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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Nov 20. 2024

이어도에서 만난 사람들

― 배진성 시인의 꿈삶글 0009



0009 이어도에서 만난 사람들


이어도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부처님도 만났고 예수님도 만났다 공자님도 만났고 소크라테스도 만났다 어머니도 만났고 아버지도 만났다 제주도 사람들도 만났고 여수 사람들도 만났다 고향사람들도 만났다 북간도 사람들도 만났고 북한 사람들도 만났다 제주도 사람들이 먼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정방폭포 위에 위령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일전에 서복 선생님과 함께 다녀왔던 서복 전시관에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바람처럼 돌았다 정방폭포에서 온 사람들이 먼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함께 가고 싶은 사람들은 함께 가자고 하였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윤동주 시인과 함께 나도 따라서 먼 길을 나섰다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윤동주 시인의 <서시> 중에서



나는 아직 한강 작가를 잘 모른다 나는 아직 한승원 작가를 잘 모른다 나는 아직 한충원 목사를 잘 모른다 며칠 전에 삼촌인 한충원 목사가 조카 한강 작가에게 공개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공개 편지를 읽으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때로는 편지가 독이 될 수도 있고 칼이 될 수도 있다 참 슬픈 일이다 우리의 한강 작가는 대통령도 하지 못하는 일을 했다 우리 대통령보다 훨씬 높게 우리나라의 국격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런 삼촌의 공개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에 나의 마음이 참 많이 아프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터무니없는 비수를 날린 일은 없는지 뒤돌아보고 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는다 책갈피에 메모장이 있다 “선배님, 제주에서 읽는 4·3 / 『작별하지 않는다』는 / 어떨지 궁금합니다” 아, 나의 부활을 지켜보았던 후배님께서 보내주셨던 책을 다시 읽는다 2017년 12월 22일, 내가 서울대학병원에서 두 번째로 부활한 날, 그 전날 병원을 몰래 빠져나와, 이제하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던 마리안느에서 시노래 공연을 보여주셨던 선배님과 후배님, 나는 아마도 평생 그날 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편물 하나가 나에게 왔다 따뜻하고 반가운 이름이 나에게 왔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수술받기 전날, 함께 시노래를 들었던 이름이 왔다 나에게는 가장 추웠고 가장 무서웠던 그해 겨울, 그런 나를 위로한다고 찾아오신 김종순 박사님과 송예진 후배님이 나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셨다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이제하 선생님께서 직접 불러주신 모란동백을 듣던 그날 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나에게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었던 내가, 그날 밤 병원 근처의 카페 마리안느에서 만난 이제하 선생님, 이산하 시인님, 황인숙 시인님, 박철 시인님, 기형도 시인 누님, 그리고 박경하 시노래 가수……, 아, 그날처럼 오늘이 또 왔다

  

       


(유튜브 대본)

0009 이어도에서 만난 사람들


이어도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부처님도 만났고

예수님도 만났다 공자님도 만났고 소크라테스도 만났다

어머니도 만났고 아버지도 만났다 제주도 사람들도 만났고

여수 사람들도 만났다 고향사람들도 만났다 북간도 사람들도

만났고 북한 사람들도 만났다 제주도 사람들이 먼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정방폭포 위에 위령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일전에 서복 선생님과 함께 다녀왔던

서복 전시관에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바람처럼 돌았다

정방폭포에서 온 사람들이 먼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함께 가고 싶은 사람들은 함께 가자고 하였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윤동주 시인과 함께 나도 따라서 먼 길을 따라나섰다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윤동주 시인의 <서시> 중에서



나는 아직 한강 작가를 잘 모른다 나는 아직 한승원 작가를 잘 모른다

나는 아직 한충원 목사를 잘 모른다 며칠 전에 삼촌인 한충원 목사가

조카인 한강 작가에게 공개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공개 편지를 읽으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때로는 편지가 독이 될 수도 있고 칼이 될 수도 있다

참 슬픈 일이다 우리들의 한강 작가는 대통령도 하지 못하는 일을 했다

우리 대통령보다 훨씬 높게 우리나라의 국격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런 삼촌의 공개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에 나의 마음이 참 많이 아프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터무니없는 비수를 날린 일은 없는지

스스로 깊이 뒤돌아보고 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는다 책갈피에 메모장이 있다

“선배님, 제주에서 읽는 4·3 / 『작별하지 않는다』는 / 어떨지 궁금합니다”

아, 나의 부활을 지켜보았던 후배님께서 보내주셨던 책을 다시 읽는다

2017년 12월 22일, 내가 서울대학병원에서 두 번째로 부활한 날,

그 전날에 병원을 몰래 빠져나와, 이제하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던

마리안느 카페에서 시노래 공연을 보여주셨던 선배님과 후배님,

나는 아마도 평생 그날 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편물 하나가 나에게 왔다 따뜻하고 반가운 이름이 나에게 왔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수술받기 전날, 함께 시노래를 들었던 이름이 왔다

나에게는 가장 추웠고 가장 무서웠던 그해 겨울,

그런 나를 위로한다고 찾아오신 김종순 박사님과 송예진 후배님이

나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셨다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이제하 선생님께서 직접 불러주신 모란동백을 듣던 그날 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나에게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었던

내가, 그날 밤 병원 근처의 카페 마리안느에서 만난 이제하 선생님,

이산하 시인님, 황인숙 시인님, 박철 시인님, 기형도 시인의 누님,

그리고 박경하 시노래 가수……, 아, 그날처럼 오늘이 또다시 왔구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에게 보내는 삼촌의 편지

한충원 11월 7일 오후 8:09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에게 보내는 삼촌의 편지


   사랑하는 조카,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조카 개인의 크나큰 영광이요 아버지 한승원 작가 형님 가문의 영광이요 대한민국의 쾌거네. 나도 조카와의 관계를 아는 지인들로부터 꽤 많은 축하 메시지와 전화를 받았다네. 


   나도 지난 40여 년 동안에 100여 편의 논문과 연구보고서를 쓰면서 체험한 바로는 한편의 작품을 쓴다는 것이 마치 자신과의 씨름처럼 힘든 일인데, 하물며 상상의 세계를 글로 옮기는 창작은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오죽하면 창작 활동을 임신과 출산에 비유하겠는가? 특히 분량 면에서 볼 때도 소설작품은 다른 장르에 비해 창작의 진통이 상상하기가 힘들 것이네. 나도 과거에 몇 편의 중․단편소설과 시와 수필 등을 써보면서 조금은 경험한 일이라서 공감할 수 있다네. 


