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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Jun 26. 2024

나를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고양이는 왜 그럴까? -2-




2. 꺼지지 않는 에너자이저 건전지





야심한 새벽, 두 시로 달려가는 시간

눈꺼풀 위를 덮치는 졸음에 무드등을 끄고 베게 위로 머리를 뉘였다.


고요해진 방 안,

칠흑같은 시야,

그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게슴츠레 뜨는

노오란 빛 눈동자.


검은 배경 속에 홀로 회색 명도의 실루엣이 기지개를 키곤

침대 위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


수마에 빠져들어 이제 막 꿈나라의 정문 손잡이를 잡을 때 즈음,


우다다- 다다다닥- 

삐그덕- 기익- 다다다다-


시작된 그의 마라톤에 결국 짙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하지만 늘 있는 일상인지 그러려니 하며 다시 잠을 청하는데,


"으악!"

"하악-!"


기어코 그는 배 위를 덮쳐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지

내 비명에 본인도 놀란 듯 하악질 해대는 모습이 영 우스웠다.

어릴 때는 작으니 뛰어다녀도 불편함은 없었으나 2살을 바라보는 지금,

이제는 묵직해져 버린, 일명 '우다다'에 수면의 질은 한 없이 떨어졌다.


"대체 새벽만 되면 왜 그러는거야?"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하게 그루밍하고 나를 올려다보는 순진한 눈망울에

결국 치밀었던 짜증도 다시 개수구 물 빠지듯 내려갔다.



-



에너지가 넘치는 그에게 딱 맞는 선물을 준비해주었다.

그저 옷 몇 벌과 그깟 커피 몇 잔 사지 말자는 생각으로 캣휠을 구매했다.

캣휠을 꺼내고 이리저리 조립하는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곤

박스 한 부분에 자리를 차지하고 빤히 보는 고양이에 미소를 지었다.


"우리 웅이, 좋아해줄거지?"


캣휠 조립을 끝내고 새로운 존재에 익숙해지도록

캣닢을 뿌려주고 직접 어떻게 하는지, 제발 관심이라도 돌릴 수 있게

온갖 생쇼를 하자 박스에서 지루하다는 듯 쳐다보던 그가 드디어 몸을 일으켜왔다.


캣닢 냄새 한번,

캣휠 탐색 한번,

캣닢 냄새 한번,

캣휠 탐색 한번


그것도 잠시 흥미를 잃은 모습에 망연자실

진짜 그의 마음은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새벽의 고통을 더이상 지속할 수 없어, 이러다 내가 죽어!


몇날 며칠을 캣휠에 관심을 줄 수 있도록

조금만 달려도 잘한다!

스크래치만 해도 잘한다!

뒹굴거려도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무조건적인 칭찬 공세로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태릉 선수촌 입사한 것 마냥 미친듯이 캣휠을 달리는 모습에

웅이가 금메달 따온 것처럼 기뻐했다.

이제 새벽의 고통도 끝났다!






아니?

누구 맘대로 끝내냐는 듯,






야-옹,

다그닥- 다그닥-

애옹-, 다그닥



이제는 캣휠을 할 때마다 나를 깨운다.

그니까 달리는 자기를 칭찬해달라고 한다.



새벽의 고통 끝났단 말 철회!






모든 태릉 선수촌 타입의 주인님의 집사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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