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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서 Mar 26. 2024

크림수프 때문에..

글감 : 위기

아침에 글감을 받았을 때 오후에 천천히 써야지 했다. 머릿속에 스치는 몇몇 위기를 고르기 어려웠다. 내일 강의 준비도 마무리 하고, 도서관 책도 반납하고 미루다가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오늘의 위기가 생겼다. 그냥 아침에 간단히 쓸걸 그랬나?


학교 끝나고 집에 온 아들이 간식으로 크림수프와 식빵을 찾았다. 며칠 전 사다 두고 먹을래? 했을 때 시큰둥하더니 오늘은 집에서 수프를 먹으려고 했다고 중얼거린다. 급식도 먹지 않았다고.. 나는 소비기한 임박 식빵과 수프를 어제 오전에 먹었다. 비쩍 마른 식빵을 수프에 찍어서..

"엄마가 마트 다녀올게. 수프 사 오지." 아들은 됐다면서도 "내 수프, 내 수프." 수프타령을 하면서 중얼거린다. 처음에는 어리광으로 받았다.  내가 내 집에서 즉석수프 하나 먹은 게 잘못인가? 화가 난다. 사실 그 수프도 내가 먹으려고 사 온 거였다. 그런데 타이밍을 놓쳐서 싱크대에 있었다. 관심도 없더니 오늘 찾는다.


아들은 라면에 유부초밥을 달라고 한다. 라면이 신경 쓰여 냉동실에 1팩 사다 둔 갈비탕을 이야기했더니, 갈비만 건져서 달란다. 그러면 어제 만든 갈비찜을 먹으라고 했다. "라면, 유부초밥, 갈비 다 먹을 거니?" "아니요. 안 먹을래요." 내 목소리가 이상했는지, 사춘기라 그런지 삐졌다. 우리 둘 다 서로에게 삐진 게 맞는 것 같다. "엄마는 귀찮아하고 내 수프~" 뒷소리는 듣기도 싫다.  방에 들어간 아이를 따라 들어갔다. "왜 징얼거리냐고? 엄마도 화난다고, 수프 사러 간다고 할 때 가라고 하지." "안 먹어요. 배 안 고파졌어요." 문을 닫고 나왔다. 배 고프면 먹겠지. 옆에서 듣던 남편이 방에 들어가서 몇 마디를 한다. 신경 쓰지 말자. 남편은 애들이 배고픈 걸 모른다며 한마디 한다.


아이는 한 번씩 급식을 거르고 집에 와서 밥을 먹거나, 라면, 간식으로 못 먹은 점심을 채웠다. 감기 기운이 있기에 다시 노크를 하고 내가 접고 들어갔다. 몸이 안 좋아서인지 잠을 자고 있다가 인기척에 깬다. 감기약 먹어야 하니까 간단하게 뭐 좀 먹을래? 감기가 거의 나아서 인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배 안 고파요, 좀 잘래요.


11시가 넘은 시간까지 아직도 먹지도 않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중간에 다시 저녁을 먹자 해도 잔다고 한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식탁에 있던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오늘밤은 긴 밤이 될 것 같다. 나는 거실 책상에서 글을 쓰고 아이는 고픈 배를 참느라~ 그냥 먹으라고 할 때 먹지. 짠한 마음이 왜 없겠는가? 내가 먹어야지 하던 간식을 다른 사람이 먹으면 섭섭한 그 마음도 알지만 오늘은 참 얄밉다. 저 방에서는 엄마가 얼른 거실 불 끄고 안방에 들어갔으면 하고 있으려나??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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