   조카가 그런 세월을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룩한 위업에 대하여 어떻게 몇 마디 말로 존경과 찬사를 표현할 수 있겠는가? 여하튼 가슴 벅찬 축하를 보내네. 


   게다가 조카를 낳고 키우신 아버지 한승원 작가 형님 내외분에게도 뜨거운 축하를 보내드리고 싶네. 어쩌면 형님은 자제인 조카를 통하여 젊은 날의 고된 나날에 대한 보상을 받으셨다고도 할 수 있다네. 교사 생활과 창작 활동을 겸하면서 자녀 3명을 부양하고, 어린 동생 3명을 돌보시며, 대가족 집안의 가장 역할까지 하셨으니 형님은 인간적으로 거인이셨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초인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17살 아래 동생인 나의 청소년 시절에 형님은 나의 영웅이었네. 형님은 내게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분이었네. 어떻게 보면, 나는 그분의 분신처럼 성장했다네. 형님은 나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나의 병역특례 기간(5년)이 끝나면 김원일․김원우 작가와 같은 형제 작가로 살아가자고 제안하셨네. 나는 형님의 은덕을 갚고자 형님이 교사직을 그만두고 작가로 활동하시던 초기 4년 동안 나의 월급 절반 이상을 형님에게 보내드리면서 형님의 전업작가 생활을 도왔다네. (그때 조카는 초등 시절이었네.) 게다가 형님은 나의 결혼 주례로 작가 이호철 선생님을 세워 나의 작가 활동 발판을 마련해주실 만큼 나를 아끼셨다네. 마치 아들을 챙기듯이. 


   내가 손위․아래 누이 둘과 함께 형님 집에서 살았던 10년 세월의 힘들고 슬프고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라 목이 메네. 아버지의 생전까지 꽤 괜찮았던 우리 집안(9남매)은 아버지의 소천 이후로 갖가지 비극적인 불행들이 덮쳐오면서 암울했고 가세까지 크게 기울었다네. 그래서 나는 중등 1년부터 누이 둘과 함께 광주에 사시던 형님에게 맡겨져 함께 지내게 되었네. 우리는 두어 번의 이사 끝에 형님의 처가에서 지어준 한옥집에서 살았네. 


   그 한옥집은 광주 신역(新驛) 뒤와 로켓 배터리 공장 옆에 위치하였는데, 비포장도로와 퇴비 적치장에서 몰려오던 먼지와 파리를 막아내야 했고, 밤마다 근처 판자촌 남정네들의 객기 부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네. 그때 조카는 유년이었고 나는 고등․대학 시절이었네. 그 시절의 추억들이 가슴 아리게 되살아나네. 


   내가 고등 2년 어느 날 늦은 밤에, 형님은 술에 취해 퇴근해서 나를 툇마루로 불러내더니 나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문필가만 있다. 무관도 있어야겠다. 네가 육군사관학교에 가는 것도 좋겠다. 이사장님이 나를 불러서 내가 그런 작품을 계속 쓰면 나를 해직시키라는 경고를 어떤 기관으로부터 받았다는구나. 군사독재정권이 싫지만, 네가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괜찮겠다. 어떤 작가는 자기 형님이 고급장교라서 잡혀가도 바로 풀려나더라. 너한테 정말 미안하구나.” 형님과 나는 툇마루에서 서로 껴안고 한참을 울었네. 


   형님은 교사 생활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기가 힘들었는지 자주 아프셨다네. 창작 활동에만 전념하길 갈망하셨지. 나는 거의 매일 밤과 새벽에 형님의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중․고․대학을 마쳤다네. 측간(변소)에 들어가면 형님이 퇴고하신 원고지(휴지)를 읽느라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다네. 


   조카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 항상 차분하고 다소곳하며 혼자 방에 누워서 무슨 생각엔가 골몰하곤 하던 조카의 모습이 기억나네. 


   조카가 아기 때 엄마 형수님이 담장 없는 1층 양옥집 마당에서 밥 짓는 불을 지피는 동안에 조카를 업어주었는데, 조카가 하도 울어대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내가 조카의 엉덩이를 꼬집어 더 울렸다네.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하네.) 


   내가 대학 1년 때 교양 영어 작문 리포트를 써놨는데, 5살 조카가 내 책상에 올라가서 리포트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놓아 황당했다네. 리포트를 새로 베껴 쓸 시간이 없어서 색연필 그림이 그려진 이유를 리포트 위에 써서 그대로 제출했는데 교수님한테서 ‘Excellent’를 받았던 일이 떠오르네. 


   형님의 제안으로 조카가 중등 2년에 영어교과서를 다 외우면 상금을 주기로 했었는데 석 달 후에 조카는 거짓말처럼 한 자리에서 교과서 전체를 연습문제까지 단 한 문장도 틀리지 않고 다 외웠네. 나는 기겁했고 그때 이미 조카의 비범함을 직감했네. 나는 어깨에 힘주면서 형님 내외분 앞에서 조카에게 상금을 주었다네. 


   지금부터 18년 전에 형님의 김동리문학상 시상식에서 내가 조카의 얼굴을 본 이후로 편지로나마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네. 지금부터 37년 전에 셋째형님의 장례식에서 그 형님의 구원 문제로 형님과 나 사이에 큰 충돌이 일어난 후로 형님 집안과 소원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나의 인생에서 은인이신 형님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려고 갔던 자리였네. 그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조카를 가끔 매스컴을 통해 보곤 했다네. 


   그 동안에 멀리서 조카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들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자 나는 복잡한 감정에 빠졌다네. 솔직히 말해, 기쁨에 앞서 적잖은 충격과 놀라움과 걱정에 빠졌다네. 노벨상 수상으로 인하여 오히려 형님 집안이 하나님의 구원에서 더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조카의 작품에 대한 평가로 한국 사회가 두 쪽으로 갈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라네. 20여 일이 지나는 동안 충격과 놀라움이 많이 사그라지고 마음이 정리되어 이제야 축하 편지를 보내네. 형님 집안과 아예 단절된 상태에서 조카의 전화번호나 주소를 전혀 몰라 불가피하게 공개편지를 보내게 되었네. 


