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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Apr 11. 2024

산방산 위에서

꿈삶글 121


산방산 위에서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이어도가 보인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숨결이 들어온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당신이 들어온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당신이 안아준다

산방산 정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당신과 하나 된다



산방산    

           

산방산에 구름이 집을 짓는다

산 안에 방이 있는 산

산과 산 사이에 방이 있는 산

나는 산 안에 방이 있는 산을 찾았다

산 안에 있는 방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산방산에는 빈 방이 없었다

산방굴은 이미 부처님께서 차지하셨고

서복 선생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던

옥탑방에는 이제 올라갈 수가 없다

산방산 옥탑방에서는 이어도가 보인다

한라산 옥탑방에서도 이어도가 보인다

아름다운 세상이 훤히 보인다고 했는데

이제는 산방산 꼭대기에 올라갈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산방굴사에서 겨우

산방덕이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내려온다        

       


산방산 안에서


산 안에 방이 있는 산이 있다 

산과 산 사이에 방이 있는 산 

방 안에 산이 있는 방이 있다 

방과 방 사이에 산이 있는 방      


나는 그런 산방산 안에 있다      


절반쯤은 늘 안개에 잠겨 있는 

가끔은 이어도가 희미하게 보이는 

그런 산방산 안에서 나는 

나의 탯줄을 너무 늦게 자른다 

나의 태반을 너무 늦게 묻는다      


그런 산방굴사 안에서 부처님께서 

먼바다를 지그시 꿈꾸고 계신다 



보아뱀 


서귀포 화순해수욕장에 섬을 꿀꺽 삼켜버린 

커다란 보아뱀 두 마리 살고 있다 

산방산을 삼키고 부처의 고뇌를 삼켜버린 

보아뱀, 두 마리 오늘도 바다로 기어가고 있다 

추사의 세한도를 삼켜버린 용머리 보아뱀 

횟집과 민박집을 삼키고 부른 배로 기어가는 

보아뱀, 두 마리가 화산처럼 부글거리며 

이어도로 가고 있다 


나는 그 보아뱀이 삼켜버린 많은 전설들을 알고 있다 

갈대숲의 새와 검은 쥐들과 취객이 토해 놓은 

어둠과 욕망의 내력들을 다 알고 있다 

보아뱀 뱃속에서 좌선하는 부처님과 추사가 코끼리 꼬리에 대하여 

한담을 나누고 있다 


가끔은 무지개의 뿌리 쪽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보아뱀 

바람이 거세어 배들이 피항하는 화순항 

바람이 거세질수록 화순 앞바다를 

더욱 치열하게 기어가는 뜨거운 보아뱀 두 마리 

지금 막 빠져나가고 있다 

이어도로 가고 있다



다시 보아뱀


보아뱀이 훌쭉하다

산방산이 홀쭉하다

악어도 홀쭉하다

송악산도 홀쭉하다

한담을 나누시던

추사와 부처님은 어디로 가신 것일까

코끼리는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을까

형제섬을 토해 놓은 악어는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가

더 홀쭉한 가파도를 물어뜯으려는 것일까

등을 무겁게 누르는 구름은 잡아먹지 못하고

손이 없는 긴 몸뚱이만 꿈틀거리고 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장가 소리에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검둥개는 보이지 않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흰둥개도 보이지 않는다



                           

산방산의 문화재적 가치 보존과 정상부 천연기념물 '산방산 암벽식물지대' 등의 보호를 위해 2022년 1월 1일부터 2031년 12월 31일까지 지정 구역을 제외한 곳은 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산방산 매표소에서 산방굴사까지의 산책로만 탐방 가능하오니 방문 시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려동물은 출입할 수 없으니 많은 양해 바랍니다.

