는 출입금지란다. 운동 기구들과 무거운 아령등 아이들의 안전을 위함이라는데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 따라 아침 운동을 하려던 아이의 실망하는 모습을 보니 나만 운동하러 들어가기 미안해졌다. 가뿐하게 모닝스트레칭 수업을 취소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침의 갑판 위는 쌀쌀함 그 자체이지만 뜨끈한 물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자쿠지에 들어가기로 했다. 항상 사람이 많은 자쿠지앤 자리 쟁탈을 위한 눈치작전이 필요한데 아침 일찍 가니 독점이다.

일본 히노끼탕에 들어간 것처럼 얼굴을 차갑지만 몸이 뜨끈하니 여행하며 누적된 피로가 싸악 풀리는 느낌이다. 잠시 후 먼저 나와 모닝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이런 아침의 호사로운 여유는 일상으로 돌아가 피곤하고 지칠 때마다 생각날 거 같았다. 

8시가 되니 음악과 함께 모닝 에어로빅이 시작한다. 

헬스클럽에서 못한 모닝 스트레칭을 신나는 에어로빅으로 풀어본다. 나이도 국적도 불문하고 모두 모여 앞에 강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하는데 너무 재미있다. 

"One, Two, Three ,,, Turn Right"

"Uno, Dos, Tres,,, Gire a la derecha"

머리에 밴드를 두른 강사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번갈아 가며 멤버들을 이끈다. 움직일수록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느낌은 운동을 해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기분이다. 

엄마가 생전 처음 에어로빅을 체험하는 동안 자쿠지에 살이 쭈글거릴 정도로 머물던 려환이가 아침을 먹으며 말한다. " 엄마! 내가 자쿠지에 있을 때 어른 두 분이 들어오셨는데 한국사람이었어. 아들이랑 함께 여행 중인데 우리처럼 아테네에서 내린대. 그리고 인천에 살고 계시는데 그 어른들도 여행을 좋아하신대~" 변죽도 좋은 12살 꼬마는 엄마 운동하는 동안 따뜻한 물안에서 아줌마들이랑 수다를 즐겼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이 분들은 우리 가족과 함께 유일하게 크루즈에 승선했던 한국인이었고 이 날 이후 마주칠 때마다 아들 덕분에 인사도 나누고 친근한 관계가 되었다. 





[Master Chef at SEA]

오전 11시 산 카를로 극장에서 마스터셰프 경연대회가 있다고 한다. 참가자는 신청하라는 말에 서둘러 내려갔다. 무대를 보니 그럴싸하다. 마침 요즘 한국에서 '흑백요리사'가 유행이라 더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요리의 기회를 얻는 건 아니다. 퀴즈를 맞혀야 한다. 

문제는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6가지 언어로 동시에 번역되어 나온다. 한국어가 없어서 아쉽지만 우리 가족은 번역기를 열심히 돌려가며 문제를 풀었다. 정말 세계 음식과 다양한 식재료에 대한 수준 높은 문제였다. 

" 토마토는 채소이다. O or X "

" 싱싱한 달걀은 물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 Arachibutyrothobia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

"다음 중 콩의 종류가 아닌 것은? 1. Green Beans 2. KIdney beans 3. Lima beans

등등 수준 높은 퀴즈에 우리 팀은 예선탈락했지만 문제를 다 맞힌 브라질, 프랑스, 크로아티아에서 온 세 명이 무대에 올라가 디저트 데코하는 경연을 벌였는데 심사위원은 우리가 탄 심포니아 크루즈의 실제 셰프들이었다. 관람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었던 이벤트였다. 


[Pingpong Tonament]

탁구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3개월 레슨 경력을 가지고 있는 두 형제와 안 배워도 잘한다는 자신만만한 아빠가 한국 탁구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기세가 등등하다. 그런데 아뿔싸! 성인들만 신청이 가능하단다. 아쉬울 틈 없이 아이들은 바로 아빠의 응원부대가 된다. 난 모히또 한잔을 주문하고는 대회 관람자가 된다. 아빠와 대결하게 된 사람은 튀르키예에서 여행 온 두 아들의 아빠다. 그 집도 아이들이 아빠를 응원하는 눈치다. 접전 끝에 아쉽게 패했지만 대회가 끝나고 아이들끼리 한번 더 핑퐁경기를 했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주고받으며 양보도 하고 즐겁게 게임하는 모습을 보니 스포츠엔 국경이 없나 보다. 