   사실, 조카와 나의 단절도 예수 그리스도 신앙을 미워하고 배척하신 형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네. 지금부터 39년 전에 2년 동안 형님과 나는, 알코올중독에 빠져서 인생이 망가져 가는 셋째형님의 치유 방법을 놓고 두 해 동안 서로 첨예하게 갈등하였네. 그러다가 셋째형님은 돌아가셨고 그 형님의 장례식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떤 사람도, 어떠한 것(문학 포함)도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는 나의 주장에 분노하여 형님은 3일 동안 나를 가혹하게 핍박하셨네. (그 핍박이 어떤 것인지는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네.) 형님은 “피를 뽑고 뼈를 갈듯이 글을 써서 너를 가르쳤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면서 그 말을 취소하라고 요구하며 삼우제 날 새벽까지 나를 심문하셨다네. 


   문학을 목숨처럼 여기면서 작가 활동을 해오셨던 형님에게 “문학에는 구원이 없다”는 나의 말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켰던 것이네. 그때부터 형님과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게 되었네. 40대 중반에 잠깐 세속에 빠졌지만, 나는 지금까지 38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 신앙으로 영혼과 인생이 망가진 이웃들이나 붕괴 직전의 가정들을 회복시키는 일에 전념해왔다네. 하지만 형님 집안의 구원에 대한 나의 눈물의 기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로, 국내에서 노벨문학상의 권위는 물론 조카의 작품에 대한 외설성 비판과 청소년 유해성 시비가 일어나고(전국학부모단체의 반대와 국회에서 논란), 5.18 민주화운동과 4.3 사건에 대한 평가 시비가 새삼 일어나고,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노벨문학상 취소와 한림원 규탄 시위까지 벌어지며, 조카의 작품을 비판했던 어떤 작가가 특정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되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 이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되었다네. 


  최근에 자주 SNS 단체방에 조카의 작품에 대한 비난 글들이 게시되고, ‘조카의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지인들의 전화까지 받을 때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네.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해야 할 일인데, 조카의 작품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지경에 이르니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네. 


   나는 조카의 혈육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도(신학)를 공부하여 안수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목양하고 있는 목회자요, 초등시절부터 29살까지 시간만 나면 국내는 물론 세계 문학․사상 서적들을 탐독하다가 21살에 처음 써봤던 단편소설이 대학문학상에 당선되고 22살에 두 번째 써 봤던 단편소설이 지방신문의 신춘문예(소설 부문)에 당선되었고 그 후로 29살까지 작가의 길을 준비했던 휴면(休眠)작가요, 또한 부강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려고 45년 동안 국방연구개발 현장에서 세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일했던 공학자 출신이네. 


   이런 인생을 살아온 삼촌으로서 조카의 작품에 대한 논란거리를 중심으로 포괄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조카의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 제안하고 싶다네. 어찌 되었건 나의 청소년 시절에 내게 은덕을 베푸신 형님의 자제요 내 등에 업어주기도 하고 예뻐하면서 함께 자란 조카의 작품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가슴에 생채기를 난 것처럼 마음이 아프네.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리자마자 수많은 사람이 나를 향해 ‘나쁜 놈’이라고 돌팔매질할 수도 있음을 익히 알고 있지만 이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네. 편지를 써야 할지 말지를 하나님께 여러 번 여쭤보기도 했네. 보름 남짓 기도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 편지를 쓰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네. 


   나는 대의를 위하여, 나의 조국의 백성들과 후손들의 영혼을 위하여 이 편지를 공개하기로 결심했네. 이 시대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더욱 급속도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성적으로 타락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네. 우리나라마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동성애의 합법화가 시도되고, 영혼까지 파괴하는 성폭력이 수없이 자행되며, 이혼율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거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통탄할 일이네. 


   따라서 문학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사회․윤리적인 책임 의식을 갖게 하고, 우리 국민이 문학작품에 대하여 분별력을 갖도록 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애쓰는 목회자로서의 사명감으로 이 편지를 공개하게 되었네. 깊이 이해하길 바라네. 


   첫째, 노벨문학상의 권위에 관한 의견


   노벨상은 어쩌면 세계 최고의 상이라고 할 수 있네. 매년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경제학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들에게 수여되는 영광스런 상이기 때문이네. 나도 과학기술 분야에서 종사해서 잘 알지만, 과학상은 우리나라의 과학․의학자들도 관심이 많은 상이라네. 한데, 문학상은 과학상과는 달리 대중적으로 더 큰 관심을 받는 상이지. 


   조카의 수상은 우리 국민에게 큰 충격과 감격을 안겨 준 거라네. 외국어로의 번역이 어려운 한글의 특성상 노벨문학상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한국에서 처음으로 수상자가 나왔으니 얼마나 놀랍고 기쁜 일이겠는가? 역사적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그런데, 한편에서는 조카의 수상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얘기가 나오니 정말로 마음이 아팠다네. 왜 온 국민이 기뻐하지 않을까? ‘노벨번역상’이 더 낫겠다는 비아냥 조의 시비, 지구촌 지역 안배 차원이나 격년으로 남성․여성을 번갈아 가면서 수여하는 정치적 방식에 관한 시비, K-문화 세계화에 편승했다는 시비, 국내의 어떤 작가들이나 이웃 나라의 작가들과 비교하는 중량감 시비, 4.3사건과 6.25 전쟁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시비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네. 질투와 시기 때문에 비판한다고 이런 시비와 비판들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네. 


   사실, 나도 20대에는 소설 문학 작가로 살아갈까 하고 고민했던지라 노벨문학상에 관심이 지대했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찾아오셨던 30세 전까지는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들을 사서 탐독했었다네. 그래서 노벨문학상 작품들과 소위 세계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네. 수많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중에 그때만 반짝했다가 잊힌 작가들이 대부분이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노벨상 수상 작품 중에 나를 감동시킨 작품들이 별로 없었다네. 하지만 게오르규, 헤밍웨이, 스타인벡, 레마르크, 시엔키에비치 등의 작품들은 읽은 지 40여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네. 이처럼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이라고 후세 사람들에게 다 사랑받진 않는다네. 


