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세스 복습 :
고객이 어떠한 마케팅 혹은 전화, 소개 등으로 IT 솔루션 회사들을 찾아오게 된다면, 그때부터 세일즈 프로세스의 화려한 오케스트라가 시작된다. 영업사원은 지휘봉을 들고 지휘를 하게 되지만, 지휘봉만으로는 아무런 소리를 낼 수가 없듯, 세일즈 활동에도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세일즈 프로세스를 좀 활용하고자 하는데, 사실 이미 여러 회사들이 자신들만의 세일즈 활동 혹은 프로세스를 정의하고 있다. 경험상 4가지 정도 스텝은 거의 유사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구매 고민 중
2. 대안 검토 중
3. 구매 결정
4. 최종 구매
각 과정에서 협력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먼저 "1. 구매 고민 중"의 상태에서는 고객이 자신들의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 혹은 경영과제를 수립하는 과정 등을 포괄하기 때문에 보통 고객에게 다양한 정보를 주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때 우리가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보통 "Solution Architect" 혹은 다양한 엔지니어 관련 이름으로 불리는 기술 전문가들이다. 이분들은 세일즈와 엔지니어의 중간자적인 역할을 한다. 세일즈는 전체적인 프로세스에서 고민을 하고, 고객의 얼굴이 되어준다면 솔루션 아키텍트들은 고객이 우리 제품을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만을 고민하는 전문가들이다. 일반적으로 제품에 대해 기술적으로 잘 알고 있으며, 영업사원들은 이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구매 전 고객의 궁금증이나 기술적인 한계점을 조언해 준다. '기술 영업' 등의 이름으로 IT 영역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업 사무소에 존재하는 직종이다. 처음 세일즈 조직에 가면 이런 솔루션 아키텍트 분들과 협업할 일이 다소 생긴다. 사실 나의 업무와 밀접하기 때문에 상당한 친분을 요한다(?).
"2. 대안 검토 중"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관여한다. 고객은 우리 제품을 더 잘 공급해 줄 사람들을 찾기 위해 경쟁 입찰을 하거나, 다양한 다른 대안은 없는지 물색한다. 이때는 고객에게 우리 제품이 경쟁사보다 뛰어난 점을 어필하고, 고객이 더 구매하기 좋은 구조로 만드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챙기게 된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영업사원들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최근 세일즈 조직은 매트릭스형 조직이 일반적이 되었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내가 이 고객에게 물건을 팔 때 관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생겨난다. 예를 들면 자동차 영업소에 앉아있는 영업사원이 있고, 다른 조직에 SUV만을 팔아야 하는 사람, 세단만을 팔아야 하는 사람이 따로따로 존재한다고 상상해 보라. 내가 SUV에 관심이 있다면 영업사원이 SUV를 훨씬 잘 아는 다른 영업사원을 소개해줄 수도 있고 세단도 당신의 니즈를 맞출 수 있음을 어필하는 영업사원이 나타날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피곤할 수 있지만 이런 매트릭스형 조직은 회사의 포트폴리오가 복잡해질 때 빛을 발한다. 한 명의 영업사원이 다양한 제품을 신경 쓰기 어려울 때 이를 제품별로 더 쪼개서 더 많이 팔기 위함이다. "Brand Sales", "Specialist Sales"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고객을 중심으로 배치된 영업사원보다 특정 제품에 더 많은 고민을 하고, 특정 제품에 집중한 마케팅 혹은 프로모션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분들과 함께 다양한 아이디어를 뽑아보는 것도 일종의 영업사원의 전략이다.
그리고 또 IT 영업사원들이 만나는 아주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사실 '파트너'들이다. 파트너는 기본적으로 IT솔루션을 고객이 잘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말 그대로 '동업자'들인데, 이 파트너에 대해서는 상당히 할 말이 많기 때문에 후술 한다. 사내에는 이러한 파트너들을 내부에서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Channel Sales", "Partner Sales" 등의 직무로 표현된다. 이 분들은 영업사원들이 파트너를 만나면서 겪는 일에 대해서 처리를 해준다.
고객이 "3. 구매 결정" 단계에 왔고, 너무나 고맙게도 우리 제품이 아주 유력한 후보에 올라있다면 이제 고객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요청을 해올 것이다. 제품의 효용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제 제품의 리스크에 대해서 탐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제품이 좋은 것은 내가 알겠고, 이제 다른 문제는 없는지 집중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4. 최종 구매" 단계까지 가게 되는데, 이 두 가지 과정에서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구매 가격을 협의하고, 프로젝트 추진 협상 등을 하게 된다. 그렇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하는데 이때 영업사원들은 다양한 중앙지원팀, "Operation"들을 만난다. 우리 계약서는 문제가 없을지, 납품에 문제는 없을지 등을 회계팀, 법무팀 등등과 논의하게 되고 승인이 필요할 경우 흔히 나의 매니저나 특정 Operation의 매니저들, 즉 "Approver"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사실 영업사원은 고객을 대면해서 구매하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목적을 위해 움직일 때 이것이 고객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Brand Sales는 자신이 팔아야 하는 제품이 있고, Partner Sales는 자신이 관리하는 파트너가 장사를 잘해야 한다. Operation은 우리가 져야 하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하며, Approver 들은 적절한 수익성과 문제를 사전 식별하고자 한다. 이를 결국 모두 캐리 하며(...) 가야 하는 것이 영업사원의 숙명인 것이다.
