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봄날
봄 하면 벚꽃이다. 언제부턴가 벚꽃을 찾아서 드라이브를 가고 벚꽃이 피길 기다린다. 남쪽부터 피어서 올라오는 꽃을 자꾸만 기다린다. 보챈다고 서둘러서 먼저 피지도 않는데 말이다. 어릴 때는 벚꽃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우연히 보이는 꽃을 보고 ‘이제 봄이네’ 하고 지나쳤지만, 이제는 사진에 담고 눈에 담는다. 사진을 SNS에 올리고 지인들의 단톡에도 올리고 혼자 꽃놀이를 즐긴다. 이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꽃이 좋아지고 있다.
남편은 10년이 넘게 화물을 하면서도 일을 같이 가자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꽃이 피거나 단풍이 이쁠 때, 하늘이 맑은 날 사진을 보내면서 이 길에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하면서도 말이다. 집에서 나가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일이라 쉽게 동행을 할 수 없다. 아이들이 어리기에 내가 따라나서면 무조건 밤에는 집으로 와야 하는데 일이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지 않으니까. 매일 혼자 묵묵히 다니는 건 배려고 사랑이다.
작년 봄 남편은 진천에서 김해를 매일 왕복으로 다녔다. 나가는 곳과 돌아오는 곳이 지정된 코스이기도 하고 며칠을 혼자 보다가 벚꽃 만개 시기에 맞춰서 처음 같이 가자는 말을 했었다. 지나는 길에 벚꽃이 많이 피었다고. 사진으로 보내기보다 직접 보여주고 싶다면서 10년 만에 함께 운행했다. 운행이라지만 나는 조수석에 있다가 뒷자리에 누웠다가 하루를 타고 민망하게도 몸살이 낫다.
벚꽃이 톨게이트 외곽에서 공단까지 이어졌다. 이쁘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꽃이 이쁘기도 했고 남편이 혼자 있는 그 시간이 마음에 들어와 뭉클했다. 남편의 일은 금방 끝났다. 김해 공장에 도착해 물건을 내려놓으면 끝이다. 이제부턴 자유다, 혼자라면 빠르게 집으로 올라오겠지만 이제 우리 벚꽃 드라이브가 시작이다. 점심은 고추장 불고기와 오징어볶음 중에 고르라 했다. 차가 커서 선택지가 적다며 민망해한다.
우리는 오랜만에 오징어볶음을 먹기로 했다. 다음에는 불고기를 먹자며 웃는다. 혼자 다니며 가보지 못했던 식당에서 오징어볶음 2인분을 주문했다.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국도로 대구 외곽의 커피숍을 찾아 둘이 차를 마시고 길에 핀 꽃들을 본다. 계절이 바뀌고 오징어볶음에서 고추장불고기로 메뉴는 바뀌었지만 같은 코스를 몇 번 더 따라다녔다. 내심 올해도 트럭을 타고 벚꽃길을 달릴까 생각했는데 영원한 것은 없나 보다. 1년간 그가 매일 다니던 그 코스가 없어졌다. 올해도 그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경쟁업체에 일이 넘어갔다. 가까운 지역업체에서 더 저렴하게 입찰했다고 한다.
며칠 전 집 앞 공원 벚꽃길을 같이 걸었다.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려는 나를 보고 “너 나랑 헤어지고 싶구나” 농담을 던진다.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뤄진단다. 그날은 꽃잎을 하나도 못 잡았다.
며칠 뒤 아들이랑 아파트를 걷는데 바람이 벚꽃비를 만들었다. 손을 뻗었더니 내 손에 작고 이쁜 꽃잎이 잡혔다.
처음 벚꽃길을 같이 걸은 남자가 남편이고 내년에도 다음 해에도 손을 꼭 잡고 계속 같이 걷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