   그리고, 노벨상위원회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 수상에게 평화상을 주기가 석연찮으니까 그의 자서전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근거로 그를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네.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했는데, 이는 작가와 철학자란 자신이 속한 체제나 이념에 얽매이거나 동조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네. 사르트르의 이런 신념은 국내 작가들이 4.3 사건, 6.25 한국전쟁, 5.18 민주화운동 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작품을 써야 하는지를 교훈해주네. 


   내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세계명작소설들은 당시의 어떤 체제나 이념을 비판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어떤 체제나 이념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식으로 풀어갔다네. 


   또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네. ‘베토벤’이 악성(樂聖)이라고 불린다면, ‘톨스토이’는 성인(聖人)으로까지 불린다는 것을 잘 알 것이네. 그는 단순히 소설가만이 아니라 인류의 도덕적 방향을 담아낸 사상가였으며 자신의 소설작품인 ‘부활’ 속의 주인공처럼 살았던 작가였다네. 


   이처럼 노벨문학상은 분명한 수상 기준이 없이 수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네. 따라서 조카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작가로서 정상이요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하고 후세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명작’의 반열에 들어갈 작품을 남기길 기원하네. 


   둘째, 조카의 소설작품 ‘채식주의자’에 대한 외설성 비난과 청소년 유해성 논란에 관한 의견


   소설은 허구(虛構)이지만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글이네. 허구는 상상에서 오지만, 그 상상을 글로 표현할 때는 책임이 뒤따른다네. 그래서 상상을 글로 표현할 때는 절제가 있어야 하네. 숨겨야 할 것은 숨겨야 하네. 


   도둑놈도 자기 자식한테는 도둑질하는 것을 숨긴다네. 자식 딸린 매춘부도 자기 자식한테 몸 파는 장면은 안 보여준다네. 불량 식품을 파는 장사꾼도 자기 자식한테는 그 불량 식품을 먹이지 않는다네. 


   불의하고 못된 사람들도 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있기 때문이네. 그 일말의 양심도 없다면 인간은 영혼이 없는 동물과 다를 바 없네. 육체의 욕구가 이끄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지. 


   피해자인 내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서 할 말 다 한다면 내가 속한 공동체는 깨질 수 있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죽을 때까지 비밀을 품고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해자가 죽은 뒤에 그 비밀을 말하거나 그 후손들의 명예를 생각해서 영원히 비밀에 부칠 경우도 있다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양심이며 기본적인 도덕률이네. 


   따라서 작가는 양심과 기본적인 도덕률을 지키는 범주 안에서 작품을 써야 하네.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하여 도덕적․윤리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네.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포르노 작가가 아닌 이상 작가에게는 그런 기준이 있어야 하네. 작품 구도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스스로만이 아니라 인류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이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상황 윤리로 패륜적인 것이 정당화된다면, 근친상간 행위도, 수간(獸姦) 행위도, 심지어는 인육(人肉)을 먹는 범죄 행위도 얼마든지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미화시킬 수 있네. 그것은 타락의 극치네. 그런 작가는 인류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길 포기한 사람이라고 지탄받을 만하네. 그런 작가는 윤리적 타락의 선봉장이 되는 것이고 그 사회가 소돔․고모라와 같이 불 심판을 받게 되는데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네. 


   사람들의 영혼과 인생을 망가지게 하고 파괴하는 데 도움을 준 작품을 써서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번다면, 그 작가는 3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수단에서 독수리가 들판에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는 광경을 촬영하고 그냥 지나쳤던 사진작가가 퓰리처상을 받은 것과 다를 바 없다네. (그 사진작가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네.) 의과대학 교수가 위급 환자를 수술하려고 해부해놓은 뒤에 제자 학생들에게 환부를 보여주면서 강의하다가 환자를 죽게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네. 


   하나님께서 창세에 우리 인류에게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를 주신 이유는 경건한 자녀를 얻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네.(말라기 2:15)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十誡命)을 주신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영혼(하나님의 형상)을 지키고 가정을 비롯한 사회공동체를 거룩하게 지키기 위함이었네. 성경(레위기 18장 1~30절)은 근친상간(近親相姦) 12가지를 비롯하여 형부와 처형․처제의 상간을 금지하며, 또한 간음(奸淫)과 동성애(同姓愛)와 수간(獸姦)을 엄금하고 있네. 그런 성적 범죄는 악행이며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졌기 때문에(창세기 1:26~27) 동물이나 버러지와 같이 살지 말라는 것이네. 천륜(天倫)과 인륜(人倫)을 지키라는 뜻이네. 


   조카의 작품 “채식주의자”에서 형부․처제의 관계 및 장면 묘사는, 아무리 작품의 구성상 필수 불가결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작품의 극히 일부라 할지라도 충분히 비판받을 만하네. 시대가 다르지만, D.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도 그런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묘사는 하지 않았네. 


   나의 어린 시절에 우리의 어머니들이 미혼 딸한테 결혼한 딸 집에 놀러 가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뜻은 무엇일까? 형부와 처형․처제 관계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륜을 깨뜨릴 위험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네.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무리 피곤해도 장성한 아들들이 안방에서 나간 뒤에 자리에 누우셨다네. 그분들은 동방예의지국 백성다운 윤리 의식을 지니고 계셨다네. 


   소설 “채식주의자”는 혈기 왕성하고 절제력과 분별력이 약한 청소년들에게 읽혀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하네.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기가 두려운 작품으로 여겨지네.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에도 나오는 패륜 관계니까 괜찮을 것이라는 왜곡된 윤리 의식과 성 관념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주고 모방 범죄도 부추길 수 있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성’(性)은 쾌락의 도구이지만 자손 유지를 위한 거룩한 선물이네.(창세기 1:28) 그 선물이 음란하고 난잡한 가학적 변태성욕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청소년들이 인식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네. 조카에게 청소년 자녀가 있다면 그런 내용의 책을 그 자녀에게 읽혀도 좋을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 육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성폭행이나 가스라이팅 성범죄, 청소년들의 성범죄 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조카의 작품은 이 시대의 음란한 풍조에 돛을 달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네. 중고생들의 필독서로 선정되는 것은 삼촌인 나도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네. 굳이 그렇게 작품을 구성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저 안타까울 뿐이네. 