외국계 IT 솔루션 회사들의 숙명적인 동업자들을 우리는 '파트너'라고 부른다. 말이 거창한데 어떻게 보면 '판매채널'과 똑같은 말이다. 당신이 만약 라면회사의 사장이라고 생각해 보자. 당신의 라면이 팔리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당연히 당신의 라면을 팔 수 있는 채널을 찾아야 한다. 당신이 영업사원을 직접 고용해서 라면을 한 명 한 명 방문 판매를 할 심산이 아니라면 말이다. IT 솔루션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IT 솔루션 회사는 물론 영업사원을 두고 있지만, 우리는 '외국계' 회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국계 IT솔루션 회사들은 자신의 제품을 현명하게 고객에게 납품해 줄 '채널'들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국 법인에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무팀도 없고, 가끔은 회계나 다른 부서도 없을 수 있다. 파트너 들은 이러한 벤더사(IT솔루션 회사)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IT솔루션 회사들의 파트너들은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가장 주요한 업무 중 하나는 계약서 작성이다. 일반적으로 외국계 기업들은 자신들의 표준계약서를 가지고 있다. 물론 모두 영문이다. 이러한 영문 계약서를 고객에게 들이밀면 시간이 꽤나 많이 걸리게 된다. 고객사는 제품을 받고 90일 내에 돈을 지급하는데, IT솔루션 회사들의 계약서는 대체로 30일이고, 외국 회사들의 표준 계약서에는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할 법정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법정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 사정에 맞지 않은 계약서를 대신 작성해 주는 것도 파트너의 역할이다. 파트너들은 외국계 IT 기업의 계약서에 맞게 고객 대신 돈을 미리 지불하기도 하고, 법적분쟁을 중재해주기도 한다.
또한 파트너들은 영업과 제품납기에 도움을 준다. 이 부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외국계 회사는 자신들의 한국 법인 내에 충분한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제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게 된다. 이때 파트너들이 나타나 그 과정을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케아를 떠올려보라. 이케아에서 가구를 구매하면 설치를 직접 해야 한다. 이케아에서 장롱 한번 사보셨는지?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품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런 고객들을 위해 이케아는 설치 서비스를 지원해 준다. 설치 서비스를 신청하고, 돈을 지불하면 당신의 집으로 몇 명의 전문가가 찾아온다. 그들은 이케아 직원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대체로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 지역의 가구 조립 전문가와 협약을 맺어놓은 것이다. 당신이 산 장롱의 수많은 조각은 당신의 집으로 배달되고, 당신의 집에는 조립 파트너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파트너가 당신의 장롱을 조립해 준다. IT 솔루션을 납품하는 과정도 거의 이와 같다.
이런 역할을 하는 큰 회사는 어디가 있을까?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재벌기업들의 SI가 이런 역할을 많이 한다. 삼성 SDS, LG CNS, SK C&C 등... 이런 회사들은 자사의 솔루션도 있고, 다양한 그룹사의 업무를 맡기도 하지만 그룹사에 필요한 수많은 솔루션들을 외국계 기업과 계약하여 납품받아 공급하기도 한다.
우리가 왜 이렇게 파트너사 이야기를 많이 하냐면, (위에 설명한 다양한 한계점을 기반으로) 많은 외국계 기업이 자체 영업보다는 파트너 영업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Indirect Sales라고 부른다.) 물론 이런 계약업무나, 설치업무를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규모의 큰 고객들은 이런 파트너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치 장롱 조립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조립비를 주지 않고 이케아에게 직접 부품을 받아 스스로 조립하는 것처럼 말이다.) 파트너사들은 보통 한 가지 제품만을 다루기보다 여러 IT솔루션을 취급하며, 여러 고객 풀을 가지고 있다. 파트너사들은 직접 영업을 통해 IT솔루션을 판매하기도 하고, 각 벤더사들과 협력하여 고객이 제품을 인도받는 과정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업사원은 나의 고객에게 더 제품을 잘 인도해 줄 파트너를 찾고, 때로는 고객의 어려운 요청을 파트너를 통해 해결하며, 파트너사가 가져온 영업기회를 함께 개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실상 딜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함께 지내는 사람들도 어떻게 보면 나는 파트너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벤더사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분들이 그동안의 인맥과 지식으로 파트너사를 창업하는 경우도 있고, 오랫동안 벤더사와 함께 일한 파트너사들은 오히려 사내 직원보다 더욱 벤더를 잘 알고, 고객에게 소개할 수 있다. 그들은 실제로 고객에게 제품을 인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고객을 더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영업 사원은 그들과 함께 일하며 협력하는 마인드로 일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사실 많은 영업사원들이 Post Sales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회사가 나에게 쥐여준 역할은 '돈을 잘 벌어오는 것'이지, '잘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Post Sales 과정은 고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정이고, 진정한 나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ost Sales는 고객이 제품을 받고, 돈을 지불할 때까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사실 고객이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일이고, 그 이후는 파트너사가 알아서 잘 진행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 무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Post Sales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고객이 환불처리를 하는 일까지 발생하는 것을 나는 종종 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은 굉장히 괴롭다!!!!!!!)