진짜 농구선수를 만난다고?

[Meet the basketball player]라고 프로그램표에 쓰여있길래 아이들이 호들갑이다. 우연히 농구선수가 승객으로 배에 타는 걸까? 아니면 농구선수를 섭외한 걸까? 설마 어제 만난 크로아티아의 키 큰 아저씨가 진짜 농구선수? 아이들의 궁금증이 커진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한중일 크루즈엔 인순이를 초대가수로 섭외하기도 하고 트로트 가수가 출연하기도 한다고 들었기에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긴장감에 농구 코트로 갔는데 엥? 어디에도 농구선수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자주 만났던 농구를 좋아한다는 키 큰 흑인아저씨가 있을 뿐,, 스포츠 담당 크루에게 물었다. " 농구선수는 어디 있어요? 진짜 오나요?" 

"바로 여기에 모인 여러분이 농구선수예요. 자~ 여러분! 한 게임하실까요?"



[Mini golf game]

12층에 올라가면 퍼팅을 할 수 있는 9개의 홀이 준비된 미니 골프장이 있다. 크루즈 말미를 둘러싸고 만들어 놓은 인조 골프장엔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큼직한 바위들이 있어 게임은 더 흥미롭다. Par3와 Par4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상당히 흥미로운 경기를 펼칠 수 있다. 골프 경험이 전혀 없는 아이들에게 퍼터 잡는 법과 기본적인 룰을 알려주며 아홉 개의 홀을 돌았다. 각도를 계산하고 서로 의논해 가며 퍼팅해 땡그랑 하고 들어가는 공놀이가 꽤나 재미있나 보다. 캐나다에 머물 때 시내버스를 타면 7번 아이언 하나만 달랑 들고 연습장 가는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골프가 대중적인 스포츠라는 게 꽤 부러웠었다. 한국에서는 흔하게 접할 수 없는 미니골프장을 그것도 시원한 바닷바람을 쐐며 바다 한가운데서 즐기는 경험도 좋은 추억이다. 언젠가 아이들과 느긋하게 18홀을 돌면서 여유 있게 골프를 즐기는 장면도 상상해 본다. 





[Bingo Game]

배에서 돈을 썼다면 벌 수 있는 기회도 있다. 크루즈 안에 카지노가 있긴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빙고게임은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게 오픈되어 있는 꽤 흥미진진한 이벤트이다. 저녁을 먹기 전 오후 5시 빙고게임이 있다는 소식에 아이들과 빙고카드 석장을 구매했다. 유일하게 배에서 쓴 지출이다. 

한 장에 10유로 (15,000원)를 주면 숫자가 적힌 빙고카드를 주는데 '모든 번호'를 먼저 접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상금은 300유로(약 45만원)으로 물론 현금 지급은 아니고 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크레딧으로 주는 형식이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상금이 걸린 게임에 모두들 행운이 따라오기만을 바란다. 아이들도 백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것처럼 번호가 불릴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번호를 찾아 접었다.

 3개가 남았을 때 저 뒤에서 남자가 외친다. 

"빙고" 

아쉬움은 아이들 몫이다. "얘들아~~ 저녁 먹으러 가자!"




[뮤지컬 관람 : City of stars]

저녁을 먹고 오전에 마스터셰프 대회가 있었던 카를로 극장으로 향했다. 마술쇼를 시작으로 영화 드림즈, 사운드오브뮤직, 맘마미아, 찰리초콜릿공장등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의 OST를 뮤지컬로 각색한 무대가 모든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아이들이 잘 모르는 영화라도 워낙 유명한 곡들이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아이들과 함께 맘마미아 댄싱퀸을 함께 열창하는 순간은 너무나 감격적이었다. MSC 크루즈 선박회사의 역사와 발전상을 짧은 영상으로 만나봤는데 이탈리아 한 가족의 작은 선박회사에서 시작한 사업이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까지를 보니 꽤 감동적이었다. 선장님의 인사와 4,000명을 이끌고 있는 각 파트별 팀장들의 인사시간도 있었다. 안전담당, 식음료담당, 객실담당, 엔터테인먼트담당, 스포츠 담당, 의료담당, 총괄매니저와 각 파트별 팀장들이 무대로 올라와 인사할 땐 정말 진심의 박수를 보냈다. '우리들은 한배를 탄 가족이니까'




밤 9시가 좀 넘었을까? 공연이 끝날 무렵 배가 흔들림을 느꼈다. 내가 너무 흥분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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