   셋째, 조카의 소설작품 세계에 대한 의견


   조카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대부분 그 종결이 비극으로 끝나네. 작품을 읽는 내내 어둡고 답답하여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네. ‘카프카’의 소설 “변신”도 그 정도는 아니었네. 내가 29살까지 빠져 있었던 그 짙은 어둠과 절망을 다시 접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날 정도였다네. 그런대로 지성이 있고 분별력 있는 독자들은 억지로라도 작품이 주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겠지만 청소년과 같이 분별력이 약한 독자들은 ‘인생이 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작품의 세계에 동화할 위험성이 있네. 더구나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니까 조금의 의문이나 비판도 없이 주인공의 인생을 당연한 것처럼 여길 수도 있네. 조카의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허무와 절망을 심어주고 가끔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심지어 인생은 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끔 만드는 힘이 있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이 출간된 후로 독일을 비롯한 유럽 사회에서 청년들의 자살이 급증했던 것은 대표적인 일이네. 문학은 어디까지나 문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카의 작품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데는 역기능(逆機能)을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네. 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간 본성의 악한 면을 까발려 놓기만 했지 미래지향적인 대안이 없다네. 그렇다고 종교성 강한 작품을 요구하지는 않네. 조카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같은 작가가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네. 이 시대가 아무리 암울하고 악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러시아의 ‘도스토옙스키’는 나폴레옹 전쟁과 농노 반란 등으로 어지럽고 어두운 시대에도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그의 작품들을 통하여 보여주었고, 볼셰비키 혁명으로 피 냄새가 진동했던 러시아의 ‘파스테르나크’도 그랬고, 미국의 대공황이라는 어둡고 힘들었던 시대를 살았던 ‘스타인벡’이 그랬으며, 2차 세계대전에 모국 독일을 떠나 망명하면서 목숨을 부지했던 ‘레마르크’도 그랬다는 것을 잘 알 것이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작가들이 극히 드물다는 게 안타깝네. 


   넷째, 제주도 4.3 사건, 6.25 한국전쟁,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시각 


   제주 4.3 사건과 6.25 한국전쟁은 이념 대립의 비극적인 산물이고, 5.18은 군사독재정권의 재탄생에 반대하다가 확대된 비극적 사건이었네. 그 원인과 결과는 이미 상당히 밝혀졌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거론하지는 않겠네.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 아직도 논란이 그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네. 


   단지,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4.3과 6.25는 ‘하나님이 없다’ 하는 유물론자들과의 대립 과정에서 발생한 민족적 비극이네. 또한, 6.25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진영(그리스도 교회를 인정함) 국가들과 북한을 앞세운 소련과 중국의 공산독재진영(그리스도 교회를 인정하지 않음) 국가들과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네. 


   제주 4.3은 남로당(공산주의자)의 선동과 난동에 휩쓸려 선량한 시민들까지 죽임을 당한 비극적 사건이네. 그러나 당시의 미군정(美軍政)은 대한민국의 헌정 수립을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난동을 묵과할 수 없었을 것이네. 진압 과정에서 남로당으로 몰려 죽은 사람들이 많았네. 정말 가슴 아픈 역사라네. 


   어찌 되었건 우리나라는 6.25 한국전쟁과 갖은 혼란 속에서 넘어지고 비틀거리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 왔네. 이것을 보면서 인류 역사의 뒤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게 된다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힘을 하나님(God)이라고 한다네. 


   그래서 문학 작가가 비극적 현대사를 다룰 때는 극히 조심해야 하네. 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 있고 서로 다른 관점들이 대척을 이루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건을 어느 한쪽의 관점만으로 평하는 듯한 시각을 작품에서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네. 잘못하면, 작가는 본의 아니게 특정 집단과 세력을 지지하는 홍위병 역할을 하게 되네.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상처를 주고 그들에게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든다네. 


   국가비상사태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불가항력의 피해를 받았다고 한다면, 가해자인 경찰이나 군인이 자원해서 가해했겠는가를 생각해 보소. 우리나라같이 두어 사람만 건너면 거의 다 알 만큼 높은 관계 밀도의 사회에서 이성적인 군경이 쉽게 총탄을 발사할 수 있겠는가? 시위 현장의 군경(軍警)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국가 권력을 집행하는 사람일 뿐이네. 그들도 우리의 동족이요 한 가정의 가장이요 아들이었네. 그들이 그 현장에서 죽었다면, 그들도 국가 권력에 의한 피해자라고 볼 수 있네. 일반 시민이건 군경이건 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네. 


   그래서 작가는 어떤 역사적 사건 속에 처한 인물의 모습을 그리되 그 사건의 진실 여부를 밝히듯이 풀어내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네. 특히 국내의 현대 역사를 바라볼 때 작가의 시선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나침반의 바늘처럼 움직여 그 진실 여부에 대한 판단을 독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세계의 명작이라고 하는 소설작품들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풀어가고 있네. 


   예를 들자면, 5.18의 발발 원인은 몇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네. 나는 20대 중반에 그 시대를 살았고, 5.18의 시작이요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전남대 출신(1975학번)이네. 전남대 학생 40명이 5.18 현장에서 죽었다고 하네. 


   나는 대학 졸업(1979년) 후 1년여 동안 병역과 직장생활을 겸하던 중 1980년 5월 17일(토)에 친구들을 만나러 광주에 갔었네. 다음 날인 5월 18일(일)에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충남 태안의 근무지로 돌아가려고 군산행 16시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네. 한두 시간만 늦었어도 광주에 갇혀 5.18을 겪어야 했고, 나의 기질상 그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네. (멀리서 5.18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오랜 세월 자책감에 빠져 있었네.) 


   만약, 당시에 ‘김대중 선생’이 한국에 없었다면 5.18이 일어났을까? 아마 5.18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네. 계엄령 선포 후 김대중 선생이 구금되었는데도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는 학생들의 데모가 수그러들고 멈췄네. 그러나 광주는 데모가 더욱 심해졌네. 


   5.18은 민주화를 염원한 시민의식에서 기인했다고 하지만 그 원인을 한두 가지로 말하기는 쉽지 않네. 고대 일본에 찬란한 문화를 전수했던 백제왕국(678년간 존속)의 멸망부터 후백제(44년간 존속)의 멸망, 조선 선조 때의 기축옥사(호남의 지식인 1000여 명이 죽음), 호남인들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조선을 수호했다가 정유재란 때 일본의 보복을 당한 일(호남인 12만 학살설), 구한말에 호남에서 시작된 동학 전쟁과 일본의 호남 의병 수천 명 척결, 일본 강점기에 조선 분열 정책에 의한 호남 분리와 수탈, 1929년의 광주학생독립운동 후 일본의 노골적인 호남 탄압, 박정희 독재정권의 17년 집권 기간에 호남 홀대 등으로 인한 피해의식이 호남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배어 있었다네. 호남의 샛별 같았던 김대중 선생의 구금이 광주 사람들의 그런 피해의식 속에 배어 있는 분노에 불을 질렀다고도 할 수 있네. 