이 과정에서 세일즈의 역할은 '적재적소에 적합한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고객의 주요 컨택포인트가 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사실상 고객은 파트너사의 제품인도를 담당할 Project Manager(PM)을 다음 주요 컨택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때의 맹점은 파트너사의 PM은 언제든 문제가 생길 때 벤더사의 탓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서 이케아 예시를 다시 가져와 들어보면 내가 장롱을 받아서 조립하는 분들이 조립을 하고 있는데 문짝이 세게 닫히는 것이다. 내가 물어본다. "이거 원래 이렇게 쾅쾅 닫히는 건가요? 밀면 살살 닫히게 하는 방법은 없나요?" 가끔 이 문제를 잘 모르는 조립담당은 쉽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원래 이케아 제품은 그래요."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의외로 흔하게 발생한다...) 만약 이케아 직원이 옆에 있다면 사실 이 문은 고객님이 이렇게 제품을 변경할 수 있다던지, 혹은 조립하는 분에게 사실 이 부분은 잘못 조립되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이렇게 설치가 끝나면 '아 이케아 거는 너무 투박하네, 스스륵 문이 닫히면 그냥 놓아도 걱정 없을 텐데.'라고 쉽게 생각해 버릴 수 있다. IT 솔루션 인도작업도 비슷하다. 영업사원은 고객이 답답할 때 제품에 대해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창구가 되어야 한다. 정말 이렇게 되는 게 맞는지, 이렇게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사실 회사 안에는 영업사원보다 훨씬 훌륭한 Post Sales 분들이 많이 계신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를 도와줄 분들, 각 제품의 전문가들, 우리 회사의 제품을 직접 인도할 수 있는 컨설턴트들... 그렇다면 영업사원은 고객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런 훌륭한 분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잘 질문하고 그분들의 리소스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사 일을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선배 중 한 분은 주기적으로 기술지원해 주시는 엔지니어들, 컨설턴트분들과 저녁식사를 가지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고칠 점을 고치고는 했다. 그렇게 쌓은 친분은 내가 제품을 판매하고, 고객의 문제를 들고 왔을 때 큰 힘이 된다. 그분들도 그런 영업사원을 어떻게든 더 도와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팀이 된다.
더 큰 조직에는 실질적인 Value Chain 상에 있는 기술지원(Customer Support, Technical Support)이나 고객인도(Consulting, Customer Service) 업무 외에도 다양한 Post Sales 직군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Customer Success Manager(CSM)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직군인데, 이분들은 영업이 떠나간(?) 자리에 파고들어 고객에게 지속적인 인사이트를 제공하여 추가적인 구매기회를 창출하거나, 특정한 제품에 기술지원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때로는 Technical Account Manager(TAM) 같은 서비스도 존재하는데, 이는 특정 회사의 Post Sales를 전담하는 인력을 배치하는 개념이다. TAM은 고객의 상황과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 대신 서비스 요청이나 장애 대응을 해주기도 하고, 고객을 대신하여 IT 솔루션 회사와 협의를 해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IT솔루션 회사들은 유료로 TAM 서비스 비용을 청구하게 되며, 영업사원 입장에서도 나 대신 더욱더 서비스를 잘해줄 분을 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에게 권유하기도 좋다.
또한 당연하게도(?) 영업사원은 계약을 이행하는 업무도 담당한다. 대표적으로 많이 받는 것이 돈이 들어올 때가 됐는데 아직 안 들어왔다거나, 어떤 고객에게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지 확인하거나 하는 일들이다. 이럴 때는 회계팀 등과 여러 가지 업무를 하게 된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영업사원이 사용하는 비용의 최종확인자가 회계팀이라면, 그분들이 요청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전설도 내려온다(...)
다음 편에서는 영업사원이 하는 일에 대해서 한번 더 Wrap-up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