제주 서남부 지역을 달리다 보면, 안덕면 사계리 랜드마크인 산방산을 볼 수 있는데, 거대한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한 웅장함을 자랑한다. 산방산은 서남부 웬만한 곳에서는 보일만큼 큰데, 비교적 평탄한 지역에 홀로 우뚝 솟아있어 더욱 눈에 띈다. ‘산방’은 굴이 있는 산을 의미하는데 산방산 아래에 작은 굴에서는 부처를 모시고 있어 이곳을 ‘산방굴사’라고 한다. 이곳에는 날과 관계없이 낙숫물이 떨어지는데 이를 산방산의 여신인 “산방덕”의 눈물이라고도 한다. 넓은 바다와 아름답고 웅장한 산방산 속 푸른 자연과 어우러진 이곳의 절에서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산방산에는 아래와 같은 재밌고도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에 어떤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날 따라 그 사냥꾼은 한 마리의 사냥물도 잡지 못했다. 심술이 난 사냥꾼은 허공을 향해 몇 번의 화살을 쏘아 댔는데 그만 화살 하나가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려 그의 심사를 건드리고 만다. 한적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던 옥황상제는 느닷없는 화살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두리번거리다 옆에 있는 한라산 꼭대기를 뽑아 던져버렸는데 그것이 바로 산방산이다.

하늘나라 선녀로 잠시 인간 세상에 내려온 산방덕이는 화순마을에 사는 고성목이라는 나무꾼이 성실하고 착하여 마음에 그를 품게 되었다. 고성목을 너무너무 사랑한 산방덕이는 그를 지아비로 삼아 부자가 되도록 도우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면 좋으랴. 그 마을 사또가 산방덕이의 미모를 탐하기 시작했다. 몇 번 산방덕이에게 접근을 하던 사또는 오직 남편만을 바라보는 산방덕이가 미워졌다. 어떡하면 산방덕이와 고성목을 떼어 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사또는 고성목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멀리 보내버린다. 갑자기 사랑하는 남편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산방덕이는 사또의 야비함에 치를 떨며 오열하다가 남편이 너무너무 그리워 산방굴사로 들어와 며칠을 목 놓아 남편을 부르다 힘이 떨어져 죽고 만다. 그 후로 산방굴사의 천정에서는 똑똑똑 세 방울씩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 물이 산방덕이의 눈물이라고 믿었다. 이 물이 영험하다 하여 옛날부터 자식 없는 사람이 제를 드리곤 했었는데 아들이면 물이 넘치고, 딸이면 물이 부족하였다 한다.


산방산 바로 앞에는 용머리 해안이 있는데 전망용 망원경이 있어 용머리 해안의 전망을 쉽게 눈에 담을 수 있다. 날이 좋다면, 용머리 바위, 형제섬 등 주변 경치를 더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유람선을 타는 것도 권할만하다. 가끔 구름이 산방산 꼭대기를 둘러싼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림 속 풍경을 보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준다.



봄에는 유채꽃이 빽빽하게 만발하기 때문에 노란빛과 어우러진 산방산의 경치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런 자연이 주는 볼거리들과 함께 하멜전시관도 함께 들러봄직하다. ‘하멜 표류기’로 알려져 있는,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선원으로 난파를 겪어 제주도에 봉착했으며, 1652년부터 1666년까지 조선에 살았다. 하멜이 제주도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담은 하멜 상선 전시관이 산방산 바로 아래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길을 떠난다

창세기부터 다시 세상을 읽으며

멀고도 긴 순례를 떠난다

30년 넘은 유배생활을 마치고

내 삶의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생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1

― 태초에는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도 없었고 땅도 없었고

하느님도 없었고 말씀도 없었다

태초라는 말도 없었다


빛도 없고 어둠도 없는 허공에

아무도 모르는 씨앗 하나 날아왔다

그 작은 씨앗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


처음은 그렇게 하나로 시작되었다

하나의 껍질을 벗으니 둘이 되었고

둘은 다시 하나가 되어 넷이 되었다


어느 맑은 날 문득 하늘이 생겼다

하늘은 텅 빈 없음이니 없음이

자꾸만 무엇인가를 낳기 시작했다


먼지를 낳고

바람을 낳고

구름을 낳고

어둠을 낳고

별과 달과 지구를 낳고

뜨거운 태양을 낳았다


하나가 둘이 되면서 빛과 어둠이 생겼고

둘이 넷이 되어 동서남북을 낳아 길렀다

그렇게 세상은 생겨나서 팔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처음의 세상은 너무나 뜨거웠다