   나는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23살까지 자라났다네. 지금도 내 고향 전라도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부심은 누구 못지않다고 생각한다네. 고향을 떠난 지 45년이 지났는데도 프로야구 해태․기아타이거즈를 응원한다네. 주위에서 누군가 전라도를 안 좋게 말하면 핀잔을 주기도 했다네. 


   대학 시절에 학생운동의 아지트라고 할 수 있는 ‘아카데미’(흥사단 대학생 단체)에 두어 번 초청받았네. 하지만, 절대로 데모하지 말라고 통사정하시던 노모가 생각나서 그 단체에 발길을 끊었고 군사독재정권 반대 데모에 참여하지 않았네. 


   1980년대 초엔가, 학생운동을 했다는 고향 친구들이 국방연구기관에 근무하고 있던 나한테 ‘나라의 충견’이라고 비아냥거렸는데, 그 친구들은 나중에 입시학원 강사로 취직해서 적잖은 돈을 벌었다네. 사회주의 이념에 물들어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은근히 북한 공산체제를 옹호하며 우리나라의 정체(政體)를 부인하던 그들이 오히려 자유민주 체제의 혜택을 많이 받은 것이네. 나는 45년 동안 국방연구기관에서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기면서 조국의 국방과 경제를 키우는데 내 인생을 통째로 바쳤네. 안전사고로 파열된 왼쪽 고막이 지금도 온전하지 않다네. 


   조카는 마치 이 대한민국이 정의롭지 못하여 살 만한 나라가 아닌 것처럼 여기도록 만드는 작품을 몇 편 쓴 것으로 알고 있네. 여러 개의 국내 문학상도 탔네. 문학상 상금이 적잖은 금액일 것이네. 그런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오늘날 국내의 예술인들과 문학인들이 괜찮은 대접을 받는 것, 단편소설 한편의 원고료로 한 달 정도의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이만큼 잘 살게 된 덕분이라고 생각하네. 


   조카가 30대에 한국 PEN협회에 선발되어 얼마 동안 외국을 순방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네. 북한과 같은 공산독재 국가의 작가들은 꿈도 못 꾸는 일이네. 그 여행비용이 다 국민의 혈세에서 지급된 것이네. 우리나라의 산업일꾼들이 땀 흘려 벌어들인 외화라네.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모국 소련에서 추방까지 당했네. 중국의 몇몇 작가들은 인근 나라로 망명하여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네. 공산주의 국가의 작가들처럼 추방당하거나 망명하지 않고 모국에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에 조카는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네. 아니, 종북 인사라고 비판받는 다른 작가들이나 정치인들도 그런 감사의 마음이 있는지 이 자리에서 묻고 싶네. 


   우리가 이만큼 자유롭고 넉넉하게 살게 된 것은 우리의 모국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지 않고 1948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지고 발전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6.25 한국전쟁에서 피 흘려 죽은 순국․호국 영령들의 희생의 덕이요, 우리 조국의 자유를 지키려고 피 흘려 죽은 자유 진영 국가 장병들의 희생의 덕이네. 


   지금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를 도우려고 1만 5천 명의 군대를 파견한 것을 보소. 그리스도 교회를 잔해하고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북한의 공산체제를 보소. 현재 북한의 국민 복지 수준은 세계 172개국 중에 140위 권이라고 하네. 우리나라는 20위 권 안에 들어와 있다네. 


   오죽하면 그 많은 북한 주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해서 우리나라로 오겠는가? 8.15 광복 후 79년을 지나면서 한국의 자유민주 체제가 북한의 공산독재 체제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되었네. 이제 우리는 4.3과 6.25의 역사적 의미를 냉철하게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네. 


   다섯째, 5.18 민주화운동 관련 문학작품을 어떤 시각으로 쓰면 좋을까?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뜻이네. 그 이름처럼 ‘광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호남은 대체로 정의감과 의리와 단결력이 강한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네. 내가 태어나서 23살까지 살아왔고 24살부터 지금(68세)까지 외지에서 살아온 바로는 대체로 그렇게 느껴진다네. 한국 사회에서 3대 단체로 ‘대한민국 해병대 전우회’, ‘고려대학교 교우회’와 ‘호남향우회’를 꼽는다네. 그래선지 호남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졸업하고 해병대까지 나왔다면 국내에서 연결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우스갯말도 있다네. 


   내 고향 호남은, 조선 중기에 무능하기 짝없는 선조왕 때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과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의 공화주의를 표방하며 신분의 차이가 없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고향 사람들에게 가르치다가 모반죄로 몰린 정여립 등 1000여 명이 기축옥사(己丑獄事)로 죽었던 정의로운 지역이네. 그 사건으로 반역의 땅이라는 오욕을 뒤집어썼으면서도 기축옥사 1년 뒤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남해안 바다와 전라도를 사수했고 조선에서 제일 많은 의병이 일어나 나라를 지켰던 정의로운 지역이네. 그 의병들이 경상도(진주)에까지 원정 가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던 정의로운 지역이라네. 구한말에 탐관오리의 학정과 외세의 침략에 항거한 동학농민전쟁을 일으켰으며 잔존한 동학도들이 반일 의병 투쟁을 이어갔던 정의로운 지역이네. 일제강점기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던 정의로운 지역이라네. 


   ‘의인은 고난이 많다’는 성경 말씀과 같이 정의감이 높은 호남지역은 역사적으로 고난을 많이 겪었네. 6.25 한국전쟁 때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그리스도 교회’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순교를 당했다네. 


   성경에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과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말씀과 ‘하나님께서 문을 열면 능히 닫을 자가 없다’는 말씀이 있네. 이 세상의 역사와 만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라네. 이처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도 하나님의 허락하심 속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네. 어떻게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느냐면서 수긍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네.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의 모델로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죄악을 씻어내기 위하여, 자기 백성을 징계하기 위하여 이방 나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사용하셨네. 70년의 바벨론 포로 기간이 끝나자, 하나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통하여 이스라엘 포로들을 해방하셨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의 왕들을 세우시고 폐하시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네.(다니엘 2:21) 


   성경의 역사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관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알 수 있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우리나라에 이방 국가와 지도자들을 세워 사용하셨다고 생각하네. 


