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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당근 Dec 31. 2021

여행은 독립

사람들 대부분은 성인이 되면 집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진학하면서든 직장을 구하면서든 또는 결혼해서든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 '독립'한다. 하지만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의 학교와 직장을 다녔고 결혼도 하지 않아(?) 독립할 별다른 이유를 찾지 못했던 난 지금도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물론 성인이라면 부모님의 집을 떠나야 하는 어떤 이유가 없다 하더라도 독립할 수 있지만, 아침에 나가면 저녁 느지막이 돌아오는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딱히 혼자 나가 살 생각을 하진 않았다.

사실 내게 독립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만의 공간을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예쁘게 꾸며놓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가끔 친구들을 초대해 밤새워 놀기도 하며 자유롭게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살고 싶단 생각은 해봤다. 그러나 매일매일 출근길 아침밥에 늦은 저녁까지 챙겨 주시고, 청소에 빨래까지 해 주시는 부모님과 함께 살며 누리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버리고, 또 집 나가면 드는 큰 비용을 감내하면서까지 독립을 꿈꾸진 않았다.

 

그렇게 이제껏 큰 불편함 없이 살아왔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거의 하루 종일 가족과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상황에 놓이게 되자 점점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절실해졌다.

사람은 함께 많은 시간의 일상을 공유하다 보면 서로 더 잘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점도 커지지만 반면 피로감도 쌓여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감정은 아무리 가깝고 친밀한 사이에도 그렇다.

회사 다닐 때야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들어오고, 주말이면 친구들 만난다고 나기가 바빠 그럴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는데,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감정들이 쌓여갔다. 그건 아마 부모님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예전보다 딸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좋아하셨지만, 나이 먹으며 늘어가는 딸의 잔소리에 피곤하기도 하셨을 거다.     

 

그래서였을까. 제주 한달살이를 계획할 때 가장 설렜던 건 실은 제주를 돌아다니며 여행한다는 것보다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거였다. 오롯이 혼자 내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생기는 것이니까.

비록 한 달이지만 온갖 사이트를 뒤져가며 처음으로 살 방을 구하고,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깐깐하게 골라 사고, 스스로 매 끼니를 해결하는 등 온전히 내 일상을 내가 책임지며 홀로 생활하는 제주 한달살이 여행이 완전하진 않지만 내겐 작은 ’독립‘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가족과 집으로부터의 독립이라기보다 내가 앞으로 온전히 독립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홀로서기의 작은 발걸음을 떼는 그런 의미의 독립이랄까.



남들은 이미 훨씬 어린 나이에 경험했을 일들을 여행을 핑계(?) 삼아 이제야 해 보는 게 무슨 큰 대단한 일이라고 거창하게 홀로서기니 독립이니 떠드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오랜만에 긴 여행을, 그것도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난 터라 기분이 매우 업되고 흥분 상태라는 점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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