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사건으로 독일 경찰서를 방문했다
사인을 해달라며 나와 친구에게 다가왔던 낯선 두 사람. 그 사람들이 내 핸드폰을 훔쳐갔다는 것 이외에는 가능한 시나리오가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친구의 폰을 내 코트 주머니에 넣고 친구가 가져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나는 내 코트 속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친구가 꺼내어가도 모르는데, 전문 털이범의 손놀림은 얼마나 빠를까. 그제야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도난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나의 핸드폰은 아이폰6로, 교환학생을 오기 몇 개월 전 구매했던 따끈따끈한 최신폰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긴 했지만 폰으로 사진을 더 많이 찍었고, 정말 슬프게도 자동 백업을 꺼둔 상태였다. 결국 난, 교환학생을 온 후 2개월 간의 추억들을 베를린 한가운데서 잃어버려야 했다.
와, 핸드폰을 도난당했다고 인정한 그 순간의 감정은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 교환학생을 온 지 약 1달 만에 발생한 일이었고, 한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 땅에서 처음으로 겪어본 일이었기에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막막함과 허탈함, 화남, 우울함, 어이없음, 슬픔 등 가지각색의 감정들이 뒤죽박죽 섞여 마음속에서 와글와글거렸다. 옆에 있던 친구가 나를 달래주었지만 기분은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날씨는 여전히 조금씩 내리는 비와 함께 칙칙한 하늘이었고 내 마음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너무 우울해 내 폰을 훔쳐 간 그놈들이 매일 장염 위염 온갖 병으로 고통받길 저주했다.
당일 계획한 일정이 있었기에 계속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으나 발걸음은 너무 무거웠고 유명 관광지를 봐도 딱히 감흥이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핸드폰이 사라졌을 그 순간에 멈춰있었다. 결국 우리는 하루를 망친 채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이폰 찾기'라는 서비스로 내 스마트폰의 위치를 추적해보았더니, 역시나 폰은 꺼져있었고 위치는 추적할 수 없는 상태였다. 걱정해주던 친구가 부모님께 연락드려라고 폰을 빌려주었고,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서러워 숙소 복도에서 엉엉 울며 나에게 일어난 상황에 대해 설명드렸다.
핸드폰이 도난당했을 때의
대처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니?
울던 나를 다독여주시던 엄마의 말씀을 들으니 속에 쌓여있던 울분도 덜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조언대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대처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숙소 컴퓨터로 핸드폰이 도난당했을 경우의 대처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와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정리해놓은 글들이 있었고, 도난당한 장소와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인증서를 발급받은 후 보험금을 신청해야 한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글들을 읽으며 다음날 다시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훌쩍거리다 잠든 다음 날, 여전히 베를린은 흐렸고 나는 친구와 함께 다시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했다. 문 주위를 둘러보다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을 발견했고, 그들에게 가까운 경찰서를 안내받았다.
한국에서도 경찰서에 가본 적이 없는데, 하물며 독일 경찰서라니! 약간 긴장한 상태로 들어가니 대기 장소에는 먼저 온 4명의 여자들이 앉아 있었는데,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2명은 중국인, 다른 2명은 일본인이었다. 서로의 대화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눈치로 모두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이곳에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중일 세 국가의 여성들이 베를린 경찰서에서 모이다니! 정말 웃픈 상황이었다.
대기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되어 경찰관을 따라 어디론가 향했다. 작은 방에 앉은 나는 책상 너머 경찰관에게 당시의 상황에 대해 진술하기 시작했다. 나의 얘기를 듣던 경찰관은 서류를 작성하며 나에게 말했다.
‘최근 들어 아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도난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부디 독일에서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가길 바란다.’
사실 도난사건으로 이번 여행에 대한 심정은 '애'보다 '증'이 더 커졌었지만, 경찰관의 따뜻한 말과 태도에 슬픔이 조금 누그러졌던 것 같다. 그렇게 증서를 받은 나와 친구는 경찰서를 나섰고, 다음 여행지인 함부르크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 후 독일 여행을 마치고 스웨덴에 돌아온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폰 없이 살아보자'며 핸드폰 없이 한 달 살기에 도전했고, 이후 동네 매장에서 구매한 화웨이 6만 원짜리 핸드폰으로 남은 교환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스웨덴 친구에게서 교환학생도 현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팁을 얻어, 학교에 도난당했다는 증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정말 스웨덴 대학교에서는 6개월짜리 교환학생인 나에게 64만 원 상당의 보험금을 지급해주었다. 복지국가라는 명성만 들었지 그것을 직접 확인한 놀라운 순간이었다.
지금 다시 그때를 돌이켜보면 우선 우울한 나를 다독여주고, 이후에도 계속 도와줬던 친구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멀리 외국 땅에 보낸 딸이 많은 걱정을 안겨드린 것 같아 부모님께도 죄송함과 동시에 감사함을 느낀다. 어찌 보면 독일 경찰서에 가서 진술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며 나 스스로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당시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거렸지만, 이 일이 예방주사가 되어 후에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땐 좀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하. 지. 만. 핸드폰 도난이라는 건 살면서 한 번으로 충분하고, 앞으로는 절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