   야만적이지만 선진화된 일본의 강점기에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500년 왕조 국가에서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바꾸는 기초 작업을 행하시고 현대화의 기반을 놓게 하셨다고 생각하네. 이승만을 지도자로 세워 우리나라를 자유민주공화체제로 세우고 공산주의(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상) 세력으로부터 지키셨네. 박정희를 지도자로 세워 부강한 나라의 기초를 놓으셨네. 전두환과 노태우를 지도자로 세워 박정희가 다져놓은 기초 위에 우리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발돋움하게 만드셨네. 김영삼과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도자로 세워 경제의 터전 위에 자유와 인권과 복지라는 나무를 심어 우리나라를 명실공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드셨네. 하나님은 그 후로 세워진 지도자들을 통하여 나름대로 이 나라의 부족한 데를 채우고 부서진 데를 보수해 오셨다고 생각한다네.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아무리 독재정치에 항거해도 그 독재자나 지도자들이 자기의 역할을 다 할 때까지는 그 자리가 굳세게 지켜지는 것을 보았네. 때가 되면, 즉 지도자들의 역할이 다 끝나면 그들이 퇴임하거나 폐위되는 것을 보았네.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야만 국가 바벨론의 포로로 보내는 징계를 하셨지만, 자기 백성에 대한 뜨거운 긍휼지심(矜恤之心)으로 선지자 이사야에게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명령하셨네. 앞으로 4.3이나 5.18을 다루는 작품을 쓰는 문학 작가들이 이런 역사관과 시각으로 그 사건들을 다룬다면 어떨까? 


   5.18은 불의하고 야만적인 정권 탈취자에 대한 의로운 항거였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실패했네.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네. 그 후로 5.18은 명예 회복이 되고 그 피해는 보상되었네. 


   이제 문학 작가들도 이념이나 지역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세몰이에 영합하는 듯한 작품을 쓰지 말고 공평한 자세로 써야 할 것으로 생각하네. 또한,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 파는 듯한 시각으로만 쓰지 말고 이제는 양쪽의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쓰면 좋겠네. 


   어둠을 말하되 빛을 말하고, 절망을 말하되 희망을 말하고, 다툼과 갈등을 말하되 화해를 말하며, 고통을 말하되 회복과 위로를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한테 자기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셨듯이, 양쪽의 피해자들과 상처받은 광주시민 모두를 위로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이고 참다운 인류애를 구현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 


   게다가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은 게 있네. 5.18이 정당화(正當化)되고 국가 차원의 역사적인 기념비가 되려면, 이제 광주광역시도 유공자 명단을 온전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명단 관리를 국가 보훈부로 넘겨야 할 것이네. 유공자 보상금이 국민의 혈세인 국가 예산으로 지급되기 때문이네. 유공자 명단 관리를 국가보훈부로 넘기지 않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반국가적인 행위로 볼 수도 있네. 그것은 5.18 정신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이네. 따라서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5.18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이네. 광주는 정의로운 지역답게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네. 


   또한, 과거의 상처에 붙들려 있어서는 안 되네. 대를 이어가면서 후손들에게 분노를 물려주어서는 안 되네. 이제 5.18의 진상이 충분히 규명되었고 피해를 보상받았다면 과거를 용서하고 빛고을답게 밝게 살아야 할 것이네. 이제부터는 국내 작가들이 5.18을 그런 방향으로 그려야 하지 않을까? 


   광주시민을 비롯한 호남인들은 공의와 불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동성애(同姓愛)를 합법화하려는 세력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려는 불의한 세력이네. 광주시민과 호남인들은 영적 분별력을 갖춰서 그런 불의한 세력을 비판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 실현에 협조해야 할 것이네. 그래야 우리의 후손들이 건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네. 


   여섯째, 조카가 세상에 밝음과 소망을 주는 작가가 되려면


   조카는 50세를 넘었네. 예부터 50세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라고 하네. 하늘의 명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 인간과 세상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아는 것이 더 우선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조카가 세상에 빛과 소망을 주는 작가가 되려면 먼저 우리 인간의 근원을 알아야 할 것이네. 성경 이외에 세상의 어떤 책도 우리 인간과 세상의 근원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는다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간과 세상이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네. 지금도 나를 비롯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믿고 있다네.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되 자기 형상을 닮게 만드셨다네. 하나님이 자기를 닮은 인간 아담과 하와를 얼마나 사랑하셨겠는가? 우리는 자식 사랑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표현하네. 우리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더 한 것이네. 다윗이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하나님)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하고 노래할 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네.(시편 10:10)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천사장 루시퍼(마귀)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질시하여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하였다네. 그것이 최초 인간의 타락이었는데, 그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된 것이네. 그 파괴된 형상은 후손에게 유전되고 있다네. 


   그 후로 지금까지 ‘하나님’과 ‘공중 권세 잡은 자(마귀)의 영’은 인간을 가운데 두고 서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네. 마귀는 자기를 따르는 타락한 천사(귀신)들까지 동원하여 인간의 영혼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광분하고 있다네. 


   마침내 2000년 전에 하나님은 마귀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시려고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네. 이 세상을 불로 멸망하기 전까지 우리 인류를 구하려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네.(요한복음 3:16~17) 그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 


   여기서 도둑은 마귀를 가리키네. 마귀는 우리 인간의 영혼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일을 행하네. 그 일은 우리 인간이 육체의 일을 행하게 만들어 죄악 속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 어둠의 일이네.(갈라디아서 5:19~21) 즉, 십계명을 어기는 일들을 행하게 만드네. 


   우리 인간은 빛이고 진리이신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어둠 속에 빠져 있다네. 아무리 세상 종교와 학문에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그는 몽학 선생에 불과하네. 우리는 태초에 범죄했던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기 때문이라네. 다윗도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고 탄식했네.(시편 51:5) 


   결국에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 인류의 죄를 용서하셨다네. 그리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부활)으로써 우리에게 영생(永生)이 있음을 보여주셨다네. 부활 후 40일 만에 예수님이 하늘(천국)로 승천하셨고, 그 10일 후에 우리에게 예수님 대신에 성령(聖靈)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살도록 만드셨다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나는 조카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가련한 인물들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일을 하고 있네. 조카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모르기 때문에 조카는 영적인 어둠 속에 빠져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데, 나는 조카같이 하나님의 빛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빛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네. 그들의 상처 난 심령을 치유하여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네. 그들의 부부생활과 가정을 회복시켜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주고 있네. 