너무 뜨거운 세상에

구름은 물이 되어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물과 흙은 생명을 낳았고

생명들은 물에서 흙으로

흙에서 허공으로 퍼졌다


세상에 태어난 것들은

따뜻함을 중심으로 모였다

손에 손을 잡고 돌기 시작했다

따뜻함은 가득한 사랑이니

사랑은 사랑을 낳아 길렀다

세상은 그렇게 사랑이 되었다


사랑은 시간을 만들고

시간은 인간을 낳았다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신들을 낳았다


공간이 만든 신들은 죽고

인간이 만든 돈이 빛났다

신들의 시대는 지나가고

인간의 시대도 지나가고

화폐의 시대도 지나가고

지구는 병이 깊이 들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거나

메타버스를 타고 가상공간으로

서둘러서 떠나가고 있다


인간이 만든 신은 죽었고

스스로 신에 등극한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신과 사람과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옹달샘의 숲이 되어 숲으로 살아간다 


1. 꽃눈

2. 숨겨두고 잊었는데

3. 어깨

4. 올챙이

5. 보리


꽃 눈


오늘은 바람이 분다

꽃잎 눈이 내린다

하루 만에 날개를 달았다

함박꽃눈 내린다

벚꽃 잎이 딸기꽃잎을 찾아간다

내일은 함박눈이 쌓이겠다


숨겨두고 잊었는데


감을 먹고

감씨를 숨겨두고

잊어버렸는데

싹이 올라온다

연꽃 떠나고

연못 잊어버렸는데

연잎이 올라온다

아직은 뜬잎이다

머지않아 선잎이 올라올 것이다

도토리 숨겨두고

잊어버렸던

다람쥐도

나와 같을 것이다

나와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오래도록 행복할 것이다


어깨


어깨가 부실한 이어도공화국 다육이에게

봄날의 아침 물을 주면서 문득 깨닫는다

연꽃 물통 안에서 너무 많은 올챙이들이

꾸물거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활짝 핀다

가로수 벚꽃 잎 떨어져 시들고 잎은 나고

이어도공화국 왕벚꽃은 잎과 함께 웃는다 


나의 어깨가 더 아픈 것은 욕심 때문이었다

분명히 침대에 누워서 팔을 위로 올리라고

그렇게 날마다 꾸준히 조금씩만 늘려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욕심부렸다

앉아서도 서서도 나는 끊임없이 팔을 뻗었다 


당구채로도 골프채로도 하늘로 밀어 올렸다

욕심이 결국 나의 어깨, 날개를 망가뜨렸다

벚꽃 잎이 하늘에서 눈송이처럼 춤추며 온다

나는 이제 다시 봄 그늘 아래 누워 시작한다

나를 덮어주는 벚꽃 잎 하나와 둘을 헤아리며

시나브로 머리 위로 팔을 들어 올려 눕힌다

팔을 뻗어 함부로 하늘을 들어 올리지 않고

아픈 어깨를 어루만지며 편안하게 눕힌다


올챙이 


따뜻한 오후가 되니

올챙이들이 쏟아진다

다투어 쏟아져 나온다

저 많은 올챙이들 중에

과연 몇 마리나

개구리가 되어

연꽃 물통 밖으로 나올까 


나는 과연 개구리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봄에는 모두가 손을 모은다


봄에는 모두가 손을 모은다

우리는 간절히 손을 모은다

너와 나 간절히 손을 모은다

떡잎도 꽃잎도 손을 모은다

몸과 마음이 함께 손 모은다

하늘도 손을 모으고

공기도 손을 모은다

손을 모으면

껍데기는 스스로 떨어진다

봄은 언제나 기도의 신이어서

모아진 손에서 봄이 피어난다


보리


보리가 익어가니

보리밥이 맛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큰 기둥이 아니라

작은 가지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사람들도 그러하다

그리하여 세상은

오늘도

향기롭고 아름답다


날개

                       

어제 바람에 꽃잎들 많이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아직도 나무에는 많은 꽃잎들이 남아있다

이어도공화국 사철나무 울타리 밖에서

사람들이 벚나무를 기어오르며

사진 찍느라 바쁘다


https://brunch.co.kr/@yeardo/2184 <정본 윤동주 전집>


https://brunch.co.kr/magazine/basec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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