   사람들 대부분은 원치 않게 태중에서부터 그 심령이 상처를 받고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외부 환경에 의해 상처를 받는다네. 107년 전에 어떤 어머니는 이미 5자녀를 두고 있는 데다 궁핍한 가계로 인해 임신한 막내를 낙태하려고 양잿물도 마시고 몇 번이나 언덕에서 뛰어내렸지만 결국 그 막내를 출산했다네. 그 막내가 바로 박정희 전대통령이라네. 그분은 태중에서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면서 깊은 상처를 입었겠는가? 


   1984년에 제작된 낙태 반대 교육 영화 “소리 없는 비명”(https://youtu.be/YXi7NmLw-nU)을 보길 권하네. 태중의 아이는 웃고 울기도 하고 음악․노래 소리와 부모의 말을 듣고 반응한다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라네. 


   나는 잉태 1년여 전에 교통사고로 다리에 큰 장애를 입으신 아버지와 손위 누이의 출산 후유증으로 얼굴이 심하게 뒤틀려진(와사증) 어머니 사이에서 쉰둥이로 태어났네. 두 분의 절망감과 우울증과 열등감과 대인기피증을 물려받았는지 그 증상들이 유독 사춘기와 청년 시절에 극심한 허무감으로 나타났다네. 그 시절에 일어난 집안의 불행한 일들로 인하여 그 허무감은 극도에 달했다네. 자살도 생각할 정도였다네. 


   그런데 30세에 나의 상처받은 심령이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았다네. 하나님의 빛을 받은 것이네. 그 후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 전도자로 살아왔다네. 


   나의 영혼이 다시 태어남(거듭남)을 경험한 후부터, 나는 영혼이 마귀에 의하여 망가지고 깨지고 상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도하고 회복하는 일에 전념해왔다네. 하나님은 정신의학을 비롯한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영혼들을 치료․회복시키는데 나를 사용하셨다네. 


   성경은 일곱 귀신 들린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 귀신이 쫓겨나가고 회복되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네.(누가복음 8:2) 군대 귀신이 들려 미친 남자가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은 사건도 기록하고 있네.(마가복음 5:2~4). 성경은 마귀의 졸개인 귀신들이 심령이 약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그 영혼과 인생을 파괴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네.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병도 귀신들의 장난이라고도 할 수 있네. 


   조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세상의 권력이나 인습 등의 억압으로 그 심령이 파괴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영혼들이 마귀한테 도둑질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런 질병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능력과 말씀으로 치유된다고 믿는다네. 우리 주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네. 그런 사람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지면 그들의 영혼은 살아나고 회복된다네.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정신질환자나 알코올․마약 중독자나 동성애자가 치유된 일들이 수두룩하고, 나의 교회도 그런 경험이 있다네. 조카가 부디 하나님의 빛을 받기 바라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축원하네. 


   영화 “벤허”를 알 것이네. 그 영화의 원작인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루이스 월리스’라는 대중 소설가의 장편소설이네. 지독한 불신자였던 그는 기독교를 혐오하여 성경 속의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관련 근거들을 찾다가 결국 회심하고 그 소설을 썼다네. 그 근거 자료들을 토대로 쓴 그 소설은 물론 영화가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넘치는 감동과 소망을 안겨주었다네. 그는 노벨문학상은 못 받았지만, 그 한편의 작품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밝은 빛을 비추어주고 있네. 나는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그 영화를 서너 번 보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하네. 


   10여 년 전에 “기적의 사과”라는 책을 읽어보았네.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사과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기무라 아키노리’의 체험담을 쓴 전기이네. NHK에서 방송했던 “기적의 사과”를 시청했던 어떤 아가씨는 자살을 계획하다가 포기하고 감사의 글을 기무라씨에게 보내왔고, 아오모리현의 조폭 야쿠자 두목은 자기 부하들을 보내서 기무라씨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네. 우리 부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큰 감명을 받았는지 모르네. 나는 그 책을 한 권 더 사서 나의 자녀들에게 읽혔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선물했다네. 


   나의 사랑하는 조카가 앞으로는 그 같이 이 세상에 빛과 소망을 안겨주는 작가가 되길 바라네. 내가 조카의 책 수십 권을 사서 주변 이웃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의 저자가 바로 내 조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일들이 진저리나게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이 세상에 어둠과 절망을 더 얹어주는 작품이 아니라 세상을 밝게 비춰 주고 세상 사람들에게 소망을 안겨주는 작품을 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먼저 조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빛을 받아 그 빛을 세상에 비추기를 바랄 뿐이네. 이 지구촌의 영원한 베스트셀러요 인류를 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핏빛 사랑의 편지인 성경책을 반드시 반드시 읽어보길 바라네. 


   나의 사랑하는 조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과 같이 뜨거운 사랑의 작가요 창조주 하나님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작가요 사람들한테서도 사랑받는 작가로 다시 태어나길 축원하네. 


   사랑하는 조카에게 다음의 말씀(전도서 12장)을 전하고 싶네.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맺는말


   사랑하는 조카, 


   내가 지금까지 조카에게 한 말들이 조카의 마음을 아프게 찌를 것을 생각하니 나도 이 편지를 쓰는 내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몇 번을 울었다네. 과거에 조카가 매스컴에서 “나도 빛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네. 그래서 더더욱 이번에 조카에게 ‘참 빛’이 무엇인가를 얘기해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네. 


   지금까지 조카는 그 ‘참 빛’을 모르고 살아왔겠지만, 이제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요한복음 1:9~12)를 만나 온 세상에 사랑과 평화와 위로를 안겨주는 위대한 작가가 되길 기도하네. 30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쓰느라 너무 수고했으니, 이제는 쉬엄쉬엄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누리면서 살아가길 축원하네. 


2024년 11월 7일

한강 작가를 사랑하는 삼촌 한충원 목사

대전 안골에서



https://youtu.be/I9bHn2efN-U?si=Psc8Sw6G1BilcB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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